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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Sep 11. 2020

그러니 내 이름도 부르지 말아주세요

노자는 자신이 노자인 걸 모른다

<도덕경> 25장 오부지기명 吾不知其名
: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한다. 도에는 형체가 없고, 여러 가지 것들이 혼재되어 있어 뭐라 한 마디로 규명할 수가 없다.


노자는 그 이름을 알지 못했다. 천지보다 앞서 어지럽게 섞인 것이 있었고, 천지와 만물이 모두 거기서 나왔다. 하지만 그 혼돈, 마구 섞이어 있는 상태를 뭐라 불러야 할지 몰랐다. 한 마디로 규정할 만한 단어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무리 보아도 보이지 않고(이夷), 들어도 들리지 않고(희希), 만져도 만져지지 않았다(미微). 피치 못하게 이것들을 세세히 파악하려 하지 않고 하나로 뭉뚱그려 억지스럽지만 ‘도道’라고 쓰고 ‘대大’라고 이름 붙이기로 했다. 그런다고 그 이름이 ‘도’가 되는 건 아니며, 그 실체가 단지 ‘크기’만 한 게 아니다. ‘도’라고든, ‘대’라고든, 혹여 ‘신’이라고든 알아서들 쓰고 발음하는 건 상관없지만 자신이 선택한 글자로 포착하거나, 잡아두려 하지 마라. 노자의 소탈한 말,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한다. 이 소박한 고백이 내겐 참으로 따뜻한 에세이다. 


기원전 6세기 터키 서쪽 해안 클로폰에 살던 크세노파네스는 사자에게 신은 사자의 형상일 거라고 말했다. 인간이 신의 형상을 본떠 창조되었다는 상상은 그저 인간이 신을 인간의 모습으로 상상한 것일 뿐이다, 그런 상상하지 마라, 쓸 데 없는 일이다. 노자 역시 인간의 형상으로 근원적 존재를 상상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것을 매우 질서정연한, 안정된 상태라 생각할 수도 없었다. 혼란스러운 게 왜? 파악이 안 되는 데 어떻게 이름을 붙여? 그래도 억지스럽게 이름은 붙였으나, 그것으로 혼란을 질서화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태어나고 얼마 동안 나한테는 이름이 없었던 것 같다. 애가 곧 죽을 것 같아서는 아니었다. 뽀얗고 토실한 남자 아이가 태어나 이 아이에게 거대한 운명을 짊어진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내 이름을 지어준 작명소의 대략적인 위치가 경복궁역 3번 출구 근방, 지금 집 가까이였다. 반나절을 기다려 책상 앞에 앉아 작명가가 대뜸 한다는 소리가 이 아이의 얼굴이 이러저러하지 않느냐는 것이었고, 엄마는 신생아 생긴 게 다 거기서 거기지 무슨 얼굴 같은 소리를 하고 있냐, 그런 기분이어서, 그런 기분이라기보다 기분 잡쳐서 맞는 거 같다고 대답했다. 그로부터 딱 하루가 지나 작명가가 내민 글자가 澔(호)였다. 


작명가는 손수 먹을 갈아 화선지에 澔라고 썼다. 그리고 옆에다 한글로 ‘호, 빛나다’라고 주석을 달았다. 흔히 쓰는 ‘넓을 浩(호)’ 가운데 ‘흰 白(백)’이 들어갔으니 다들 그 글자가 널리 빛이 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작명가가 아이의 피부가 하얗다는 사실을 잘도 맞췄으니 ‘빛나다’의 의미가 그래서 담겼다고 속아 넘어갔을 수도 있다. 집안을 빛내는 기둥이 되어라, 그렇게들 대강 꿰맞추고 살았다. 그 오독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건 드디어 옥편을 자유자재로 폈다 덮었다 할 수 있게 된 15세의 나 자신이었다. 도서관에서 굉장히 두꺼운 옥편을 샅샅이 뒤진 결과 나의 ‘빛나는’ 호澔자는 그저 넓기만 한 호浩자와 같은 글자였고, 설명에도 매우 간단히 ‘浩와 같은 글자’라고만 쓰여 있었다. 빛을 품고 있었을지도 모를 글자의 잠재성은 15년 만에 넓다는 수식으로 교체되었다.


살아오며 나의 행동이나 생김으로 붙여진 별명은 없었으나 이름을 부르는 친구는 드물었다. 다들 저마다 부르고 싶은 대로 별도의 호칭이 있었다. 발단은 누군가 ‘호’를 ‘옥’으로 바꾼 것인데, 그게 ‘옥희’로 변했다가, ‘오키’가 되었다가, 다시 ‘쪼’로 단축됐다가, ‘줘’가 되고, ‘줘’를 번역하며 ‘깁미give me’가 되고, 아무튼 정신없이 제멋대로들 불렀다. ‘옥’ 불규칙 변화를 처음 만들어 낸 친구는 어느 주말 아침 전화를 걸어 <몬스터>라는 만화를 보고 있다며, ‘요한아’, ‘옥요한’을 반복하다가 끊었다. 요한이 뭔지는 끝내 말해주지 않았다. 


“나 진짜 밤새 그 만화 보면서 너무 소름 끼쳤어. 너를 보는 것 같았어.” 


나중에 그 만화를 빌려 보니, 요한, 무시무시하게 나쁜 놈이었다.  


 

정규직 면접을 개판 치고서 뒷구멍으로 월 50만원 계약직으로 들어간 회사에서 처음 판 명함에는 ‘조주’라는 이름을 써 넣었다. 엄마의 성과 우리 형제의 공통 글자 ‘주’를 조합한 이름이었다. 그러자 대번 ‘조르주’라고 부르는 인간이 나타났고, 소설가 조르주 페렉을 좋아하니 ‘음, 그렇게 부르는 것도 나쁘지 않네’ 싶었는데, 결혼을 하고 나자 같이 사는 사람이 ‘조르주’를 변형해 ‘쭈쭈르’라고 부르는 지경에까지 이렀다. 그런데 ‘어쭈?’ 하는 어감과 닮아 있어 집안에서의 내 위치를 각인시켜 주는 ‘경각’ 신호인 듯했다.  


고양이 노자는 3개월 됐을 때 우리 집에 맡겨졌다. 어느 집 지하주차장에서 구조된 아이였다. 같이 살기에 아주 좋은 아이였다. 뒤끝이 없었다. 인간의 음식에 입을 대거나, 끓는 냄비 가까이 가거나, 화분을 파헤칠 때 목덜미를 잡고 큰소리로 꾸짖으면 주눅이 들어 책장 안이나 소파 뒤로 숨었다가도, 내가 태어난 지 세 달 아이에게 무슨 짓을 했나 자책을 하고 있으면 어느새 ‘나는 기분 상한 일 없는데’ 하듯 무릎 위로 뛰어 올랐다.  


노자, 두 살 반


아기 고양이는 마음 쓰는 데 항상 나보다 몇 걸음 빨랐다. 화를 낸 건 난데, 위로해 주는 건 손바닥 위에 네 발을 올리는 작은 생명체였다. 아기 고양이는 내 심성의 밑바닥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내가 얼마나 협애한 놈인지, 고양이보다 더 동물적으로 살아가는지. 그래서 이름을 노자라고 지었다. 노자路子, 길에서 태어난 아이. 노상路上이면 길바닥이고, 노자는 거기서 태어났다. 그리고 노정路程이면 먼 길의 경로다. 길에서 태어나 한동안 나와 함께 살아갈 아이. 


이름과 달리 노자는 나와 함께하는 일이 거의 없다. 아침에 일어나서, 퇴근하고 돌아와서, 하루 두 번 10분 정도씩 안겨 있던 것도 새 고양이 초희가 오면서 하지 않게 됐다. 나와 노자가 스칠 때는 노자가 참치를 달라고 보챌 때뿐이다. 먹고 난 뒤, 주지 않을 것 같다고 마음을 접은 뒤면 다음 날 아침까지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노자가 두 살 반이 되고 자꾸 집밖을 탈출을 감행했다가 2시간 만에 귀가하는 일이 늘어 가면서 집안에 노자와 함께 놀 아기 고양이가 있으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더라도 시기는 노자가 다섯 살쯤 됐을 때. 노자도 아직 아기인데, 어미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또 다시 구조 소식과 보호 의뢰 전화가 왔고, 아기 고양이 사진을 보는 순간 노자와 노는 모습이 아니라 내 손바닥 위에 앉은 모습이 그려졌다. 저 아기를 쓰다듬고 싶다. 잠든 아기 고양이를 손바닥 위에 처음 올려놓던 날, 아기 이름을 ‘아라’라고 지었다. 노자처럼, 고양이가 구조된 장소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 어감처럼 아주 작고 애교 많은 여자아이였다. 딱 하루 동안만. 하룻밤 자고 일어난 ‘아라’는 폭주했다. 노자의 모든 자리를 빼앗았고, 서 있는 것만으로 신기한 아기 고양이가 경계심 그득한 덩치 큰 고양이에게 서슴없이 덤벼들었다. 노자는 냉장고 위로 올라가 사흘간 단식 고공농성을 벌였다.  


주인이 쓴 원고가 마음에 들지 않은 노자


하지만 사교성 많고 착한 아이답게, 사흘째 되던 날 농성을 접고 아이를 받아들였다. 아이에게 뒷발로 얻어맞으면서도 핥아주고 안아주고, 잠자리를 빼앗겨 주었다. 약간의 걱정이라면 아라가 그걸로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라는 24시간 노자를 따라 다니며 얼굴을 때리고 꼬리를 물고 목덜미를 움켜쥐고, 노자의 밥그릇에 머리를 디밀고, 모든 장난감을 독차지했다. 아기 이름이 ‘아라’ 갖고는 안 되겠어. 생각나는 이름은 ‘초희’밖에 없었다. 허난설헌의 시를 읽고 그녀의 생가, 무덤을 다녀 온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당차고, 한계에 굴하지 않는 여인 허초희의 생기가 고양이 초희에게서 느껴졌다. 고양이 초희가 억눌린 것 없이, 두려운 없이 자신의 존재를 다 소진시킬 수 있도록 내가 돌봐 주는 것으로 난설헌, 허초희를 기리자고 생각했다. 초희, 노자라는 이름은 실제 고양이들과 관련 없이 이 아이들과 살아가는 내 마음하고만 관련된 것이었다.


초희는 당연히 아직까지 초희라는 이름에 반응하지 않는다. 노자는 분명 ‘노자’ 하는 소리를 알아듣는 것 같지만 귀만 움찔할 뿐 반응은 하지 않는다. 초희는 오로지 노자의 울음소리에만 반응하며, 어디선가 노자가 야~옹하면, 검고 큰 고양이랑 놀아야지 하며 덤벼든다. 노자가 밥을 먹으면, 크고 검은 고양이가 밥을 먹네, 같이 먹어야지 하고, 검고 큰 고양이가 귀찮아하며 2층으로 올라가면, 추격전이구나! 본격적으로 노자를 괴롭힌다. 애초에 강아지도 아니고 고양이가 이름을 부른다고 다가올 거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고양이와 나의 관계 정립을 위해선 고양이 사이에서 나를 어떻게 부르는지나 알고 싶다. 언뜻 떠오르기에, ‘참치’와 관련된 의미는 아닐지.


초희, 반 살


내 삶이 어떤 형태를 띠고 있는지 잘 그려지지가 않는다. 떠오르는 기억 전부 다 내 모습 같으나 어쩐지 내가 지나쳐 온 모습들뿐이다. 이제 그 모습으로 사는 데 질렸고, 지쳤다. 그렇다고 그 모습들을 떨치고 성숙이나 현명 같은 단계에 진입할 것 같지도 않다. 여전히 화를 잘 내고, 맥주를 마시고, 지도를 보고, 걸어 다닌다. 내가 가는 길은 먼 순환선이고, 벌써 스무 바퀴는 돌았다. 다음 도착할 장소가 예상되지만, 늘 그런 모습, 그런 감정으로 도착하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새로운 모습이라 할 수도 없다. 지금 이 순환선의 이름은 노자이기도 하고, 초희이기도 하고, 조주이기도 하고, 쭈쭈르이기도 하다. 그걸 억지로 하나로 꿰맞추자면 ‘한평생’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 


초원의 치타처럼 직선으로 질주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으나, 지금껏 내게 주어진 삶에는 굴곡진 테두리가 씌워져 있었다. 그게 갑갑하긴 해도, 벗어날 수는 없을 것 같다. ‘도’와 달리 내게는 형체가 있고, 지역적, 유전적, 환경적 제약이 있다. 그래도 나의 삶이 질서보다 혼돈에 섞이거나 스치기를 바라며, 마음은 항상 그 혼돈에 뒤섞여 있다. 그 혼란 속에 머물러야 언젠가 아주 작은 ‘비틀즈 조각’이라도 빚어지길 기대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글 이주호

여행 매거진 BRICKS의 편집장. 여행을 빌미로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며, 『무덤 건너뛰기』, 『도쿄적 일상』, 『오사카에서 길을 묻다』를 펴냈다.

인스타그램 : @ree_joo_ho


<고양이 노자가 사는 집> 브런치북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곧 내용과 편수를 보완하여 좋은 책을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고양이 노자가 사는집> 브런치북에 실린 사진 출처
이주호, 신태진, 클라우드픽, pexel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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