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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signBackstage Aug 29. 2024

호랑이 줄무늬는 밖에 있지만 사람의 줄무늬는 안에 있다

<에세이> 오래된 미래

제목이 꽤 신경 쓰였다. <오래된 미래>라니 제목을 잘못 읽었다고 생각했다. 이해하기 위해 표지를 훑었더니 더 혼란스러워졌다. 상반된 의미의 단어가 나란히 적혀 있었다. 오래된 이야기일까, 미래의 이야기 일까?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는 주름 가득한 할머니의 모습과 눈빛에 총기가 가득한 어린아이가 책중앙에 함께 있다. 아이의 엄마도 할머니도 아닌 증조할머니쯤 돼 보이는 분이 아이와 함께 있는 모습을  자주 본 적 없어서일까 생경했다.  저 사진은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 책의 배경이 눈에 들어왔다. 누렇게 바랜 표면 위에 나뭇잎을 묽은 잉크에 묻혀 손목 스냅만 사용하여 찍어 낸 것 같은 효과가 인상적이다. 사람의 손길이 많이 닳지 않는 자연에 둘러 쌓인 삶에 대한 이야기는 아닐까?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글을 읽기 시작했다.  




이번 여름 온 국민들에게는 폭염주의보 알람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강제 루틴이 생겼다. 무심코 알람을 끄려다 야외활동 자제라는 말 뒤에 ‘부모님’이라는 단어가 보였다. '잘못 본 걸까?' 생각하며 자세히 보기를 눌렀다.

부모님께 안부전화 드리기

국가 재난문자에 부모님께 안부를 전하라는 나라가 몇이나 될까 라는 생각을 했다. 뒤이어 실종신고 알림이 연달아 세 건이 왔다. 치매노인 두 분과 장애가 있는 성인 한 분이었다. 폭염 속 아침부터 가족들을 찾아 헤매는 이들을 생각하니 저릿했다. 그러고 보니 하루에 실종 알람 문자가 세네 번씩 꾸준히 왔었다. 길을 걷다 만나는 카페의 개수만큼이나 실종자분들이 많았다. 알림 문자가 아니었으면 전혀 몰랐을 일이었다.


<오래된 미래>는 인도 북부에 위치한 라다크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지역은 수세기 동안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고립된 삶의 방식을 지켜온 곳이다. 강한 자립심과, 검소한 문화,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바탕으로 하는 그들의 문화를 오랫동안 지켜본 저자는 전통 농경사회가 변해가는 모습들을 보며 무엇을 보존하고 무엇을 발전시켜야 하는 가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고 있다. 그들 삶의 방식에서 인상 깊게 느꼈던 건 언어였다. 그들은 연인이나 부부사이에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라다크 언어에는 독점적이고 열정적이며 로맨틱한 관계를 나타내는 사랑한다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에 그들은 가깝다고 표현한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는 '나는 당신과 가깝습니다'라고 말이다. 서로를 존중해 줄 뿐 종속시키려 하지 않는 부부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때문인지 일부다처제와 일처다부제가 대부분 임에도 불구하고 정서적 안정감 있는 결혼생활이 가능했다. 라다크의 한 젊은 여성에게 결혼상대자를 고를 때는 무엇을 특별하게 보는지 물었다. 그녀는 사람들과 잘 지내야 하고 일솜씨가 좋고 게으르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외모는 보지 않느냐는 질문에 라타크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했다.


호랑이 줄무늬는 밖에 있지만
사람의 줄무늬는 안에 있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사람 안에 있는 줄무늬를 잘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의 마음을 살피기 위해서는 어떤 사람인지 일단 가까이해야 알 수 있으니 우리가 서로 가깝다는 말이 애틋하게 들렸다. 그들의 언어 중 또 하나 새로웠던 것은  상대를 표현하는 대명사 그(he), 그녀(her)가 아닌 모두를 나타내는 (Kho)만 존재한다 이는 여자, 남자 상관없이 모두 하나의 인격체로 불리는 것이다. 이런 문화 때문인지 더불어 사는 삶이 가능해 보였다. 노인과 아이, 여자와 남자, 남편과 아내 그들은 서로에 대해 선을 긋고 나누려 하지 않았다. 라다크의 삶은 독점적이지 않고 다르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 서로가 가까워지는 것이 필요했다. 



여러 번 울려 댄 알림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부모님과 가까이 지내세요', ‘주위에 실종자가 있는지 가까이서 살펴봐 주세요’라고 말이다. 점점 멀어지는 삶은 위험하다고 국가 차원에서 경고음을 보내며 미래에 대한 걱정을 표한다. 그러고 보니 책의 제목은 줄임 말이었다.  ‘오래된 과거에서 찾은 따뜻한 미래’ 줄여서 <오래된 미래>라고 말이다.  표지에 노인과 아이는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익을 챙기려 하지 않는 지역민들을 안타까워하자 그들은 어깨를 으쓱 올리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꼭 그럴 필요 있나요?
우리는 함께 사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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