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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소이 May 05. 2024

오늘도 씩씩한 마음, 바르셀로나에서(3)

- 혼자 점심을 먹는 사람을 위한 산문

구엘 공원을 거닐며 다채로운 감정과 상상 속에 실려 다녔다. 아기자기하게 장식된 기둥들 사이를 걸으며 고대 그리스 시대에 와 있는 듯 어리둥절했다가, 도마뱀 상 앞에서 줄을 서서 사진을 찍으며 들떴다가, 깊은 바닷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파도 동굴에서 차분해졌다.   

   

 가우디가 창조한 세계에서 천진난만한 상상으로 들뜨고 편안해지는 마음을 동시에 느끼며 활력이 샘솟았다.      


 좀 더 위로 올라가서 정교하게 타일로 장식된 벤치에 앉으니 공원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벤치에 아로새겨진 알록달록한 무늬를 찬찬히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진심으로 즐겁게 작업했기에 이렇게 생동감 넘치는 작품을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마음속 깊이 즐거워하는 일을 하며 얻는 행복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완성할 모습을 상상하며 작은 조각들을 하나씩 이어 붙였을 예술가의 묘한 설렘과 정성스러운 마음을 생각했다. 당장 보이지 않지만, 자신을 믿고 묵묵히 작업을 이어나갔던 단단한 마음을 가늠했다.  


나에게 있는 '썸띵'은 뭘까.
내게도 그런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인가를 행하고 그 결과로 반드시 더 큰 무엇인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삶은 얼마나 더 다양한 가짓수의 즐거움으로 내게 화답해 올까.     

- 이세라, 혼자 점심을 먹는 사람을 위한 산문 ‘Sometimes making sometihg leads to nothing’, 2022, 한겨레출판, p.152     


 내가 만드는 게 무엇에 도움이 되는지 질문을 받거나 스스로 되물을 때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쓸모없는 걸 추가해서 이 세상을 더 어지럽게 만드는 것일까.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그저 몰입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럴 때면 이세라 작가의 말을 되새긴다. 삶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꿋꿋이 견인해가는 끈기와 성실함, 나를 믿는 마음, 스스로 이만하면 됐다고 판단이 내려질 때까지 버티는 시간과 그러고도 무너지지 않을 내면의 힘을 생각한다.     


서른넷에 떠난 유학, 서른여섯에야 시작한 그림, 서른아홉에 이뤄진 정식 데뷔. 늦은 시작을 만회하려는 듯 초인적인 열정과 꾸준함으로 일했던 자세, 일흔넷에는 지난 세월을 집대성하는 역작이나 다름없었던 '은하수' 준공까지. 이성자 화백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삶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꿋꿋이 견인해가는 여정에 대해 남보다 늦은 시작이었지만 누구보다 오래 살아남았던 성실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 이세라, 혼자 점심을 먹는 사람을 위한 산문 ‘명랑한 은하수’, 2022, 한겨레출판, p.146     


지금 혹시, 무리하고 있지는 않아? 그러다가도 슬그머니 질문을 바꾸게 된다. 그런데 버티는 시간 없이 삶의, 어떤 사안의 진실에 가닿을 수 있을까?  
타인의 어깨너머로 살짝 구경만 하고 온 것 말고, 스스로 '이만하면 됐다'는 판단이 내려질 때까지 버텨보고 싶을 때가 있다. 끝의 끝까지 닿고서야 돌아 나왔다는 느낌. 사실 그건 길을 '돌아' 나온 것이 아니라 '뚫고' 나온 쪽에 가깝고, 그 느낌을 감각했을 때에만 나는 미련 없이 이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 완전히 쓰러지느니 간당간당하게라도 버티다 보면 가야할 곳이 보이는 순간이 찾아올지도. 나는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 이세라, 혼자 점심을 먹는 사람을 위한 산문 ‘특기는 오래 버티기’, 2022, 한겨레출판, p.127     


 구엘 공원의 타일 벤치에 나란히 앉아서 D가 말했다.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것을 찾아서 씩씩하게 해 보자고.


 우린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오롯이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용기를 냈다.

    

 그래서 지금은 좀 더 버티고 싶다.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를 끌어당기고, 어렴풋한 미래를 향해 내딛는 발자국에 힘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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