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미래를 상정해놓고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답게 나는 아이들이 크기 이전에 이미 '사춘기의 부모가 된다는 것' '양육에서 가장 노잼시기인 사춘기 자녀 키우는시기라는 것' 등의 글들을 수없이 읽어왔지만 인생은 언제나 실전이었다. 예습은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기출문제는 결코 반복되지 않는다.사춘기는 그냥 그대로, 눈깜짝도 하지 않고 언제나 상상보다 그 이상으로 왔다. '저 아이가 정말 내 아이가 맞을까?', '의무양육기간만 끝나면 내보낼거야!'는 우리가 출연하는 이 영화에서 세상 모든 부모들의 클리셰가 된 듯하다.
우리가 임신과 출산, 육아, 그 시지프스의 돌을 굴리던 신생아 시절, 그 험난한 과정의 비밀을 겪게 될 때 입이 쩍 벌어지는 상상초월의 희노애락을 느끼게 되는 것처럼, 사춘기 또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뭔가 대단한 것이라는 것이 사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는 왔지만 대나무숲의 외침처럼 아무리 외쳐도 그 누구도 제대로 들으려고도 보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그 비밀스런 숲에 실제로 발을 들여서야만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이다. 그 고통은 에코의 요정처럼 숲에 숨어 있다. 이미 이 비밀아닌 비밀에 대해서는 전세계가 인정해왔지만 이미 그 숲에 들어섰을 때는 어떠한 조언도 선견지명도 필요가 없다.
사춘기라는, 부모 입장에서 한번 들어오면 나갈 수 없고, 숱한 소문만이 무성한 그 숲 막 초입에 막 들어서서, 나는 아이를 성인으로 키워낸 모든 부모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경의를 표한다.
그 시절 진흙탕속에서 뒹굴며 마디가 굵어지다가 마침내 어떤 항복의 백기처럼 하얀 연꽃으로 핏기가 가신 말간 고개를 든 그 백의종군들에게. 무조건적인 경의를 표한다. 그러니 아직 그 숲에 다다르지 않은 부모들이여, 즐기고 즐기고 또 즐기고 향유하고 후회는 단 한방울도 없이 온몸을 짜내어 만끽하여야한다. 그리고 결국 모든 것의 귀결은 '사랑'이라는 것을, 사랑받을 것을 기대하지 못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의무만이 남은 존재를 사랑하는 그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그것은 어쩌면 내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지는 것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알게 될 때 '내 입장에서 본' 사춘기는 끝나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실패자의 모습으로 서있을 것이라는 걸 예감한채, 이 대나무숲을 걸어갈 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