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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Dec 19. 2023

프롤로그

중년이 되어서야 내 삶의 작가가 되었다.

국민학교를 입학하기전 벽보에 붙여 있는 각반의 이름들을 찾기위해 헤메이는 8살 여자아이가 떠오른다.

앞가르마를 하고 길게 땋아 늘어뜨린 머리를 한 아이는 할머니 손을 꼭 붙잡고 있다.

내가 몇반인지 알아야하기 때문에 내 이름 석자를 찾아야했다.

같은 동네 친구가 "너 이름 여기 있네' 하고 찾아주었다. 한글도 제대로 읽지 못했던 아이가 국민학교라는 새로운 곳에 가게 되었다.

낯설었던 학교생활에 조금씩 익숙해져 가며 악기를 연주하는 합주부에도 가입을 하게 된다.

학교별 대회도 나가고 멜로디언에 조금 익숙해질만할 때 국민학교를 졸업한다.


어느새 그 아이는 중년이라는 나이가 되어 작가의 꿈을 꾸고 있다.

50을 넘긴 나이, 어머니의 마지막 나이를 넘기며 살아가고 있다.

글쓰기를 하면서 어릴때 삶을 되감기 해보고 지금까지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본 적이 있는지 자문을 하게 된다. 글을 쓰고 있는 이시간, 겨울옷 몇가지와 통장에 100만원만을 들고 뛰쳐나왔던 그 날을 회상한다.


내가 아닌 나로 살았던 삶에서 이젠 내가 내 삶의 작가가 되고 싶다.

"혼자 있는데 외롭지 않아?"

내가 좋아하는 일에 몰입 하며 살아가고 있어 외롭다는 생각은 일부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질문을 하는 친구들이 더 외로워 보였다.

외로움이란 함께 있는데 공감해주는 사람이 없을때

그 작은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다.


이혼 후 10년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도 낯설고 익숙치 않은 생활이다.

쓰나미처럼 파도에 밀리듯 살아온 세월들이 쌓여 중년이라는 산중턱에 올라와 있다.

쉼없이 올라 와서 이제야 조금 숨을 돌리는 걸까

나를 돌아 보게 된다.

나를 찾고 있는 또 다른 내가 낯설다.

내 나이와 딸들의 나이는 비례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자꾸 잊어버리고 산다.

어엿한 성인이 된 예쁜아이들

마당 한켠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이 마술을 부린거 마냥나보다 커져있다.

내가 키웠던 아이들이 나를 돌보려하는 이 낯설음 또한 익숙하지 않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나이 51세를 넘겼다.

사별을 한 부모의 나이를 사는 중년에게 온다는 불안감은 나에게만 있는 감정이 아님을 알아가고 있다.

약도 없는 저혈압에 익숙해져야하는 나를 돌보고 있다


하루라는 낯선 시선이 일상이라는 시간속에서 익숙해져가 듯 나 또한 중년이라는 나이에 익숙해져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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