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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Sep 08. 2020

은빛 사막, 붉은 낙타 한 마리 되어

고양이와 어울려 사는 법

큰 도로에 이삿짐 트럭을 세우고 작은 트럭으로 옮겼다가 다시 카트에 옮겨 담는 번거로운 ‘전달’ 과정을 거쳐 짐들이 집안에 안착했다. 짐 정리를 대강 해 놓고 공사하는 기간 임시로 얹혀 살던 집으로 가서 고양이 노자를 데려왔다. 고양이들을 영역 동물이라 하는데, 한 달 넘게 뜨내기 생활을 견디느라 노자가 맘고생이 많았다. 하지만 이사를 하고도 자잘한 공사들이 남아 있었고, 노자는 어느 한 구석에 숨어 매우 더디게 새 집에 적응해 갔다.


노자와 함께 사는 인간 두 명도 노자만큼 더디게 동네에 적응해 갔다. 주변에 큰 마트가 없었고, 시장이 있긴 하나 그간 이용하던 망원시장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저녁 8시쯤이면 어지간한 가게들이 문을 닫아, 잠들기 전 간단히 맥주를 마실 곳이 없었다. 7시가 넘으면 인적도 드물어지는데,  인간이 비운 자리엔 열 마리 정도의 고양이가 기지개를 켜며 어디선가 슬금슬금 나타나 골목에 띄엄띄엄 자리를 잡았다. 골목 끄트머리 집을 작업실로 쓰시는 번역가 선생님이 이 고양이들을 먹여 살리는 ‘캣맘’이었다. 고양이 엄마는 일일이 고양이들에게 이름을 붙여 누가 아프고 누가 오늘 안 왔고 누가 새로 왔고 하며 아이들을 돌봐 주었다. 햇수로 8년 가까이 그렇게 사셨다. 고양이들이 먹는 간식을 보니 우리 노자는 엄두도 못 낼 고급 간식들이었다. 고양이들은 저이들끼리 질서 있게 어울려 살았고, 먹었고, 쓰레기 더미를 뒤지거나 싸움을 벌이거나, 발정 난 소리를 내지 않았다. 이 골목은 고양이들의 평화 정착지였다. 고양이들이 먹는 음식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아무래도 노자도 밖에 나와 사는 게 행복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막 해가 질 무렵엔 새로 한옥을 지어 이사 온 두 집에서 마당에 불을 켜고 간식이나 캣닢을 놓아두었다. 소심한 아이들은 차마 남의 집 안으로 들어가 간식 먹을 생각을 못했지만, 붙임성 좋은 아이들은 이집 저집을 드나들며 풍족하게 살아갔다. 이 두 가구 구성원들과는 나이도 비슷하고 골목에서 추구하는 바가 비슷하다. 그러니까 ‘공동체’, ‘가족 같은’이 아니라 ‘완전 개별’, ‘참견 금지’로 살아가며, 골목에서 마주치면 인사를 하고 일 년에 한두 번 어느 집에서든 맥주를 한잔할 수 있는 사이가 되어 갔다. 그리고 이런 만남의 중심에는 고양이 엄마가 있었다.      


우리의 공통된 고민은 고양이 관련 민원 해결이었다. 고양이가 밤길에 위협이 된다, 집 앞에 배설물이 있다, 시끄럽다, 동물의 생명에 인정을 베풀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인간의 오만이다, 그린피스도 자연 도태에 인위를 가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까 밥을 주지 말라. 서촌에서 가장 커다랗고 좋은 집들이 몰려 있는 통의동의 한 갤러리 주차장 앞에는 동네 사람들이 고양이 알레르기로 고통받고 있으니 더 이상 고양이를 돌보지 말아 달라는 정중한 헛소리가 붙어 있기도 했다. 인간과의 싸움과 마찬가지로 고양이에 얽힌 싸움을 끝내는 방법 또한 포기였다. 내가 땅을 포기한다는 합의를 해 준 것처럼, 온갖 벌금과 시비를 보복 없이 참아낸 것처럼, 고양이 엄마는 자존심 일부를 내려놓았다. 죄송해요, 고양이에 미친 여자 하나가 한 동네에 산다고 생각해 주세요. 쭈그리고 앉아 고양이가 밥을 먹는 모습을 내려다보면서 마냥 욕을 먹는다.     


내가 그분을 처음 만난 것도 속옷 바람으로 사납게 짖어대는 펑퍼짐한 남자의 소음이 거슬려 참견해서 화를 내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하얀 러닝 밖으로 배 위에 내려앉은 가슴살을 내비치며 남자는 고양이 엄마를 위협하고 있었고, 나는 그 사이에 끼어들어 그 동물을 짐승의 눈으로 노려보았다. 고양이 엄마는 이 상황을 모른 체했다. 나에게도 그렇게 하라는 말 같았다. 그것이 그분이 사람들과 싸우는 방식이었고, 고양이를 지키는 방식이었고, 나는 내가 얼마나 못 싸우고 살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이걸 이긴 거라 할 수 있나? 땅을 노리는 시선도, 남의 집 간섭하고 싶어 하는 민원도, 고양이를 노려보는 시선도 어느 하나 쉽게 끝날 싸움이 아니었다. 



화기광 동기진이란 말은 도를 저 산속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 속에서 구하라는 말이다. 불교에서는 보살이나 깨달은 사람이 세상 속에 머물며 무지한 속인들에게 깨우침을 준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사람들 사이에 깨달음, 도, 진리가 있다. 사람들 사이에 머물라. 진리는 탈속이 아니라 먼지에 섞여 있다. 그러나 나는 골목을 오가며 이곳에 무슨 진리, 삶의 진면목 같은 게 있겠나 생각했다. 내가 선생님이라 부르는 고양이 엄마는 정말로 낮에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지만, 밤에는 그 학생의 부모쯤 되는 사람들에게 미친년 소리를 듣는다. 누군가는 고양이 물그릇에 담배꽁초를 버리고, 누군가는 고양이 배설물을 모아 고양이 사료 그릇에 고이 담아둔다. 누군가는 노트북 앞에 앉아 길거리 고양이가 행인에게 미치는 알레르기를 연구한다.     


책상에 앉아 혼자 책을 읽고, 인터넷으로 강의를 보고, 새로운 책을 주문해 읽으며 지금껏 정리한 것들과 비교하며 노트에 정리할 때는 글자 그대로가 나의 마음이었다. 사람을 알아가는 것 같았고, 내 자신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하지만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책 속의 글귀들, 내 노트에 적힌 평온의 말들, 세상의 순리는 개별 음소로 분해되어 의미 없이 산발적으로 놓인 기호의 연쇄가 되었다. 그 기호로 해석하거나 추측할 수 있는 나의 삶, 인간 삶의 순리 같은 건 없었다. 화기광, 동기진. 이런 말들은 현실의 인간이 내뱉은 “씨발” 한 마디에 구겨진 종이가 되어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경쟁하지 않고, 천적과 다투지 않고 낙타처럼 살려고 했다. 인류가 아메리카에 닿기 180만 년 전, 북아메리카에 살던 낙타들은 인간과 정반대의 길을 걸어 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사막에 정착했다. 그리고 나는 세상의 경제적 천적이 아파트와 신도시를 찾아 떠날 때 그들이 떠나 온 길을 거슬러 도시 한복판 처연한 골목으로 걸어 들어왔다. 낙타는 포식자, 천적들과의 영역 다툼, 먹이 경쟁에서 패배했다. 다툼을 싫어하니 성공적인 사냥꾼이 될 수 없었던 거다. 낙타는 다툼 없는 곳을 찾아 걷고 또 걸었다. 걷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서 있게 된 곳이 사막이다. 한낮엔 50도까지 오르고 밤에는 10도 아래로 떨어졌다. 수시로 모래폭풍이 불어오고, 물도, 먹이도 없었다. 태양과 모래바람으로 눈을 뜨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낙타는 물과 먹이를 찾아 사막을 가로질렀다. 먹이가 넘쳐나는 경쟁 세상 속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다툼, 경쟁보다 훨씬 혹독한 환경에 자기 몸을 맞춰갔다. 싸움은 나의 내면만으로도 버거워. 체온이 34도에서 41도까지 오가도 몸 안의 단백질이 멀쩡하도록 단련되었고, 모래 폭풍이 불면 코와 귀를 닫을 수 있도록 근육을 발달시켰다. 아주 얇은 눈꺼풀을 내리고 모래폭풍 속을 걷는 낙타의 몸 안에는 200리터의 물이 저장되어 있고, 수분이 고갈되면 불룩한 등에 모아둔 지방을 분해해 에너지와 수분을 만들었다.     


이곳은 자동차가 들어올 수 없고, 인터넷 설치가 어렵고, 내비게이션마저 불명확해 배달 사고가 빈번하고, 1년에 한 번 따로 정화조 청소를 해야 하고, 심지어 주말이면 시위로 버스가 끊기는 도시 속 사막이다. 나는 도시 사막을 찾아 낙타처럼 걸어왔다. 1년이 지나자 나는 싸움이 늘었고, 민원에 익숙해졌다. 내 마음 벽엔 다툼의 잔해가 덕지덕지 붙었고, 집 현관에는 신축 한옥 공사장에서 날아온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지만, 아침마다 화단에 물을 주고 물청소를 하며 생각한다. 내 마음이야말로 사막이었어. 메마른 골목에 앉아 <도덕경>을 펴고, 화기광, 동기진을 읊으면, 때때로 글자들이 화석에서 깨어나 장미꽃이 피고, 라일락 향기가 났다. 이 공간, 내 집과 골목은 글자에 숨을 불어 넣는다. 세상은 글자에 미치지 못한다. 그런 글자로만 세상을 접한 사람은 세상에 미치지 못한다. 글자만으로는 글자를 읽을 수 없다.      


우리 집과 같은 빨간 벽돌 담 아래 화단을 만들고 백일홍을 심은 옆집 친구들이 화단에 물을 주면서 말한다. 여기 오니 정말 날씨와 함께 살아간다는 게 실감이 나요. 마당에 나오면 집밖이긴 하지만 완전히 바깥도 아니어서 땅과 하늘을 내 것처럼 볼 수 있잖아요. 햇빛도, 바람도, 비도, 나의 공간에서 보고 있다는 게 좋아요. 아파트 살 때 하고 비교해 딱히 불편한 것도 없는 것 같아요. 그동안은 집이란 공간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야지, 하는 생각을 안 해 봤는데 이제는 나이 들었을 때 우리는 여기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그런 얘기도 자주 해요. 



골목은 내 눈앞의 글자에 새로운 길을 틔우고, 나는 그 길을 따라 한 글자 한 글자 사막을 가로지른다. 그러면서 여전히 생각한다. 내가 다음에 살게 될 곳은 어디지? 내가 이곳에서 늙어갈 수 있을까? 지금껏 거쳐 온 잦은 이동들이 마치 아프리카를 떠난 인류가 정착지를 찾아 유럽, 시베리아를 지나 얼어붙은 베링해협을 건너는 모습 같기도 하다. 내 유전자의 조상들은 세대를 거듭한 걷기 끝에 아메리카에 닿았다. 그걸로 인류의 거대한 이동은 마무리되었던 걸까? 나 역시 그 세대를 거듭한 이동의 한 대목, 집을 찾아 떠나는 그 오랜 인류의 이동을 착실히 걸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인간의 삶이란 그저 집을 찾아 헤매는 게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사막을 지나, 얼어붙은 바다를 건너, 비가 멈추지 않는 축축한 습지를 걷는다. 지난 10년간 함께 걸어 온 사람이 있고, 고양이 두 살 된 노자가 발에 치이면서도 머리를 비비며 다리 사이를 통과하며 걷는다. 두 달 전에는 아기 고양이 초희가 새로 왔다. 호기심 많은 초희는 나와 보조를 맞추며 천천히 걸으면서도 세상 온갖 것을 바라본다. 나는 낙타가 되어 고양이들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고 내 몸을 녹여 물을 먹여 준다. 고양이들은 익숙한 길을 걷듯 장난을 치며 앞서 뛰어가기도 하고, 어느 높은 곳에 앉아 언제쯤 내가 올지 내려다보기도 한다. 그 눈망울들이 흡족하다.     


야~옹 하는 소리로 멍한 시간에서 깨어난다. 노자는 나와 눈을 마주치고선 냉장고 아래로 걸어가 털썩 눕는다. 그리고 다시 눈으로 말한다. 이제 생각 같은 건 모래사막 깊숙이 묻어 두고 어서 몸을 일으켜 냉장실 안의 참치 캔을 꺼내줘. 초희는 작은 방울이 달리 장난감을 물고 와 내 발 앞에 내려놓는다. 흔들어! 어서! 그게 이 아이들을 알아가는 유일한 방법일 테니, 한 손에 방울 장난감을 들고서 냉장고로 걸어간다.


초희




글 이주호

여행 매거진 BRICKS의 편집장. 여행을 빌미로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며, 『무덤 건너뛰기』, 『도쿄적 일상』, 『오사카에서 길을 묻다』를 펴냈다.

인스타그램 : @ree_joo_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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