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차별하지 않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직업도 아니고 “선생님”이니까! 그때 나는 선생님이란 응당 “성인 같은 공평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차별을 일삼는 선생님은 경멸했고, 설령 내가 편애 받는 쪽이라 하더라도 그 선생님은 미워했다.
20살에 대학에 들어가자, 미술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아졌다. 친구들을 만나면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고 그 이야기는 늘 흥미로웠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아이가 있고, 아무리 설명해줘도 실력이 늘지 않는 아이가 있다. 매사에 버릇없고 잘난척하는 아이가 있는 반면, 한마디를 하더라도 눈물 나게 이쁘게 말하는 아이들도 있다.
나는 순진하게도 그때서야 “선생님”이 “직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차별하지 않는 게 선생님의 기본자세인 건 분명하지만, 현실에서는 그 기본자세 하나만 지켜도 존경받아 마땅할 정도로 흔치 않은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선생님”도 “인간”이라는 걸 처음으로 인식한 순간이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녔을 때를 돌이켜보면 세 선생님은 “성인 같은 선생님”이셨고 두 선생님은 “직업이 선생님”이셨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선생님은 기억에 없어서 모르겠다.
"성인 같은 선생님"들은 늘 나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셨다. 그들은 엄마 없는 내가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궁금해했다. 뭔가를 잘하면 환하게 웃으면서 아낌없이 칭찬해주셨고 뭔가를 잘못하면 따끔하게 충고해주셨다. 그럴 때면 좋아하는 선생님을 실망시켰단 생각에 마음 아파하며 잘못을 바로 잡으려고 노력했다.
그 선생님들은 엄마 없는 나를 동정했던 게 아니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대하려고 노력하신다는 걸 어린 나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분들은 성품이 올바른 분들이었고, 자신의 행동이 아이들 정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인식하고 있었을 뿐이다. 존경하는 마음에 중학생이 되어 선생님을 찾아뵀던 생각이 난다.
반면 "직업이 선생님"인 선생님 두 분은 친구와 같이 떠들어도 나만 혼냈다. 전에 선생님들과는 태도가 180도 달랐다. 목을 한번 가다듬었을 뿐인데 앞으로 나오라고 하여 출석부로 따귀를 후려쳤다. 마치 나를 괴롭히기라도 작정한 듯이 하루에 한 번은 내 이름을 불렀다. 매를 맞는건 나만이 아니었다. 반 학생들을 때리는 건 그들에게 일상이었다. 아빠에게 말하면 나만 더 혼날게 분명해서 집에도 말하지 못 했다. 만에 하나 아빠가 내 편을 들어준대도 창피한 일이 생길까 봐 그렇게 못 했다.
선생님 두 분의 지나친 행동에 대한 의문을 풀린 건 그 선생님들이 “촌지 받는 선생님”이었다는 걸 알고 나서였다. 어릴 땐 드라마 속 이야기들이 다 지어낸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다 실제로 있는 이야기를 모델로 한 거더라.
선생님만 그런 것은 아니다. 선후배 사이에도 동료 사이에도 언제나 차별은 존재한다. 대체로 상대가 나와 맞냐 안 맞냐, 좀 더 깊게 들어가면 나에게 필요한 사람이냐, 아니냐가 기준이 되는 것 같다. 그럼에도 어린 시절 처음 만나는 나를 가르치는 존재인 “선생님”과의 관계는 다른 관계와는 다른 무게를 가질 수밖에 없다. 자퇴를 하지 않는 한 피할 수 없고 오롯이 일방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요즘 태도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하면서 어릴 적 만난 좋은 선생님들께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든다.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도 선생님들께 받은 따뜻함이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도 그 선생님들의 다정한 말투와 미소가 기억난다.
집안이 불우했던 만큼, 선생님들의 다정함은 꽁꽁 언 튼 손에 쥐여준 작은 난로처럼 강렬하게 와 닿았다. 말로 하지는 않으셨지만 세상엔 행복한 일도 많다고 내게 행동으로 가르쳐주셨다. 지금 와 생각해보니 다정함의 가치 또한 처음으로 알려주셨다. 그 선생님들의 다정함이 있었기에 불합리한 폭력을 겪으면서도 내 자신을 잃지 않고 지킬 수 있었다.
예전에 <TV는 사랑을 싣고>라는 TV프로그램이 있었다. 연예인들이 나와서 어릴 적 감사했던 은사님이나 친구를 찾는 프로그램이었다. 당시엔 꽤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어서 많은 국민들이 그 프로그램을 보며 감동하고 울었던 걸로 안다. 좋은 선생님이나 좋은 친구와의 시간이 몇십 년이 지나서까지 한 사람에게 얼마나 가치있게 남을 수 있는지 알려준 프로그램이었다. 방송이니 어느 정도 설정이 있었겠지만 말이다.
단언컨대 어린 시절엔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특히 초등학생 때까지의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때 정립된 가치가 평생을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의 가치가 정립되기 전 좋은 선생님을 세분이나 만난 것에 감사한다. 그리고 "차별하는 선생님"을 만나기 전에 그분들을 만난 것에 안도한다.
아이의 가장 큰 교육자는 당연히 부모다. 그러나 그 부모가 제 역할을 못할 때 그 역할을 조금이라도 대신해줄 수 있는 사람이 선생님이다. 나쁜 부모들이 아이에게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은연중에 시행한 잘못된 교육을, 올바르게 바꿔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생님이 그런 상황을 부담스러워하고, 못 본 척 외면한다. 안타깝지만 현실에는 힘든 상황에 있는 아이들을 혐오하고 비웃는 선생님도 있다.
어떤 선생님을 만나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이 달라지는 건 자명하다. 그런 중요한 일을 그저 운에 맡길 수밖에 없단 사실이 안타깝고 또 안타까울 뿐이다.
선생님이 단순히 직업의 한 종류이고, 연약한 인간의 정신을 갖고 있다하더라도 난 여전히 좋은 선생님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차별하지 않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좋은 선생님들께는 진심을 다해 존경과 감사의 마음, 뜨거운 박수를 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