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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도 그랬나요?

by 흑곰 Dec 2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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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

엄마아빠도 그랬나요?

제가 성인이 되어 대학을 가고 직장을 다니고

어느 날인가부터 크리스마스(이브) 그까짓게 뭔데. 하며 부모님과의 저녁식사를 하지 않던 어느 날,

엄마아빠도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맘에 다소 혼란스러웠나요?


아이가 운동이 끝나고도 밖에서 이십여분을 더 놀고 열시반이 되어서야 집에 왔어요

저희 부부는 늦은 저녁을 별 대화없이 먹고 아이와 특별히 무엇 할 것도 없으면서 자꾸 들어오라고 했어요

같이 보드게임하자 영화를 볼까? 하면서 제안을 해댔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크리스마스 기분을 내기 위해 평소라면 사지도 않았을, 사두면 몇주고 다 먹지 못한 채 냉장고의 전기값을 1/n할 녀석이 늘어난다는 것을 알면서도 케익을 하나 샀어요.

별 의미없는 초를 하나 꽂고 우리 세식구는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어요.

예수님의 생일을 축하했어요.


크리스마스 트리도 없었어요

소박한 노래가락만이 집안의 공기를 채웠어요

가리는 음식이 많다보니 예전처럼 스테이크도, 와인도, 치즈도 없었어요.

너무 피곤했던 저는 그저 꾸벅꾸벅 조는데 남편에게 들키기 싫어 애써 움직이고 말을 건네요.

아, 자고 싶다. 라고 속으로 수 회를 대뇌었어요.

그렇게 다행히 열한 시 열두 시가 되어, 다행히 잘 시간이 왔어요.

그렇게 우리의 크리스마스 이브는 끝났어요.



아이가 어릴 땐 카드를 사서 몰래 쓰고

선물을 미리 준비해서 차에 숨겨 두었다가 아이가 자고 나면 트리 아래 가져다 두었지요

아침이 되면 방방 뛰는 아이 혹은 시무룩하지만 차마 내색을 잘 못하는 아이 옆에서

우와 정말 멋지다, 올해도 받았네 하면서 연기를 하던 노력도

이제는 필요없어졌어요

아이는 크리스마스를 구실로 무엇을 사달라고 하지도 않아요

이벤트란 모르는 부모가 키운 아이답지만 적적하네요


크리스마스 당일

늦은 오후, 늦은 점심을 먹으러 나갔는데 몰에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고 아이는 말해요

“뭐야, 크리스마스에 이렇게 모여서 노는거야?”라고.

아차싶어요.

우리는 크리스마스 이브, 크리스마스는 세 식구가 늘 맛난 것을 먹고 스키를 타러 가거나 영화를 보았는데,

이제는 같이 할 것이 없어지면서 외출을 했고 아이가 실상을 알아버린거죠


부모의 작은 둥지 안에 살던 아이는 이제 세상을 바라봐요

너무 당연해서 놀랍지 않지만

하지만 그래서 놀라운걸요


내년에는 트리를 하지 말자고 해도 해야겠어요

내년에는 병원에서가 아닌 집에서 건강하고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내야겠어요

평생을 특별한 이벤트 없이 지내왔지만

이제라도 나를 위한 선물도 사고

아이에게도 선물하는 기회를 만들려고요


엄마, 아빠.

도 저와 같나요?

제가 크면서 더이상 카드를 밥솥얹는 통에 넣어두지 않아도 되던 어느 날,

엄마. 아빠도

적적한 마음이 들었나요?

특별한 정이 없던 원래의 엄마. 아빠는,

훨씬 더 적적했나요.

그래서 온 종일 각자 한 곳만 바라보았나요.

하루 종일 티브이를.


메리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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