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0여년간 공기업에 다니는 워킹맘이었다. 귀농도, 새로 집을 짓는 것도, 새로운 직업을 찾은 것도 아니고, 아이슬란드에서 오로라를 본 것도, 대구잡이 배를 타본 것도, 세상의 끝에 가 본 것도 아닌, 여행가를 꿈꾸면서도 단 한번도 편도 차표를 사본 적도, 혼자서 떠나본 적도 없는 전형적이고 평균적이고 모험심 없는 나는, 공공기관 이전계획에 따라 어느 정도 할 수 없다는 분위기를 풍기며 퇴사를 하고 몇십년을 살던 서울을 떠나 낯선 도시에 입성했다. 남편이 다니던 회사가 같은 이유로 이전한 도시였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곳으로의 이사였고, 지방러가 되는 선택이었다.
남편의 회사 이전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그 즈음 10여년간의 워킹맘 시절을 그만두고 싶은 열망도 컸음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 같다. 마침 체력도 동났고, 둘째아이가 너무 예쁘고 면역력이 약해 자주 아픈 것이 좋은 핑계가 되어주었다. 나와 남편의 회사의 지방 이전은 그렇게 절묘한 변명이 되었다. 변명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처럼, 이렇게 사실 자의반 타의반으로 나는 합리적이고 타당하게 회사를 그만두었다.보통 서울에서 아이를 키우는 집에서 아이가 아주 어리지 않다면, 이런 경우 주위에선 자연스럽게 아이와 엄마는 서울에 남고 자연스럽게 주말부부가 되기 마련, 주말부부란 삼대가 덕을 쌓아야만 할 수 있다는 말도 있는데, 나는,내 발로 그 복을 걷어차버린(?) 셈이다.
처음에 6개월여 주말부부를 마치고는, 정말로 지방으로 이사를 했을 때, 우리는 예의 그 맞이의식과 이별의식에 진이 빠져 금요일이 되면 "우리가 이사를 하지 않았으면 아마 지금쯤 당신은 서울오는 기차를 타고 있었겠지?", 일요일이 되면 "우리가 이사를 하지 않았으면 지금쯤 당신은 대구가는 기차를 타려고 가고 있었겠지?" 하며 굳이 애틋한 감정에 빠져있다가, 그것도 이사 온 지 한달 정도 지나 어느덧 그러지 않게 되었다. 그대신 우리는 부산, 양산, 밀양, 하동, 구례, 포항, 산청, 사천 어디로든 내달렸다. 서울이 아닌 그 어느 곳이 내게는 샌프란시스코고, 시실리였다.
맞벌이를 하다보니서울에서의 삶은 언제나 바쁘고, 팍팍하고, 삭막했다. 그게 온전히 그저 서울의 탓인양 주말이면 더 먼 교외로, 내친 김에 강원도까지 3시간넘게 달려 1박만 하고 오기도 하고, 우리는 떠나기 바쁘고 돌아오기 바빴다.
그러나 실제로 떠나보니, 서울은 반드시 떠나야만 하는, 온갖 악으로 점철된 그런 도시로 치부될 것은 아니었다. 도시는 오로지 탈출만을 꿈꾸어야하는 그런 곳은 아니었다. 나는 언제나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생각하며 살았지만 그것이 그것이 다른 곳이 천국이라는 증거는 아니었다. 단지 탈출만을 꿈꾸는 내가, 단지 균형잡는 법을 잘 몰랐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서툼은 언제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