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퇴사이유를 묻는 그녀에게,
워킹맘들은 회사 퇴근과 동시에 육아출근이 시작된다. 하루가 촘촘하게 돌아가고, 퇴근시간이 달라지거나 아이가 아픈 돌발상황이 생기면 하루일과가 자전거 나사가 하나 빠진 것처럼 제대로 작동이 안 됐다.
일정대로 움직여야 했고, 퇴근 후에 혼자 보내는 시간이 전혀 없었다. 유일하게 허락된 나만의 시간은 출퇴근 시간이었다. 그래서 출 퇴근길은 언제나 즐거웠다. 보고 싶던 책도 읽고, 내가 듣고 싶은 음악도 마음껏 들을 수 있었다. 주변인들에게 당연하게 느껴지던 것들을 특별하게 느끼고 싶다면 육아를 경험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출근길에 당산역에서 합정역 사이의 당산철교를 지나며 한강 위로 반짝이는 물결을 보는데 '어메이징 그레이스' 노래가 흘러나왔다. 순간 눈물이 차올랐다. 눈앞에 반짝이는 물결이 나에게 번져 나를 빛나게 해 주는 것 같았다. 눈을 질끈 감고 오늘도 순조롭게 하루를 시작함에 감사했다. 이때는 몰랐다. 어메이징 하고 반짝이는 내 출근길이 어둡고 황량한 사막이 될 줄은.
생각해 보면 시작부터. 톱니가 잘 맞지 않았다. 인테리어 자재회사에서 경력직 디자이너 채용공고을보고 화장품 패키지 디자인 경력이 전부인 내가 지원을 했다. 경력직을 뽑는다는 이야기는 바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다시 말해 화장품 패키지작업을 하던 내가 이 회사에 뽑힐 확률은 거의 없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나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높은 연봉과 복지, 서울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입지가 나를 설레게 하고 있었다. 다니던 회사의 결핍을 꽉꽉 채워주는 최고의 회사였다. 나도 모르게 화려한 수컷 공작새처럼 나를 활짝 펼쳐냈다. 면접관들이 나의 전혀 색 다른 이력에 궁금해하자 나는 준비한 대답을 이어갔다.
"사람을 빛나게 하는 건 결국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과 그 사람이 머무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사람의 외적인 아름다움을 위해 디자인을 했고, 이를 바탕으로 머무는 공간의 미학을 펼치기 위해 이 자리에 왔습니다."
사실 이런 형체 없는 말은 제대로 듣지 않았던 것 같고, 뭐든 다 잘할 수 있다는 그 호기로움과 간절함이 통했던 것 같다. 나는 합격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내가 담당하기로 한 업무는 경력이 아니면 소화하기 어려운 직무였다. 자연스레 그 자리는 A선배 가 담당하게 되었고. 나는 A선배가 있던 자리로 배치됐다. 문제는 내가 가기로 했던 자리는 신생 부서로 열악한 환경이었고, 내가 가게 된 자리는 회사에서 가장 높은 이익과 매출을 창출하는 탄탄하고 안정적인 자리였다. 한마디로 굴러온 돌이 박혀있는 돌을 뺀 격이었다. 수년이 지난 뒤 그 선배는 디자인 기획파트를 만들어야 한다며 수많은 제안서를 올렸고 그 의견이 회사에도 설득이 됐다. 하지만 보고과정에서 자신에게 인사책임권한을 달라는 말 한마디로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며칠 뒤 인사발령에는 디자인기획 파트장에 내가 선임됐다. 기획업무를 할 수 있냐는 질문에 할 수 있다는 말만 했을 뿐인데 이게 이렇게 이리 커질 줄 몰랐다. 그리고 일 년 뒤 임원진이 모두 바뀌며 큰 인사이동이 있었는데 A선배가 내 팀장으로 오게 된 것이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냈지만 박혔던 돌은 굴러온 돌 위로 올라간 것이다.
A선배는 내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후배라 여겼던 것 같다. 마치 팀장이 되길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세워놓고 모든 팀원들이 있는 앞에서 면박을 주고 내가 내는 의견마다 코웃음을 치며 비아냥거렸다. 이메일을 보냈으면 "보냈다는 보고를 왜 안 했냐!"라고 화를 버럭 내는 걸 보고 '이 사람은 나랑 일하기가 싫구나!'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게 됐다. 나의 모든 제안과 의견이 벽 앞에 가로막혔다. 출근하면 목이 바짝 타들어 갔고, 찌는 듯한 압박은 계속됐다. 황량한 사막길로 매일같이 출근했다.
오아시스는 생각지 못한 데서 발견됐다. 시댁에서 운영하는 식자재 유통사업에 리브랜딩이 필요하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여러 번 손사래를 쳤었지만 이번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시댁의 부름은 마치 사막 한가운데서 시원한 물을 주고 등목도 해주겠다는 말처럼 들렸다. 정신적인 피폐함이 바닥을 보일 때쯤 받은 제안이라 더없이 달콤했다. 마음의 결정을 내린 뒤 나는 팀장에서 말했다. "팀장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팀장은 조금 놀라는 듯싶더니 회의실로 나를 데려갔다.
"왜 무슨 일이야!"
"저 회사 그만두려고 합니다."
"왜?"
"...(1분 정도 정적이 흘렀다.)
띠링-
갑자기 아이패드 녹취버튼을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A선배는 내 동의도 없이 나와의 대화내용을 녹취하기 시작했다. 내가 말을 안 하고 있으니 혼자 말을 이어갔다.
"혹시 스카우트제의가 온 거야?" 동종업계 재취업이나 창업을 금지하는 건 알고 있지?
"네, 이직하는 것도 아니고 스카우트제의도 없었어요."
이렇게 말하면 대화가 끝날 거라고 생각한 내가 바보였다
"그럼 아이들 보려고 하는 거야?"
"아이도 봐야죠." '도'라는 조사에 꽂혔는지 선배는 집요하게 물어봤다.
"아이 보면서 무슨 일 하는 건데?"
"아.. 가족사업을 같이 해보려고요.!"
"무슨 사업인데?"
"농산물 유통 쪽인데 제가 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무슨 일은 하려고 하는 건데? 00 씨가 하는 일은 뭐고 농산물을 어디서 어떻게 판다는 거야"
악.. 정말 이선배 집요한 건 알았지만 퇴사를 앞둔 사람한테까지 이렇게까지 물고 늘어질 줄은 몰랐다.
도저히 대화가 끝나지 않을 거 같아서 나는 굵고 짥게 대답했다.
"고구마 팔러 가요!"
그동안 일찍 출근하느라 아이들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출근했었다. 그렇게 내가 소중히 여기던 것들과 하나씩 멀어졌었다. 찬란했던 내 출근길도, 소중한 아이들과의 시간도 점차 줄거나 사라져 갔다. 답답한 마음이 눈덩이처럼 커져서 가슴팍에 팍 파묻혔다. 고구마를 급하게 먹다 보면 목이 막힌 그 느낌이 계속 지속됐다. 아무리 가슴팍을 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켜도 그 꽉 막힌 가슴을 내려갈 줄 몰랐는데 선배에게 고구마를 팔러 간다는 말을 하고 나서야 그 묵은 체증이 풀렸다. 내 가슴속 고구마도 진작에 팔았어야 했다.
'선배, 그간 저 때문에 좀 억울했죠? 근데 사실 저도 좀 억울해요. 제가 원했던 자리는 다 아니었었거든요. 저도 가슴에 고구마를 얹고 살았지만, 선배도 선배의 고구마 한 덩이가 있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