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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 경 Aug 01. 2023

고양이도 멍을 때린다

집 고양이들이 쉬는 방법은 햇빛이 잘 들고 바깥이 잘 보이는 장소에서 창 밖을 내다보는 것이다. 귀국해서(뉴요커 출신 고양이다) 얼마간 3층 높이 주택에서 지내는 동안, 양이는 바깥을 가까이서 내다볼 수 있는 창문 틀과 베란다를 최애 장소로 삼았다. 베란다에서는 앞마당 커다란 감나무에 앉았다 날아가는 새들 구경에 정신을 빼앗기고, 창틀에 앉아서는 나비와 참새가 근거리에서 보여 흥분하곤 했다. 고층 아파트로 이사를 온 뒤로도 양이는 여전히 창가를 좋아하지만 햇빛과 바람, 파란 하늘로 만족하는 것 같다. 양이의 일상에서 창 밖 보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 먹고 자고 노는 것과 같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양이가 창가에 앉아 별 것도 없는 바깥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졸거나 자는 모습은, 평화 그 자체이다. 반려동물이 가장 사랑스러운 때를 말할 때 잠자는 모습이라고 입을 모으는 이유는, 아마도 우리 자신의 생활에서는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절대적인 평화와 안락함을 발견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창 밖을 내다보는 것은, 멍 때리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갖는다. 무념무상의 상태로 바깥을 무심히 쳐다보는데 깜빡 졸면 일석이조이다. 피곤이 풀리고 긴장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창 바깥을 바라보면 몇 가지 이득이 있다. 우선 바쁘고 정신없던 일상에서 잠시 쉼을 얻는다. 무엇인가를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려운 사람들이 있는데,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죄책감이나 무기력감이 밀려와 힘들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남편은 나에게 ‘가만있지 못하는 병’에 걸렸다고 하였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고 하루 종일 직장에 갔다가 저녁밥을 챙기고 야간 강의를 뛰던 시절, 주말에 애들과 돌아다니고 장아찌를 만들다 골아 떨어지는 나를 보며, 쉬면 좋을 텐데 아쉬웠던 남편의 마음에서 나온 말이었다. 왜 그렇게 살았을까? 아마도 그렇게 바삐 살아야, 뭔가를 하고 있어야 제대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멍을 때리면,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게 되는 효과가 있다. 요즘 어떻게 살고 있는지? 스트레스가 되었던 일들은? 누굴 만났는지? 기분 좋았던 일은? 등등 돌아보게 된다. 이런 질문들은 뇌가 백지 상태가 되야 비로소 생각나는데, 일상에서 지나친 면과 부족한 면, 결핍된 욕구나 원함 등을 확인하는데 도움이 된다. 삶에서 지나친 면이 있다면, 모자란 면이 있기 마련이다. 너무 일이나 공부에만 몰입한다면 놀이와 만남에서 얻어지는 즐거움은 모자라게 되는데, 그런 치우침이나 부족함에서 오는 불균형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 멍 때림이다. 잠이 부족했다면 잠을, 재미가 없었다면 재미를, 짜증이 많았다면 여유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하게 한다. 아무 생각없이 뇌를 비워 놓는 것은 꽉 찬 생각들, 책임, 의무 등으로 과부하가 된 뇌에 진정한 쉼을 주기도, 일상의 균형감을 일깨워 주기도 한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감정을 과장할 때가 있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억울하고, 불쾌한 일을 겪으면 나처럼 재수 나쁜 사람은 없고, 실패 앞에서는 내가 제일 불쌍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나의 괴로움과 고통에 몰입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기 과몰입은, 피해자 마인드와 좁은 시각을 갖게 한다. 내가 받은 상처와 피해만 생각하지, 상대방이나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생각이 마비되는 것이다. 이 때 필요한 것이 자신과의 거리 두기이다. 한 걸음 뒤에서 자신을 보면, 열 받고 흥분한 자신이 보이고 자기연민에 빠지거나 과도하게 불안해하는 자신이 보인다. 자신과 거리를 두면, 그렇게까지 화날 일이었는가? 언제까지 슬퍼만 할 것인가? 불안한 생각들에 너무 빠져 있었구나 와 같은 자각이 든다. 멍 때리는 것은, 자기와의 거리 두기를 도와준다. 


인지심리학에서는 우리가 흔히 범하는 생각의 오류들을 설명한다. 우선, 작은 일을 크게 확대시키는 오류이다. 상대방이 무심코 한 말이나 행동을 크게 받아들이거나, 답이 늦어지는 문자를 거절 표시로 해석하거나, 간단한 실수로 인해 심한 자책감에 빠지는 것 등이다. 또한 작은 정보만 가지고 쉽게 결론을 내리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영어 숙제를 안 했으면 다른 숙제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약속에 한번 늦었으니 계속 늦을 것이라고 단정짓는 것이다. 그런 가하면, 지나치게 비극적으로 생각하는 오류도 있다. 이번 일이 안 되었으니 내 인생은 되는 것이 없는 인생이라고 결론짓는 가하면, 한번 거절은 영원한 거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멍 때리는 시간은 이러한 생각의 오류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여유를 선물하는 것 같다. 한 쪽으로 치우쳤던 극단적인 생각과 죽고 사는 문제처럼 여겨졌던 절박함이 줄어들고 객관성을 회복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멍 때리는 시간의 매력은 고요함인 것 같다. 복잡했던 머리 속에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고, 싱숭생숭했던 마음도 가라앉으며, 부단하게 움직였던 몸도 멈추는 시간이다. 쉼없이 돌아가는 세상과 잠시 떨어져 마치 다른 세상에 들른 것 처럼, 이방인인 것처럼 느끼는 것은, 과몰입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특별한 시간이 아닐까 싶다. 양이의 일상에서 창밖 보기가 중요한 습관인 것처럼, 이런 ‘생각없는’ 시간을 만들고 의미있는 습관으로 활용하는 것도 자신을 잘 지켜나가는 기술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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