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 경 Jun 30. 2023

싸움을 좋아하지 않는 양이

고양이한테는 화가 날 때 하는 행동이 있다. 하악질이라는 것이다. 호랑이가 어흥 하는 것처럼 입을 크게 벌리며 하-앗 하는 행동이다. 고양이들과의 싸움에서 공격, 수비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본능인데 집고양이들이 하악질을 하는 경우는 많지는 않다. 주로 병원에서 진료보는 의사를 향해, 처음 보는 낯선 방문객에 놀라, 목욕이나 양치질을 강제로 할 때 등 보이는 행동이다. 화가 났다, 싫다, 다가오지 말라 와 같은 의사표시인데, 하악질을 당하는 입장에서는 아무리 작은 고양이지만 맹수처럼 보여 무섭기 짝이 없다. 순한 고양이도 가끔씩 보이는 하악질을, 양이는 한번도 보인 적이 없다. 가족들 몰래 구석진 곳에서 혼자서 하~앗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누구도 양이의 하악질을 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양이는 화난 적이 없었을까, 성질 나는 적이 없었을까, 나 건드리지마 라고 말한 적이 없었을까, 궁금하다. 


주변에 보면 싸움을 잘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싸움을 잘 거는 사람과 싸움에서 잘 대응하는 사람으로 나누어진다. 새치기를 하는 사람에게 불같이 화를 내거나, 부당대접을 받았다고 항의하는 쪽은 싸움을  잘 거는 사람들이다. 반대로 누군가 시비를 걸거나 짜증을 낼 때 잘 받아 넘기는 사람은 싸움에서 대응을 잘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어느 쪽인가? 둘 다 못하는 쪽이다. 싸움을 거는 것도 싫고 싸움을 걸어오는 건 더 무섭다. 아마 나와 같은 사람들이 대부분이 아닐까 싶다. 동물의 세계에서 싸움은 먹을 것과 영역에 대한 생존 싸움이지만, 인간계에서의 싸움은 자존심, 권리, 부당함, 힘 등의 복합적인 감정과 파워 싸움일 때가 많은 탓에 거는 사람, 당하는 사람 모두에게 참으로 힘든 일이다. 


싸움을 잘 거는 사람들은 왜 그럴까? 개인마다 특별한 역사와 이유가 있겠지만 싸우기 잘하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마음이 힘든 사람이 아닐까 싶다. 자신은 의식하지 못해도, 나는 힘든 사람이라는 표현을 싸움을 통해 하는 것 같다. 상담에서 잘 사용하는 용어 가운데, 안전감/불안전감이 있다. 안전감은 어려서부터 사회적, 정서적, 신체적 성장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일종의 자신감이다. 사회적 안전감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는 힘이 된다. 만일 사회적 안전감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누군가를 신뢰하고 친밀감을 느끼는데 어려움을 겪으며, 특히 가까운 사람을 의심, 오해, 비난함으로써 자신의 불안전감을 감추려고 한다. 같은 맥락에서 신체적 불안전감은 신체적인 면에서 자신감이 없는 것을 의미하는데, 외모, 키, 몸무게, 힘 등으로 열등감을 느끼는 사람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다. 한편 정서적으로 불안한 시간을 보낸 사람은 자신의 감정에도 자신이 없게 되어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누군가 자신을 공격하고 거부하고 비난할 것 같은 두려움에 맞닥뜨리면, 싸움으로 자신을 방어하고 보호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분노조절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분노 표출을 통해 주변을 제압하고 통제하는 대처방법이 발달된 사람이다. 싸움을 잘 거는 사람은, 센 척하지만 미숙하고 약한 사람이다. 


싸움을 잘 거는 사람과는 어떻게 지내야 하는가? 피할 수 있는 관계라면 멀리하는 게 상책이다. 그러나 나와 가까운 관계라면 싸움을 피하기 어렵고, 싸움을 잘 하는 사람과는 싸움으로 이기기 어렵기 때문에 심한 싸움이 되지 않도록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아버지는 싸움의 고수이다. 본인이 싸움을 걸지도 않지만 싸우려고 하는 사람과 싸우지 않기 때문이다. 시시비비를 가리며 따지는 어머니의 입장을 열심히 듣지만 기분이 많이 안 좋겠네 정도의 말 외에 어떤 리액션도 하지 않는다. 리액션이 없으면 싸움을 걸었던 어머니가 시들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트집이나 짜증을 통해 싸움을 걸어오면, 왜 무엇 때문에 화가 났을까 궁금하고 해명하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무슨 이유인지 화가 났구나 정도로 받는다. 입으로는 화날 만하네. 미안합니다 정도로 공감하지만, 귀로는 흘리고 마음으로는 접수하지 않는다. 싸우고자 하는 쪽이 원하는 것은 공감과 이해이기 때문이다. 한 쪽에서 싸우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명확히 하면, 싸움을 건 사람도 싸우고자 하는 의지가 사라진다. 한편 싸움이 심각해지지 않으려면 즉각적이고 감정적인 반응을 자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분하고 억울하고 지치더라도 바로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으면 싸움은 확대되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적 거리를 두고, 나중에 싸움이 아닌 대화를 하면 문제 해결은 쉬워질 가능성이 높다. 


양이가 싸움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경험상 싸워서 이길 자신이 없어서가 아닐까 싶다. 길거리 생활을 하면서 싸움을 걸어오는 고양이들한테 덤벼 보았자 손해는 자기만 본다는 사실을 깨달은 탓이다.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앞서 말했듯이 싸움 잘 하는 사람도 싸움이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힘든 마음을 싸움의 형태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싸움 걸어오는 사람을 웃으며 대할 수는 없지만, 그 사람의 싸움 심보를 이해한다면 좀더 여유롭게 대처할 수 있다. 그들의 전투력이 자신들을 버티고 살아가게 하는 힘이라면, 그들에게 필요한 또다른 힘은 가까운 사람의 이해와 관대함이 아닐까 싶다. 


싸움을 당하는 사람에게도 힘이 필요하다. 우선 싸움을 너무 겁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며칠씩 말도 안 하면서 불편한 시간으로 지내는 것을 당연한 앤딩으로 여기는 대신, 무겁지 않게 싸움을 마무리해야 겠다는 각오가 중요하다. 무엇보다 적당히 무시하는 것이 무기가 된다. 상대방의 공격이나 비난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 기울이는 대신, 그것이 나를 향한 화살이 아니라 힘든 사람의 호소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싸움 잘하는 사람과 살아가려면 싸움을 다루는 역량은 나의 몫이 된다. 


싸움거는 사람이 직장 상사일 수도, 배우자나 자녀, 형제일 수도, 친구일 수도 있다. 정리하거나 피할 수 없는 관계라면, 적절한 심리적 경계 세우기가 필요하다. 나에게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경계선을 그어 놓은 것이다.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뚜렷한 경계선은, 기분 나쁘고 마음에 안 든다며 싸움거는 것을 조심하게 한다. 모든 관계의 본질은 존중과 이해라는 사실을 서로에게 각인하면서 말이다.   

이전 09화 천천히 갈 때가 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