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했던 사람이여, 나를 잊었나, 벌써 나를 잊어버렸나.
그토록 나에게 잘해주던 사람이, 언제나 사랑한다고 말했던 사람이, 웃어주던 사람이, '싫어'라는 말은 하지 않던 그 사람이 어느 샌가 일방적으로 이제 나와는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듯 툴툴대거나, 갑자기 내 앞에서 등을 보이며 멀어져가거나, 이제 우리 관계를 다시 설정해야한다거나, 내가 하는 말은 듣지도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한다고 하면 어떡해야 할까? 그런데 더욱 절망적인 것은 나는 그 사람과 계속 살아야한단다. 도망치거나 피할 다른 곳은 없다. 게다가 더 복장터지는 것은,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필연적인 일이고,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다가온 그 변화를 받아들여야한단다. 나는 한동안 그 사람이 내게 해주었던 달콤한 말과 편지들과 사랑스럽던 기억들을 곱씹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헤어지기도 싫지만 헤어지고 싶고, 다시 만나기도 싫지만 그래도 나만 참고 계속 만나야한단다.
이런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싸우기도 하고, 울부짖기도 하고, 하소연하기 하고 화를 내기도 했다. 그렇지만 변하지 않았고, 변하지 않는 사실은 내가 이 사실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여야한다는 것이었다. 누가 이 고통을, 이 슬픔을 알까? 처음부터 없었으면 좋았을 것을. 변하는 것에 대해 남들보다 더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어찌 이런 시련이 '당연하게' 온 것일까.
이것이 사춘기 아이를 맞닥뜨렸을 때의 나의, 모든 부모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이 영화같은 스토리는 멀리 있지 않다.
나의 둘째 아이 이야기이다.
나는 대학때 만난 첫사랑인 남편과 결혼을 한 삼엽충에 가까운 고대 희귀종(?)이므로, 배신이라는 것을 당해본 적이 없다.
나는 실패나 위기를 별로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다. 실패를 두려워하고, 매우 가성비를 따져서 모험을 굳이 강행하지 않아서일 것이다. 대학도 현역으로, 결혼도 첫사랑과, 아이가 안생겨서 고생하지도 않았다. 처음에 헤어질 것이 두려워서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으려던 사람, 그것이 바로 나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나에게 그나마 위기란 무엇이었을까? 구남친(현남편)의 헤어지자는 통보? 승진에서 밀려난 몇안되는 사람에 해당되었던 거?
첫째에 이어 둘째의 배신이었다. 나에게 있어 일생일대의 배신, 위기는 바로 사춘기 아이를 맞닥뜨리는 일이었다. 누군들 사연이 없겠냐마는 둘째는 하루에도 몇번씩 깜찍한 그림과 하트가 열개 이상 그려진 쪽지와 편지를 전해주며 '사랑한다'고 말하던 연인 아니 아이였기에 더욱 그랬다. 노래 가사처럼 이럴 거면 그렇게 사랑해주지 말지.. 고작 그런 것에 일생일대의 배신 운운을 논한다고? 그게 바로 부모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