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에는 내 눈앞에 수만 가지 갈림길이 펼쳐져 있는 것 같았다. 마음만 먹으면 나는 이런 사람도 될 수 있고, 저런 사람도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현실이 불안했지만 한 편으론 설렜다.
그런데 결혼과 동시에 모든 것이 바뀐 것 같았다. 인생의 대부분이 "결정"되었다,라는 실감이 들었달까. 내 발에 닿아있던 모든 길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한두 개의 길만 남은 듯 느껴졌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았는데 결국 이루지 못했어."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박스에 꿈을 넣고 테이프를 붙이는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바뀐 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서 더 행복해진 것 말곤, 아무것도 없었는데 말이다.
도대체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무엇이 내 길을 사라지게 했으며 나는 왜 아무 저항도 못하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까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당장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종용하는 건 친정 어르신들 뿐이었지만, 시댁 어르신들도 간절한 마음으로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나마 "아이는 언제쯤 낳고 싶어?"라는 묻기라도 하는 건 혈연관계가 아닌 사람들뿐이었다. 내가 아이를 좋아하는지 어떤지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아이를 낳고 싶은지, 언제 낳고 싶은지도 선택 사항이 아니다.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공부했고, 어떤 일을 했으며, 그 경험 등을 통해 앞으로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 당장 올해, 내년에 어떤 계획이 있는지 그 어느 것 하나 중요한 것은 없다. 나는 그저 남들이 보기엔 나이가 적지 않고, 나중에 갖고 싶을 때 아이가 잘 안 생길 수도 있으니 당장 아이를 가져야 하는 늙은 새댁일 뿐이다.
답을 찾고 나니 해결은 쉬웠다.
아무리 사람들이 당연한 거라고 말해도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당연한 게 아닌 거다. 내 인생은 내 것이고, 어떤 선택을 하든 내 자유다.
그렇게 결론짓자, 발 밑에 다시 길이 하나씩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나는 다시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는 나로 돌아왔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길과 내가 행복해지는 길이 당장 일치하지 않아 유감이지만, 아무리 대단치 않은 일이라도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 일을 할 것이고 아이는 마음의 준비가 되면 그때 낳을 거다.
그게 몇 달 후가 될지 몇 년 후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진정으로 마음의 준비가 되면 갈림길이 사라지는 느낌도 들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혹, 갈림길이 한두 개밖에 남지 않는다 하더라도 씩씩하게 걸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