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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Sep 07. 2020

소크라테스의 변론: 왜 모른다는 걸 모르지?

무엇보다 내가 모른다는 걸 인정하는 게 그렇게 어려웠다

아테네 젊은이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았으나 기원전 399년 소크라테스는 그 유명한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 멜레투스라는 사람이 그를 무신론자에 청년들을 타락시킨다는 죄목으로 고소했을 때 소크라테스나 그의 친구들은 심각한 일이라 여기지 않았다. 멜레, 뭐? 멜레투스가 뭐하는 놈이야?  


그러나 존재감 희박한 고소인의 배후에 정치가 아니투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들뿐 아니라 아테네 사람들 전부가 소크라테스가 이기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스파르타와 27년에 걸친 전쟁에서 패전의 종지부를 찍고 30인으로 구성된 친 스파르타 독재 정부가 들어섰을 때, 아니투스는 이들과 맞서 싸워 민주주의를 되찾은 공신이었다. 그는 소크라테스를 싫어했다. 민주 인사들이 목숨을 걸고 내전을 벌이는 동안 소크라테스는 아무런 참여도, 저항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30인 독재정권 일원으로 악명을 떨친 크리티아스가 소크라테스의 옛 제자였다. 501명의 배심원이 구성되었고, 재판은 하루에 끝난다. 고소인이 원하는 형량은 사형이었다. 만약 소크라테스가 재판에서 패배하면 사형을 당하고, 승소하면 멜레투스에게 벌금이 부과된다. 


이제 소크라테스의 변론. 


도대체 신은 무슨 말씀을 하신 걸까. 나는 신의 말씀이 진짜인지 알기 위해 지혜로운 자들을 찾아다녔다. 누군가 나보다 지혜로우면 신탁이 틀린 것이므로 나는 내게 부과된 그 무거운 신탁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지혜롭다 정평이 나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곧 그들이 지혜롭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사람은 모르면서도 알고 있다고 우겼다. 나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만큼은 안다. 이 점에선 확실히 내가 그들보다 지혜롭다. 내가 사람들의 미움을 사게 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나는 신의 명령으로 철학을 하였고, 나 자신과 남을 검토하며 살았다. 이제 와 죽음이 두려워 내가 지킬 것을 버리고자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신을 믿지 않는 자가 하는 행동이 되고 말 것이다. 


유죄 280표, 무죄 220표. 감형을 위한 소크라테스의 재차 변론. 


결과가 이렇게 나오리라는 것을 나는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게 적합한 평가는 사형이 아니라 국가적인 대접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 추방으로 감형해 달라고 해서 목숨을 부지하지 않을 것이다. 내 친구들이 벌금을 내 준다 하므로 그 정도로 타협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건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들을 위해서다. 내가 죽게 되면 나를 죽인 사람들은 세세토록 악명을 얻을 것이다. 내가 소송에서 진 것은 변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뻔뻔하지 않아서였다. 이제 떠날 때가 되었다. 나는 죽으러 가고, 당신들은 살러 간다. 그러나 우리들 중 어느 쪽이 더 좋은 곳으로 가는지, 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른다.   

그가 직접 남긴 기록이 없는 바람에 그의 죽음을 역사적으로,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책이 세기마다 베스트셀러가 되어 왔다. 그가 그리스의 신을 믿지 않았고, 젊은이를 선동했다는 죄목을 반박하는 내용부터, 플라톤과 소크라테스는 사상이 달랐다는 증명, 다수의 찬성으로 ‘진실’이 결정될 수 있겠냐는 보편적 민주주의에 대한 거부, ‘악법도 법이다’라는 소크라테스가 실제 하지도 않은 말을 만들어 내어 전제정권의 악법을 옹호하려던 악의적 시도까지. 민주의 가치와 소크라테스의 유산이 쓰이는 방향은 해석하고 받아들이기 나름이었다.


그러나 나는 ‘너 자신을 알라’ 문구를 되새겨줄 가르침 같은 건 받아보지도 못하고 아테네로 돌아 왔다. 지루하고 긴 늦여름 한철이었다. 민박집에 남겨 둔 짐을 찾고, 주인이 선물해 준 1리터 올리브오일 깡통을 세 개나 배낭에 넣고 다리를 휘청대며 이탈리아로 가는 배를 탔다. 로마로 이어진 그리스의 유산을 확인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로마에서 일하고 있던 누나를 만나 여비를 구걸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폴로 신전일지도 모를 신전


어느덧 계절은 늦가을이 되었고, 나는 누나에게 받은 용돈으로 리바이스 코듀로이 점퍼와 청바지를 사 입고 유럽 여러 도시를 거쳐 파리로 갔다. 마음에 품고 있던 니케 여신상을 몇날 며칠 보고 또 보다가 이제 스페인으로 가 볼까 계획을 세웠지만, 중국인 상점에서 사 온 한국 라면을 끓여 먹고 배탈이 나서 이틀간 사경을 헤매다 가장 빠른 비행기를 잡아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민주 가정은 나의 귀가를 마치 엊저녁 정동진 일출을 보러 떠났던 사람처럼 받아들였다. 나의 20대는 그렇게 진전 없고 맥락 없이 가버렸다. 연관성 없는 직업들로 생계를 이어갔고, 휴학과 복학 퇴학과 재입학 끝에 서른 다 되어 대학을 졸업했다. 교문 앞 횟집에서 조교 형에게 졸업장을 받기까지 교문과는 내내 데면데면했다. 


학교에서 나와 미래 타개책 삼아 잡지, 단행본 출간 같은 거대한 출사표를 던져보기도 했지만, 뭐든 다 잘 되지 않았다. 잘 되지 않으리라 미리 단정하고 있었기에 절망을 내보이지 않으려, 조급해 보이지 않으려, 여유로운 표정과 다정한 말투를 가장하고 다녔다. 그래봤자 좌절과 자격지심은 번번이 누적됐고, 나를 매우 공격적인 인간으로 만들어갔다. 내 마음 돌이킬 수 없는 건가? 악착같이 여유를 추구하며 불교 서적을 읽고, 명상을 하고, <도덕경>도 읽게 되었다. 몇 년 전에는 오로지 ‘유유자적’이란 주제만으로 책 한 권을 써 보기도 했다. 그러나 내 마음, 아직 3층에 멈춰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 18층 입주민이다.





처음 <도덕경>을 읽기 시작한 건 이사로 인한 스트레스로 심장 부정맥이 생기고 난 직후였다. 나는 부정맥의 이유를 그렇게 생각했지만, 병원에서는 지나친 음주 때문이라고 했다. 스트레스, 압박, 자책으로 맥주를 마셨으니 둘 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마음이 편하고 싶다는 바람은 진척이 느렸다. 


“그가 고대의 다신교적 신앙을 복원하려 했다면, 해방된 영혼의 무리를 이끌고 신전과 성스러운 숲으로 가 조상신들에게 다시 제물을 바치라고 했다면, 나이든 시민들은 그에게 명예를 안겨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그것이 자멸적 정책이라고, ‘무덤을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후퇴하여 무덤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 윌 듀런트(정영목 옮김), <철학이야기>, 봄날의 책, 2015  


지혜 없이 무덤까지 가려면 무위無爲의 마음이라도 얻어야 한다. 아직 엘리베이터는 5층이고, 나는 조급하지 않은 척 무위를 ‘하려고’ 한다.


위무위爲無爲. 앞에 있는 ‘위’에는 위선, 가짜, 거짓이라는 의미도 있다. 그러나 이 표현에서는 무위를 가장한 행동, 무위인 척 속이는 행위라도 해서 그것을 구현해 보라는 적극적인 의미가 있다. 그렇게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런 척이라도 해라. 그러다 보면 자연스러워질 날이 올지도 모르잖나. 그렇더라도 이 무위에는 ‘하다’라는 단서가 달려 있다. 억지로, 일부러, 그래서 심하게는 위선적이라고까지 말할 수도 있다. 


이후 5년 가까이 이런 저런 노자의 책들을 읽어 보았지만, 매번 ‘이런 말이 있었던가?’ 하는 기억력이야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여유로운 척, 화가 안 난 척, 너그러운 척, 무엇 하나 자연스러워지지 못했다.


사무사事無事 미무미味無味. 일이 없는 것으로 일을 삼고, 맛이 없는 것으로 참맛을 삼으라. 노자는 그렇게 말하지만, 무미의 맛은 고사하고 맛집을 걷어내면 내 삶에 메울 수 없는 싱크 홀이 생긴다. 민주가정을 떠나 20여 년. 바지런을 떨지 않으면 끼니도 못 챙긴다는 조바심으로 닦달하고 살아온 터, 직업으로서의 일이 끝나도 빨래든 음식이든 소일을 하지 않으면 죄책감에 짓눌린다. 나는 무엇이든 해야 했고, 그게 무슨 일이든, 했다. 30대에 들어서며 이왕이면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는 의지가 생겨나며 어쩐지 못할 것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늘 ‘하고 싶은 것’이란 벽에서 멈추고 말았다. 하고 싶은 게 뭔지 몰랐다. ‘하고 싶은’의 목적어를 끝내 지목하지 못하다 보니 삶이 공허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마흔이 넘고부터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나한테 더 좋은 것인가, 의구심이 든다. 하고 싶은 일과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 둘 다 내게 더 좋은 일과 연관 지어 보면 썩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하고 싶다'는 욕구는 다분히 ‘문화’ ‘레저’ ‘교양’의 세뇌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도 든다. 뉴스나 신문을 보지 않으면 세상사에 뒤처진다는 말이 삶을 통해 한번이라도 증명된 적이 있었나? 뉴스는 망각을 위해 생산되지 기억을 위해 생산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원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이란 것의 분야는 거의 정형화 되어 있다. 성찰, 헌신, 공유, 공생, 행복. 포장하는 문구도 항상 그대로다. ‘하다’와 ‘싶다’의 관용적 호응은 정말로 목적어를 갖고 조합된 것일까? 나는 언제까지고, 무슨 일이든 하고는 있을 것 같다. 내가 원하는 건 일에서의 여유, 자유, 성취가 아니라 결과를 신경 쓰지 않고, 조급해 하지도 않으며 일을 ‘하는’ 것이다. 나에게 ‘무위’란 정말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할’ 때의 마음가짐이다. 


그러나 지무지, 나의 무지를 자인하는 것은 아직 너무 어렵다. 나의 무지가 노출될 때면 여지없이 무언가를 안다고 우기고, 내 뜻대로 조정하려 억지를 쓴다. 내 스스로 잘 모른다고 말하는 것마저 ‘지’가 있음을 드러내는 가식, ‘아니야, 너 잘 알아’를 듣기 위한 유위인 것이고 나중에 내 가식적인 행동을 되짚으며 실망하고 역겨워한다. 침울해진다. 그럴 때 생각한다. 델피의 달팽이 구조대로 보내던 스물넷의 가을과 복채도 없이 무당에게 점을 보겠다고 일주일을 걸어왔을지도 모를 소크라테스를. 인간은, 특히 나는, 앞날 같은 건 내다볼 수가 없다. 내가 알아야 할 것은, 내가 지금 이대로 평안하다는 사실, 몰랐다고, 그래서 알아 간다고 해서 나 자신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을 거란 사실이다. 




글 이주호

여행 매거진 BRICKS의 편집장. 여행을 빌미로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며, 『무덤 건너뛰기』, 『도쿄적 일상』, 『오사카에서 길을 묻다』를 펴냈다.

인스타그램 : @ree_joo_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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