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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Sep 10. 2020

수성동 계곡에서의 한철

생명은 왜 신비로운가

<도덕경> 6장
: 곡신불사谷神不死, 계곡의 신은 죽지 않는다. 시위현빈是謂玄牝, 이를 신비한 여인이라 한다. 현빈지문玄牝之門, 신비한 여인의 문. 시위천지근是謂天地根, 이것을 천지의 뿌리, 생명의 모태라고 한다.


종로의 맥주집 옥토버훼스트나 비어할레 광화문점에 다녀 온 이튿날만 아니라면 비가 오든 영하 18도가 되든 아침 산책으로 인왕산 언저리를 걷는다. 아침마다 집에서 나와 누하동 한옥 골목을 구불구불 통과해 윤동주 하숙집 터 앞을 지나 인왕산 수성동 계곡에 이른다. 여기서부터는 본격적인 산길이다. 1코스는 오른쪽 부암동 방향. 인왕산 산책로를 따라 윤동주 문학관까지 올라갔다가 경복고등학교, 청와대를 거쳐 오전 11시 전에 가야 커피를 이천 원에 살 수 있는 ‘제대로 커피’에서 아이스커피 두 잔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가장 빈번해서 1코스, ‘오늘은 부암동?’ 코스다.



2코스는 수성동 계곡에서 왼쪽 사직동 방향. 무악동과 사직동 경계에서 성곽 길을 따라 행촌동 주택까지 내려가서 잠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성곽을 따라 경희궁, 서울 역사박물관에 이르는 길이다. 이 길에는 내가 만든 ‘우리가 비틀즈는 아니니까’ 모임 멤버인 뮤지션 ‘더준수’의 작업실이 있다. 내가 산책할 시간에는 나와 있지 않다는 걸 알지만 인사 삼아 창문 안을 들여다보고는, 어제도 책상 정리를 잘 하고 갔군, 대견스러워 한다. 요새 부쩍 책상 정리를 귀찮아하는 터라 그게 참 대단해 보인다.


2코스는 1코스보다 30분 정도 더 걸린다. 돈의문 박물관 마을도 구경해야 하고, 경희궁에 들어갔다 나오는 날도 있고, 서울 역사박물관, 시네큐브, 복합공간 에무를 지나가며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다 끝내 가지 않는 과정까지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코스의 다른 이름은 ‘오늘은 시네큐브?’ 코스다.


참고로 멤버가 둘뿐인 ‘우리가 비틀즈는 아니니까’ 모임은 무언가 창작 비슷한 작업을 하긴 하는데, 재능이 비틀즈는 아니라서 성과도 반응도 그저 그런 인간들이 커피나 마시면서 우리는 비틀즈가 아니므로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오랫동안 작업하자, 건강관리 잘 해서 언젠가 좋은 창작물이 나오는 꼴을 보고 말자, 그러려면 장수해야 할 텐데 요새 어떤 영양제를 먹고 있느냐, 한담을 나누는 결사체다.


산책하기 가장 좋은 계절은 장마철이다. 인왕산에 그늘이 많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며칠 비가 오고 멎은 다음 날 수성동 계곡에 물이 차 흐르는 광경은 인왕산이 아껴두었다 개방해 주는 1년에 며칠 안 되는 특별 관람 기간이기 때문이다. 사철 물이 흐르는 계곡이 아니라 수성동 계곡에는 보통 물이 말라 있다. 풀이 지저분하게 엉켜 있고, 움푹 파여 물이 고여 있는 곳마다 이끼들 사이에서 이런 저런 유충들이 잠영을 하고 있다. 그러다 비가 산을 속속들이 적셔 주고 난 준 다음 날에는 그간의 찌꺼기와 먼지가 휩쓸려 사라지고 드디어 맑게 걸러진 물에 발을 담글 수 있게 된다. 이 계절이 지나면 계곡물에 발을 담그기까지 또 1년을 기다려야 한다. 


물의 깊이가 적당한 날 밤에는 반바지에 샌들을 신고 수성동 계곡으로 간다. 누하동의 골목길을 지나 서촌 오락실에서 ‘스트리트 파이터’를 한 게임 하는 날도 있지만 주머니에 현금을 가지고 다니는 날이 드물어 보통은 마을버스 정류장 종점 편의점으로 직행, 맥주 네 캔과 소시시를 산다. 텅 빈 계곡엔 굽이를 돌며 조근거리는 물소리와 낙차에서 빚어지는 조금 더 큰 물소리뿐이다. 크고 작은 물소리가 마음이 섞여 들면 의식은 차분하게 계곡에 숨겨진다. 편평한 바위에 앉아 종아리까지 물에 담그고, 얼굴과 팔을 적시고는 머리카락에서 물을 뚝뚝 떨구며 맥주를 마신다. 밤의 계곡에 앉아 있다고 해서 무수한 별이 머리 위를 뒤덮는다거나 반딧불이가 깜빡, 깜빡 날갯짓을 하는 별세계가 펼쳐지진 않는다. 이곳은 엄연히 대도시 서울의 한복판, 도심의 불빛이 이곳 하늘까지 번져 있다. 수성동 계곡이 숨겨 놓고 있는 건 은밀하고 작은 생명들이 아니라 오로지 계곡 자신이다.



노자가 ‘도’를 계곡의 신이라 한 건 계곡이 품고 있는 생명력, 기운 때문이었을 것이다. 움푹 파인 계곡이라는 공간, 그 비어 있음. 노자는 ‘허虛’에서 모든 생명이 태어나고 자라고 약동한다고 생각했다. 바람을 뿜어내는 풀무처럼 비어 있는 곳에서 생명력이 용출되어 나오는 것이다. 그 계곡의 생명력은 이어서 신비한 여인에 비유되는데, 아마도 모태, 생명의 근원이란 연상 때문이었겠지 싶다. 여성들이 정말로 신비한 힘을 발휘해서가 아니라, 생명 탄생이란 현상이 신비로웠던 것이다. 그리고 생명이 신비로운 건 당연히 인간들이 생명을 둘러싼 영역을 명명백백 알고 있지 못한 까닭이다.


여성을 수식하고 있는 글자는 ‘현玄’이다. 오묘하다, 신비롭다, 고요하다, 아득하다, 얼떨떨하다. 끊이지 않고 생명을 순환시키는 오묘한 작용을 생각하자니 생명의 근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여성의 존재가 도에 가까워서 신비하다는 건지, 신비로운 느낌 때문에 도에 가까워 보인다는 건지는 모르겠다. 현玄이라는 단어로 묘사했다는 걸로 미루어 둘 중에서 어느 것인지 모른다, 어느 것이든 상관없다는 의미가 아닐까. 저 어두운 길모퉁이를 돌아나가는 바람, 그저 두렵고 신비스러울 따름이라는. 그런데 신비란 건 결국 규명되지 못한 것, 미지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두려움, 거리감에 불과한 것이 될 수 있다.


예컨대 성별이 다섯 개쯤으로 나뉜다면 그중에 신비로운 성 하나쯤 있을 법도 하고, 그래서 여성이 신비롭다 이런 말에 선선히 동의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게 뭔가, 남성 아니면 여성 달랑 둘이다. 둘 중 한쪽이 신비로워라 우러르니 신비로운 대상이 생겨나고, 남성은 어부지리로 이성적, 합리적 인간으로 자리매김한다. 합리적 인간들이 인간 세상을 두루 관찰하여 이성의 영역에 테두리를 긋고 그 너머를 비이성, 비합리의 영역으로 둔다. 그리고 나머지 성 하나를 그 테두리에 걸쳐 두고서 때로는 인간 영역에, 때로는 인간 외부 영역에 갖다 붙인다. 이성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성별. 이런 이질화, 신격화는 곧잘 차별, 혐오로 변하고는 했다. 성스런 여인, 정숙한 여인을 더럽고 추악한 여인, 창녀, 마녀로 전락시키는 것이 이성적인 인간들이 줄기차게 열광해 온 놀이, 호르몬 솟구치는 상상이었다. 성녀에서 창녀로, 창녀에서 성녀로, 둘 다 상스러운 이야기들이다. 



아침 산책길 수성동 계곡을 지나 제3 코스는 인왕산 정상까지다. 윤동주 시인은 매일 아침 계곡에서 세수를 하고 산 중턱까지 올라갔다 와서 하숙집 주인이 차려준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갔다고 한다. 만주에서 평양, 서울, 도쿄, 교토에 이르는 광활한 활동 반경, 그 폭넓은 이동과 대비되는 매우 단순한 내면, 세수 같은 자기반성. 내가 윤동주 시인의 자취를 찾아 만주와 교토, 후쿠오카를 다녀온 것도 그 말간 청년의 얼굴이 그리워서다.


내가 평생 감추고 살아온 나의 얼굴, 그 얼굴을 윤동주 시인의 시 구절에 비추어 본다. 어른이 된 내 마음속 깊은 계곡 안에 그 말간 얼굴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 초여름 밤 계곡물에 무릎까지 담그고서 발을 첨벙거리며, 가냘픈 나뭇가지 아래에서 맥주 캔을 따고 계곡물 소리에 마음을 기대면, 내가 살아가며 꼭 해야 할 일은 새로운 재화의 획득이 아니라 지나간 말간 얼굴의 회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수를 하고 모기에 뜯긴 팔과 다리에 물을 끼얹고 소시지를 한 입 문다. 케첩이 필요하다, 다음에 올 때는 케첩을 싸 와야지. 그리고선 매점 케첩을 그리워하며 맥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이나마 단순하게 살기 위해 그 많은 격정, 다채로운 갈등, 싸움을 지나온 것 같다고. 나의 말과 세상의 말은 계곡물을 따라 어느덧 도시의 하수관에 숨어버린다.


이 계곡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계곡에 내려와 발을 담그는 사람은 더 많지 않다. 계곡은 오랜 세월 자신을 감춰 왔고, 나는 어느 밤 계곡 아래 숨어들어 물소리에 나의 생명 박동을 실어 보낸다. 내 목숨 어디로 흘러갈까, 어디까지 흘러갈까. 말간 얼굴을 실은 종이배는 어느 들판 달 아래를 흘러간다.


한여름이 오면 물은 말라 가고, 다음 장마가 올 때까지 1년을 기다려야 한다. 계절은 가고, 나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젖은 발자국을 옮겨간다. 올해처럼 여름이 다 가도록 비만 오는 해도 몇 번인가 끼어들지 모르지만, 매일, 매해 계곡의 생명들은 착실하게 피어나고 흐르고 마르고 떠나가고 찾아온다. 어느덧 나의 발자국엔 물기가 말랐고, 나의 흔적은 그렇게 꾸준히 사라진다. 정말로, 어느 한 순간도 신비롭지 않다.





글 이주호

여행 매거진 BRICKS의 편집장. 여행을 빌미로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며, 『무덤 건너뛰기』, 『도쿄적 일상』, 『오사카에서 길을 묻다』를 펴냈다.

인스타그램 : @ree_joo_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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