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관은 무슨 생각을 할까? (2)
내가 취준생일 때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아침 이른 시간 면접이 잡힐 때였다. 가뜩이나 매일 새벽까지 자소서를 쓰느라 심신이 피폐해져 있는 상태인데, 모처럼 면접이 잡힌 회사는 마치 나를 놀리듯이 이른 아침에 부르곤 했다. 뭔가 제 컨디션으로 면접을 보지 못할 것만 같은 느낌, 다른 지원자들보다 뭔가 묘하게 불리한 그 느낌에 투덜투덜했던 기억이 많다.
시간이 지나 어느덧 면접관으로 들어갈 연차가 쌓였고, 실제 면접관이 되어 다시 면접장에 가보니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내가 힘들었던 것처럼, 취준생들도 힘들겠지.'가 아니라, '아, 피곤하다...'였다. 그러고 나서 뒤늦게 지원자들의 입장을 생각해 보니, 참 안타까웠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들도 우리가 이런 속마음으로 면접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겠지. 그때의 내가 조금만 더 면접관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미리 생각해 보고 면접에 임했더라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내진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그런 아쉬움을 당신이 똑같이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오늘은 당신의 앞에 있을 면접관의 속마음을 조금이나마 보여주고 싶다. 모두가 똑같은 자세와 똑같은 표정, 똑같은 말투로 초조하게 자기 얘기만 하며, 심지어 면접관인 내 얘기에도 전혀 귀 기울이지 않는 대부분의 취업준비생들에게 전하는 이야기.
도대체 내 앞에 있는 면접관의 속마음은 어떨까?
[ 어느 면접관의 하루 ]
꽉 찬 지하철 출근길. 하루 종일 진행될 면접에 마음이 무겁다. 인사팀도 아니지만 1차 면접은 인원이 많아 실무팀의 지원이 필요하다나 뭐라나. 주말에 면접대상자 자기소개서를 미리 봤어야 하지만 다음 주 보고자료 때문에 정신이 없어 대충 몇 줄밖에 읽어보지 못했다. 2인 1조로 들어가는 1차 면접지원. 내 파트너는 옆 팀 차장님이다. 깐깐한 척 하지만 말이 많은 스타일이라 분명 쓸데없는 말 많이 해서 시간 지연시킬 것이 불 보듯 훤하다. 오늘은 내가 중간에서 잘 정리해야 하는데 부담이 크다.
# 8시 30분.
사전 면접관 브리핑이 있다. 교과서에나 나올법한 평가 기준, 해서는 안 되는 말, 주의사항이 산더미다. 주어지는 자료는 면접자들의 인적 사항을 포함한 평가표, 자기소개서, 그리고 면접에 활용할 질문지다. 평가표의 항목이 워낙 많은 데다가 면접관 의견까지 작성하라고 하니 이거 다 적다 보면 정작 지원자 답변은 들을 시간도 없을 것 같다.
# 첫 면접이 시작됐다.
잔뜩 긴장한 지원자들을 보니 마음 한 켠이 짠하다. 그래, 나도 저렇게 바들거리며 이 회사에 발을 디뎠던 날이 있었지, 잠시 회상에 젖어든 순간. 팀장님의 메시지가 뜬다. “김 과장 목요일까지 본부장님 자료 전면 수정 요” 아니 이번 주 내내 하루 종일 면접 지원 들어가는 것 뻔히 알면서 전면 수정이라는 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깊은 한 숨을 참으며 입을 뗀다.
“자, 그럼 왼쪽부터 간략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1분 정도씩 시간 드릴게요” 자기소개를 들으며 지원자를 찬찬히 살핀다. 다소 긴장하긴 했지만 정갈한 옷매무새에 웃는 표정이 호감이 간다. 다음 지원자의 자기소개가 시작된다. 무난한 인상인데 말이 길다. 미리 준비한 티가 팍팍 나는 3분여의 자기소개. 언뜻 보니 제출한 자기소개서를 요약해서 줄줄 읽은 것 같고만. 이후로도 평범한 자기소개가 이어진다. 이력을 보니 스펙은 다 비슷한 수준이다. 가장 호감 가는 사람은 첫인상이 좋았던 첫 번째 지원자. 준비된 질문 몇 가지를 던지고 부지런히 평가 세목을 체크한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이 많은 항목을 어떻게 알아보라는 것인지.
# 오전의 마지막 조 면접이 시작된다.
박 차장이 쓸데없는 질문을 계속하는 통에 3조 정도가 밀렸다. 1시부터 오후 면접이 시작이니 점심도 대충 샌드위치로 때워야 한다. 그 와중에 울리는 팀장님 메시지 “김 과장 점심 먹고 잠깐 사무실 들러요” 아이고 팀장님. 점심도 못 먹습니다. 내 갑갑한 상황과는 무관하게 면접은 계속 진행된다. 오전 동안 80명 가까이 되는 면접자를 봤지만 기억에 남는 사람은 손에 꼽힌다. 마주 선 지원자들을 살핀다. 이 친구가 아까 그 말을 한 친구였나? 이쯤 되니 슬슬 혼란이 온다. 얼른 마치고 일단 밥이나 먹자, “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으신 분?” 고픈 배를 움켜쥐고 파일을 저장하려는데, 박 차장이 또 시작이다. “네, 제가 준비한 장기자랑이 있는데 보여드려도 되겠습니까?” 아까부터 이상한 답변만 하던 지원자가 결국 피날레를 장식한다. 그런 건 입사해서 보여줘도 괜찮습니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막지 못한다. 그 지원자는 최신 유행가요를 얼토당토않게 개사한 낯 뜨거운 무대를 보여줬다. 하하. 네. 용기가 대단하네요. 좋은 결과 있길 바랍니다.라고 말하며 마지막 코멘트를 기입한다. “X”
# 잠깐의 쉬는 시간이 주어진다.
커피나 한 잔 마시려는데 인사팀 팀장이 휴게실로 들어온다. “아 이번 본부장님 지시가 있어서… 지원자 당 코멘트를 2줄 이상 입력하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실무진이 보다 통찰력 있게 평가 부탁드립니다.” 참 아이러니하다. 한 조당 면접 시간은 20분, 들어오는 면접자는 5명. 인사하고, 자기 소개하고, 한 사람당 3가지 질문도 할까 말까인데 평가 세목은 30가지에 달한다. 5명의 세목을 체크하다 보면 대화도 제대로 못한 채 시간이 가는데 거기에 2줄씩 자유 평가까지 입력하라니. 에라이 노동도 이런 중노동이 없다.
면접관이 되어보니 ‘두괄식’의 중요성을 새삼 느낀다. 마음도 급하고 시간도 없는 면접관의 질문에 ‘두괄식’으로만 답변해도 호감이 확 올라간다. 묻는 말을 알아듣기나 한 건지 중언부언 구구절절 대답하는 지원자의 말은 두 세 마디 넘어가는 순간부터 들리지 않는다. 그래 넌 대답해라. 난 평가할게. 줄줄이 늘어선 평가 세목에 체크하기 바빠질 뿐.
# 마지막 조 면접이 끝났다.
이제 면접관 디브리핑이 남았지. 오늘 면접을 본 면접관들과 인사팀 담당자들이 모여 특이사항과 개선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네,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런데 다들 바쁘셔서 자기소개서 숙지가 안 되어 있으시다 보니 피상적인 질문만 많이 하신 것 같은데요, 오늘은 꼭 자기소개서 사전 숙지 부탁드립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를 끝으로 다시 사무실로 복귀한다. 그래, 오늘은 자기소개서 좀 읽어보고 가야겠다는 마음도 잠시, 팀장님이 부르는 소리. “ 어이 김 과장, 왜 이리 늦게 끝났나? 수정 자료는 저녁 먹고 와서 레이아웃을 한번 보자고.” 면접자의 하루는 끝이 나도, 면접관의 하루는 끝나지 않는다.
당신이 마주하는 면접관은 전문으로 면접만 보던 사람들이 결코 아니다. 그냥 일하다가 면접 봐달라고 끌려온(?) 당신의 선배일 뿐.
당신이 열심히 준비한 '내 얘기'는 그들에게는 그냥 피곤한 말일 수도 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항변하고 싶지만 그게 현실이다. 그들도 사람인지라 처음 보는 당신의 상황에 공감하기 어렵고, 면접은 그냥 하나의 귀찮은 '업무'에 불과할 수도 있다. 면접은 '대화'라고 끊임없이 강조하는 이유도 결국 여기에 있다. 그들도 그냥 평범한 사람이다. 상대방의 기분을 생각하며 대화하는 것. 그게 대화에 가장 필요한 센스이면서, 동시에 면접에 가장 필요한 센스 아닐까.
센스는 많이 연습하면 반드시 좋아지기 마련이다. 배려는 철저한 습관이기 때문이다. 나를 뽐내는 면접보다는 신선한 느낌을 주는 것, 면접관의 질문과 감정에 공감하는 것. 이런 것들이 오히려 중요할지 모른다. 1분 자기소개에서 여유롭게 나에게 '면접관님 점심식사는 하셨나요?'로 시작했던 그 취준생이 기억에 남는 이유를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그런 것이 역량과 상관없이 호감을 느끼게 하는 중요한 포인트는 아닐까.
물론 짜증 날 수 있다. '왜 취준생이 면접관을 배려해야 하지.' 아쉽지만 그들도 사람이고, 평가표와 펜은 그들 손에 있으니까, 지금은 그것만 생각하자.
당장 오늘부터 주변 사람에게 계속 연습하자. 상대방을 배려하는 한 마디를 습관처럼 하기. 당장 지금부터 시작하자.
면접은 배려, 배려는 습관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