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Sep 09. 2020

음식의 부름을 거역해 본 적 있는지

꾸물거리는 삶을 먹여 다스리는

<도덕경> 3장 허기심 실기복 虛其心 實其腹
: 성인의 다스림은 마음을 비우게 하고, 배를 가득 채워준다.     


머리를 짧게 깎고 처음 찾아간 곳은 단식원이었다. 순례에 합류하기 한 달 전이다. 경기도 포천의 이름 대신 번지만 있는 산 중턱 단식원이었다. 왕복 한 시간의 고요하고 아름다운 산책길이 있습니다. 요가와 명상 수업으로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한 차원 높은 단계로 고양시킵니다. 죽, 채소 같이 단식을 도울 음식이 제공되며, 욕탕과 사우나, 개인실이 있습니다. 이런 조건을 내걸고도 이용료가 매우 저렴했다. 산속, 단식원, 그래 이곳이다. 한동안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 얼굴과 손이 커다란 두드러기처럼 말랑말랑 부풀었다. 소시지 같은 입술이 종일 저렸다. 사망보험이라도 들어 놓을 몰골이 되려면 그곳으로 가서 몸을 추슬러야 했다.     



버스에서 내려 짤막한 번화가를 지나 비탈길을 오르며 드문드문 하던 민가가 사라지고, 짓다 만 건물인지 철거 직전 건물인지 분간이 안 가는 요양원을 마지막으로 산 중턱까지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시멘트 길이 이어졌다. 저 길 끝에 단층 시멘트 건물이 보였다. 아니야, 아니어야 해. 거리가 좁혀질수록 거부감의 강도가 높아졌으나 그 또박또박 쓰인 글자는 분명 ‘단식원’이었다. 칠이 바랜 철 대문을 열고, 여느 가정집 마당과 다를 바 없는 공간을 지나 올록볼록한 모루유리가 달린 현관문을 열었다. 저, 계신가요? 매우 전형적인 파마머리를 한 아줌마가 극세사 잠옷 바지에 플리스 조끼를 입고 나타났다.      


“어떻게 오셨지요?”     


“오늘 오기로 예약한…….”     


“아, 네 잘 오셨어요.”     


원장이라는 아줌마가 내민 간단한 입회 서류를 작성하고,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앉아 구두로 안내 사항을 들었다. 사흘간은 세 끼 죽을 먹고, 밤에 간단한 채소를 드실 수 있어요. 원하시는 분은 처음부터 물만 드시기도 해요. 명상, 요가, 산책 명상, 사우나. 하루 정해진 일과가 있고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게 보내시면 돼요. 저기 물통 보이시지요? 거실 정수기에서 물을 떠오시면 되고요, 물은 되도록 많이 드시는 게 좋아요.     

 

음식 없이 물만 마시기로 했다. 1인용 침대와 작은 브라운관 TV가 전부인 방안에 평온보다는 궁색이 감돌았다. 침대에 눕자 공기 곳곳에서 곰팡이 냄새가 났다. 창문을 열고, 이불을 뭉쳐 베고 침대에 다시 누웠다. 아, 무얼 해야 하나. 아무래도 이곳에서 진행한다는 모든 프로그램에 참여해야겠지? 시간을 때우려면 뭐든 해야 할 것 같았다.     



오후 세 시. 요가 시간에 맞춰 ‘요가 명상의 방’ 문을 두드렸다. 극세사 잠옷 바지를 입은 원장 아줌마가 먹던 오이를 내려놓으며 황급히 TV를 껐다.

      

“무슨 일이시지요?”  


“요가 시간이라고 하셔서.”  


“아, 네, 잘 오셨어요.”

  

‘요가 명상의 방’은 원장 아줌마 부부가 쓰는 안방인 것 같았다. 아줌마와 마주보고 서서 어깨를 눌러주고 국민체조가 변형된 듯한 아주 기초적인 스트레칭을 한 뒤 심호흡을 하고서 요가 수업을 마쳤다. 15분이나 됐을까? 물통에 물을 한가득 담아 방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누웠다, 일어났다, 방바닥에 앉았다 누웠다, 잠들었다 깼다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밤이 되었다. 옆방에서 인기척이 나며 일일드라마가 시작하는 소리가 났다. 원장 아줌마와는 다른 목소리, 여자 둘. 과자 봉지 뜯는 소리, 귤 먹을래, 같은 뭘 먹자는 소리, 그리고 자정까지 이어지는 드라마, 드라마, 예능. 여자들의 웃음에 곁들여 자정까지 TV를 들었다. 그간의 피로와 경청의 수고가 겹쳐 아침까지 그런대로 잘 잤다.      




6시가 조금 안 된 시간. 세수를 하고, 물을 많이 마시고, 마당에 서서 ‘산책 명상’ 시간을 기다렸다. 정각이 지나고, 10분이 지나고. 아무도 마당으로 나오지 않았다. 혼자 문밖을 나섰다. 산책길은 보이지 않았다. 단식원 담장 끝부터 등산로가 아니라 그냥 오르막이었다. 나무 사이, 길일 거라 추측되는 곳을 발로 헤집어 봤지만, 낙엽에 깊이 덮여 사람이 지나간 흔적은 완전히 감춰져 있었다. 여기도, 저기도, 애초부터 길이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이러다 길을 헤매게 되면 하루가 갈 수도 있겠다. 뭐 어쩌겠나.   


낙엽 속을 허우적댔다. 낙엽이 발목을 덮어 걷기 어려웠고, 바닥이 미끄러워 자꾸 넘어지기마저 했다. 안 되겠다, 돌아가자 싶었지만 애초에 길을 걸어 온 것이 아니므로 방향만 비슷했지 왔던 깊을 되짚어 내려가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낙엽 부스러기가 온몸에 덕지덕지 내려앉았고, 마음은 조급해졌다. 여기서 멧돼지라도 만났다가는 온 산의 낙엽을 다 걷어내지 않는 한 시체도 못 찾게 될 것 같았다.     


저 아래로 단식원 지붕이 내려다보였다. 미끄럼을 타듯 조심스레 비탈을 내려가자, 3층 높이 벼랑 위에 서게 되었다. 마당이 바로 아래인데, 낙엽에 감춰진 게 바위일까, 흙더미일까. 주춤주춤 낙엽더미를 가슴으로 쓸면서, 꼭 껴안으면서, 뒤로 기어 별 탈 없이 단식원 마당에 발을 디뎠다. 그 모습을 지켜 본 사람이 이 지구상에는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렇게 절박했으나 적막했던 아침 산책 명상을 마쳤다. 옷을 털고 사우나실로 들어갔다. 세탁기, 세면대, 변기, 샤워기. 산책이 그랬듯 사우나도 이곳만의 방식이 있겠지만, 그게 무얼까? 내 눈에는 보이질 않는다. 밥 먹다 말고 식당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면 이런 기분이겠지. 먼지만 대강 닦아내고 방으로 돌아왔다.



두 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자 오전 10시, 명상 시간이었다. ‘요가와 명상의 방’ 문을 두드렸다. 인기척이 없었다. 다시 방문을 두드리고 기다리자니, 물 묻은 손을 극세사 잠옷 엉덩이에 닦으며 뒤에서 원장 아줌마가 나타났다. 


“무슨 일이시지요?”     


“명상 시간이라고 하셔서.”     


“아, 네, 잘 오셨어요.”     


예상한 대로 명상 선생님은 원장 아줌마였다. 작은 카세트 플레이어로 피리 연주 음악을 틀고, 심호흡을 하고, 따라 하세요, 쓰~읍, 숨을 참고, 후~. 아줌마의 호흡에서 김치 마늘 냄새가 났다.      


“머리는 왜 깎으셨지요?”     


마늘 냄새를 신경 쓰지 않으려 참았던 숨을 천천히 쉬었다.


“저한테 말씀하시지 않아도 돼요. 나를 힘들게 하는 일, 나를 괴롭히는 사람, 자, 내 마음에 대고 이야기해 보세요. 심호흡을 하고, 쓰~읍, 천천히 후~. 내 마음을 바라보며, 내 마음에게 이야기하세요. 네, 그렇게 잠시 계세요.”     


명상 선생님이 떠난 자리에 밥 냄새가 맴돌았다. 부엌으로 짐작되는 곳에서 냄비 뚜껑 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TV를 보던 여자 중 하나의 목소리. 언니, 따로 덜어 먹을 거야, 그냥 먹을 거야?          


방으로 가서 누웠다. 물을 많이 마시고, 화장실에 자주 다녀오고, 억지로 잠을 자고. 시간이 가고 있다는 게 기적 같았다. 저녁이 되자 다시 옆방 TV에 전원이 들어오고, 드라마, 드라마, 예능, 여자들의 웃음과 추임새. 이불을 덮어 쓰고 누웠지만, 몸 안에서 잠이 고갈되어 버렸다.     



새벽 두 시, 나의 수면은 초원을 질주하다 벼랑 앞에 급격하게 멈춰선 치타처럼 날카롭고 위태로웠다. 광고 음악. 그간 너무 익숙해서 나의 감각을 깨우기엔 너무도 무딘 자극들이 한 음, 한 음 내 신경에 축적되어 갔다. 그 노래들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나의 본성을 할퀴고, 곤두서게 했다. 그러다, 문득, 그 노래. 살아오며 무수히 들어왔던 그 음계, 한 번도 나의 주목을 끌지 못했던 그 노래가 나의 마음을 완전히 뒤엎어 버렸다.       


“맛동산 먹고 즐거운 파티. 솔솔솔 솔미, 파파미 파솔.”     


참자, 이 시간에 어떻게.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하지만 떠나지 않는 잔향, 진동, 계이름, 솔솔솔, ‘맛동산 먹고 맛있는 파티’. 몸에서 빠른 속도록 당이 새나갔다. 식은땀이 솔솔 나고, 초조해졌다. 뭐, 땅콩에다 버무렸다고? 과자를 튀겨서 땅콩에 버무려? 세상에, 그게 어떻게 맛없을 수 있어? 양손으로 뺨을 때리고, 관자노리를 누르고, 눈을 감고 쓰~읍, 후~. 심장은 질주를 그치지 않고, 척추를 따라 오한이 흘러내렸다. 숨을 내쉬고, 또 내쉬고, 참아야 해, 이제 이틀째야. 그때 정겹게, 아니 날카롭게 나의 척추를 관통하는 음계.     


“라시도, 솔~ 시도. 오뚜기 진~라면.”     


침대에서 튕기듯 일어났다. 옷을 입고, 주섬주섬 가방에 짐을 처넣고, 주머니 속 지갑을 만지작거리며 단식원의 문을 열었다. 나의 이성은 톰슨가젤을 만난 치타처럼 한 방향으로 질주했다. 오로지 먹이를 향한 질주의 본능만 남고, 시야에서 모든 풍경이 사라졌다. 컴컴한 허공에 발을 내딛었다. 맛(왼발), 동산(오른발), 먹고~(왼발), 오(오른발), 즐(왼발), 거운(오른발), 파티~(왼발), 이(오른발), 땅콩(왼발), 으로(오른발), 버무(왼발), 린(오른발), 튀김(왼발), 과자(오른발). 구령이 딱딱 맞아 떨어졌다. 한 시간 넘게 뛰어 터미널이 있는 번화가에 닿자마자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단번에 맛동산 두 봉지와 바나나 우유 두 개를 집어 들고 편의점 밖 플라스틱 테이블에 앉아 맛이 좋으니까 맛동산이지, 중얼거리며 봉지를 뜯고, 바나나우유에 빨대를 꽂고, 어그적, 어그적 과자를 씹었다. 바나나우유의 통통한 감촉이 듬직하고 대견스러웠다.        


   

여섯 시 첫차를 타고 두 시간. 막 문을 연 집 앞 마트에 도착했다. 삼겹살과 맥주를 사고, 조용히 현관문을 열었다. 엄마는 자고 있었다. 가방을 침대 옆에 놓고 엄마 옆에 누웠다. 일주일 뒤 오겠다며 집을 나간 아들이 이틀 만에 돌아왔으니 놀랐을 법도 하지만, 엄마는 아들의 민머리를 쓰다듬으며 눈도 뜨지 않고,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왜, 무슨 일 있었어?” 


“어, 환청이 들려.” 


“자꾸 꿈 꿔?”


“어, 노래가 들렸어. 맛동산 먹고 즐거운 파티, 맛동산 먹고 맛있는 파티. 옆방에서 텔레비전을 틀어 놓잖아.”

   

웃음이 오열처럼 터져 나왔다. 엄마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왜 텔레비전을 틀어 놓냐고, 짜증나게. 단식원에서 라면을 왜 끓여 먹어, 아, 진짜 짜증나, 엄마, 아줌마들이 자꾸 오이를 먹어, 시끄럽게. 텔레비전을 보면서."


“사람은 먹어야 사는 거야. 좋은 거, 깨끗한 거를 먹고 살아야 좋은 생각을 하지.” 


엄마가 밥을 차리러 나갔다.


“이거 니가 사왔니?”


“어. 나 삼겹살 사왔어.”


단식원에 가겠다며 나섰던 아들이 이틀 만에 아침밥으로 삼겹살을 구워 먹는 모습을 보며, 급기야 엄마의 웃음이 터졌다. 그게 내 인생에서 엄마를 가장 많이 웃게 했던 순간인 것 같다. 실기복, 배를 채우라. 마음이란 곳에는 원래 아무 뜻도 담겨 있지 않았다. 의미는 항상 내가 무언가를 저지르고 나서야 뒤따라 왔다. 내가 행한, 저지른 일의 과도한 해석, 뒤늦은 변명, 합리화, 하소연. 





사는 의미를 찾게 될 때마다 나는 배를 채운다. 뜻을 억누르려고 배를 채운다. 그러면 다시 생각을 하게 되고, 내 자신이 하찮아져, 산다는 게 하찮아져 안심이 된다. 이후로도 줄곧 나는 자리를 잡지 못하고 헤맸지만, 그걸로 엄마가 걱정을 한 적은 없었다. 인도 여행을 한다고 떠났을 때도, 시민운동을 해 보겠다고 이런저런 단체를 기웃거릴 때도, 엄마는 걱정하지 않았다. 내 앞날에 한숨 짓는 누나, 형을 안심시켰다.


“쟤는 좋은 거, 잘 먹어야 만족하는 애야. 절대 고생할 애가 아니야.” 


지금도 변변한 직업 없이 책이나 읽고 쓰는 나를 보면서도 엄마는 걱정하지 않는다. 


“괜찮아, 쟤는 뭘 하든 굶으면서까지 할 애는 아니야.” 




글 이주호

여행 매거진 BRICKS의 편집장. 여행을 빌미로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며, 『무덤 건너뛰기』, 『도쿄적 일상』, 『오사카에서 길을 묻다』를 펴냈다.

인스타그램 : @ree_joo_ho

이전 05화 바람의 진심을 가지는 알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