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소이 May 02. 2024

그날의 선율이 내게 알려준 것, 바르셀로나에서(2)

- 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원래 계획대로라면 우린 테이블이 많지 않은 작은 와인바에 앉아서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와인을 홀짝이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오후에 차를 마시고 광장을 가로지르지 않고 안쪽 골목길을 거쳐 갔다면, 산타마리아 델 피 성당을 지나지 않았을 것이고 예배당에 앉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무슨 일이든 어디를 가든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대로 실천했을 때 희열감을 느끼는 계획형 인간인 D와 나, 우리가 성당 앞에서 공연 팸플릿을 나눠주는 한국인 여자를 만나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고, 저녁 공연을 추천받고 기타 공연을 보기로 한 건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이런 즉흥적인 경험도 좋잖아. 여행은 평소와 다른 나를 더 많이 발견하기도 하니까.”     


 우린 서로 마주 보고 웃으며 이렇게 얘기했다.      


 인생을 여행하면서도 예상치 못한 나를 문득 발견하는 날이 있다. 10년 전의 나, 5년 전의 내가 생각한 미래의 나는 현재의 나와 조금은 다른 모습이었다.      


 언젠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될 거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때의 내가 계획한 미래에는 희미한 존재였다. 지금은 더욱 선명하게 그 모습을 그릴 수 있다.      


 작가 마스다 미리의 책을 읽으며 철저한 계획하에 꾸려간 삶이 아니라, 그저 꾸준히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지금의 작가를 있게 한 태도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서양화를 전공하고 카피라이터가 하고 싶었다가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고, 에세이, 만화를 그리고 쓰는 작가가 되었다. 평범하지만 귀여운 작가의 인생 이야기, 소소한 일상에서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이 잔잔하게 내 안에 스며들었다.     


나는 대부분의 일에 크게 흥미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찾고 있는 무언가를 만나기 위해. 이를테면 전철 타기 전에 역에서 받은 전단에서 특이한 이벤트를 발견하잖아요. 일단 가보기로 한답니다. 귀가 번쩍 뜨이는 말을 만나기 위해.    

 - 마스다 미리, 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 2015, 이봄, p.14-17     


너에게 좋은 걸 가르쳐줄게. 사람은 모든 질문에 대답하지 않아도 된단다. 모든 것에 대답하려고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잃어버린단다. 자기 자신을.     

- 마스다 미리,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2012, 이봄, p.43     


 모든 일을 예측하고 계획을 세우는 건 불가능하니까. 가끔은 우연히 찾아오는 일, 사람, 시간, 장소를 긴장을 풀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날 저녁은 성당에 울려 퍼지는 기타 선율에 취했다. 연주자의 손에서 기타 줄이 튕기면서 나오는 음이 서로 맞부딪혀 점점 아련해졌다가 다시 새로운 음에 맞닿아 커졌다.      


 공연에서 느낀 감동이 마음속에 깊게 남았는지, 우린 그 이후로 여행 일정을 조금 느슨하게 잡고 즉흥적인 나를 만날 기회를 만들기로 했다.      


 가끔 즉흥적으로 변하는 내가 발견하는 것들이, 삶을 더욱 다채롭고 흥미롭게 만드는 것을 알았기에.

이전 13화 빛의 숲과 사소한 안부, 바르셀로나에서(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