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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망버드 Oct 22. 2023

9. 왜 말 안해줬어요

대체 왜 이런 걸 말해주지 않은 거지 아무도? 

누가 숨기려고 해서 숨긴 것도 아닌데.

완벽한 미래를 상정해놓고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답게 나는 아이들이 크기 이전에 이미 '사춘기의 부모가 된다는 것' '양육에서 가장 노잼시기인 사춘기 자녀 키우는시기라는 것' 등의 글들을 수없이 읽어왔지만 인생은 언제나 실전이었다. 예습은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기출문제는 결코 반복되지 않는다. 사춘기는 그냥 그대로, 눈깜짝도 하지 않고 언제나 상상보다 그 이상으로 왔다. '저 아이가 정말 내 아이가 맞을까?', '의무양육기간만 끝나면 내보낼거야!'는 우리가 출연하는 이 영화에서 세상 모든 부모들의 클리셰가 된 듯하다.


우리가 임신과 출산, 육아, 그 시지프스의 돌을 굴리던 신생아 시절, 그 험난한 과정의 비밀을 겪게 될 때 입이 쩍 벌어지는 상상초월의 희노애락을 느끼게 되는 것처럼, 사춘기 또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뭔가 대단한 것이라는 것이 사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는 왔지만 대나무숲의 외침처럼 아무리 외쳐도 그 누구도 제대로 들으려고도 보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그 비밀스런 숲에 실제로 발을 들여서야만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이다. 그 고통은 에코의 요정처럼 숲에 숨어 있다. 이미 이 비밀아닌 비밀에 대해서는 전세계가 인정해왔지만 이미 그 숲에 들어섰을 때는 어떠한 조언도 선견지명도 필요가 없다. 

사춘기라는, 부모 입장에서 한번 들어오면 나갈 수 없고, 숱한 소문만이 무성한 그 숲 막 초입에 막 들어서서, 나는 아이를 성인으로 키워낸 모든 부모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경의를 표한다. 

그 시절 진흙탕속에서 뒹굴며 마디가 굵어지다가 마침내 어떤 항복의 백기처럼 하얀 연꽃으로 핏기가 가신 말간 고개를 든 그 백의종군들에게. 무조건적인 경의를 표한다. 그러니 아직 그 숲에 다다르지 않은 부모들이여, 즐기고 즐기고 또 즐기고 향유하고 후회는 단 한방울도 없이 온몸을 짜내어 만끽하여야한다. 그리고 결국 모든 것의 귀결은 '사랑'이라는 것을, 사랑받을 것을 기대하지 못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의무만이 남은 존재를 사랑하는 그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그것은 어쩌면 내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지는 것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알게 될 때 '내 입장에서 본' 사춘기는 끝나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실패자의 모습으로 서있을 것이라는 걸 예감한 채, 이 대나무숲을 걸어갈 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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