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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 경 Aug 03. 2023

인생을 향한 다양한 포즈

많은 반려인이 그렇듯이 나의 핸드폰 갤러리에는 양이의 사진들로 가득 차 있다. 벌렁 드러누워 자는 모습, 창가에 앉아 조는 모습, 멍 때리는 모습 등 귀여운 순간들을 촬영하여, 심심할 때 들여다보거나, 팔불출 소리를 감수하며 지인들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시커먼 고양이가 드러눕고 앉아 있는 모습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할 수 있겠지만, 양이의 생활 습관을 날마다 지켜보는 집사의 입장에서는 기묘한 자세가 나올 때마다 신기하기 짝이 없다. 


고양이는 활처럼 휘어지는 척추의 유연성으로 인해 필요에 따라 각양각색의 형태로 자세를 만든다. 뒷다리를 벌리고 털버덕 앉는 자세, 앞발을 배 밑으로 집어넣는 포복 자세(일명 식빵 자세), 몸을 동그렇게 마는 냥모나이트 자세, 좁은 상자안에 자기 몸을 구겨 넣는 마술 자세 등 직립 인간한테서는 볼 수 없는 휘어지고 말아지는 자세들이다. 척추의 유연성을 강조하는 요가 동작에는 고양이를 따라 하는 자세들이 있다. 허리를 바닥으로 내리면서 엉덩이를 치켜 세우는 자세는 고양이가 기지개 키는 자세로 알려져 있는데, 허리 통증 완화, 장 운동, 척추 교정, 스트레스 감소에 효과가 있다. 몸을 동글게 말아 직사각형 몸체가 동그라미 몸체로 변형되고, 앞발을 가지런히 늘어뜨린 채 소파 모서리에 턱을 고이는 자세, 햇빛에 눈이 부셔 앞발로 두 눈을 가리는 모습 은 고양이만의 매력이다.  

 

이러한 고양이의 자세에는 생존과 보호를 위한 이유들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목도리처럼 꼬리로 네 발을 감싸 앉는 자세는 꼬리를 보호하고 항문 냄새를 감추기 위해서라고 한다. 어둡고 좁은 공간에 몸을 구겨 넣고 있는 자세는 도망과 경계를 용이하기 위한 장치라고 한다. 최근 들어, 오랜 시간 잘못된 자세에서 비롯된 척추 질환들을 교정하느라 고생하고 돈과 에너지를 쓰다 보니, 타고난 탄력과 유연성으로 자기 몸을 관리하는 고양이의 능력이 존경스럽게 느껴진다. 가끔 소파에 사지를 벌린 채 깊은 잠을 자는 천하태평 자세도 부럽고, 턱을 고인 채 시선을 고정시키는 명상 자세도 따라하고 싶어진다. 양이처럼 나의 상태나 기분에 따라 자유롭게 다양한 포즈를 취할 수 있으면, 포즈 만으로도 힐링이 될 것 같다. 


고양이가 둥글게 네모나게 포즈를 취하는 것처럼, 우리도 인생을 향해 제각기 다른 포즈들을 취한다. 어떤 포즈를 취하고 사는가에 따라 인생이 밋밋하기도, 힘겹기도, 신나기도 하다. 우선, 매사를 좋게 생각하고 좋은 미래를 내다보는 낙관주의자가 있는 반면,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냉소적인 비관주의자도 있다. 대부분의 우리는 긍정적인 사고와 희망을 품고 살지만, 예상치 못한 실패를 만나고 운이 나쁘고 힘든 일을 경험하면 비관적이 되기도 한다. 나만 해도 건강이 좋을 때는 낙관적이었다가 어느새 건강 문제가 생기면 비관주의자가 되기도 한다. 항상 긍정적일 수는 없고 비관적인 생각을 안 하는 것도 어렵다. 그렇다면 낙관과 비관을 적절히 품어내면서 사는 게 답이 아닐까 싶다.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들 때는 억지로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 보다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겉으로 풀어 내면서, 객관적인 시각과 마음의 여유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 만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면, 인생에 좀더 자신감이 붙고 좋은 사람을 만나고 원하는 바를 조금씩 이루는 과정에서 조금씩 변화되리라고 믿는다.   


나와 다른 사람을 향해 어떤 포즈를 취하는 가도 나뉘어진다. 나를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자신의 필요와 원함에 우선 순위를 두면서 살고, 다른 사람을 위주로 사는 사람은 자신보다 타인에게 맞추어 산다. 나 중심이 다소 이기적일 수는 있지만, 자신의 시간, 감정, 가치, 목표 등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자기 보호와 성취에 뛰어나다. 반면 타인 중심은 다른 사람의 욕구와 기분, 바램을 위해 자기 것을 내세우지 않는 이타성으로 인해, 자신보다 가까운 사람들이 수혜자가 된다. 지나치게 자기중심이다 보면, 곁에 있는 사람이 서운하고 희생을 하는 경우가 많고, 과하게 타인중심이면 자신의 삶이 외롭고 고달픈 적이 많아진다. 자기중심과 타인중심은 균형의 문제인 것 같다. 개인의 성향과 조건에 따라 한 쪽으로 치울 수 있겠지만, 두 가지를 적절히 왔다갔다 하는 삶이 지혜롭다. 


행복을 향한 상반된 포즈도 있다. 어떤 사람은 행복을 쫓느라 애쓰고 수고 가득한 삶을 사는 가하면, 어떤 사람은 슬금슬금 행복을 발견하는 즐거움으로 살아간다. 나의 경우만 해도 젊었을 적에는, 행복의 조건이라고 여겨지는 것들(돈, 성공, 직업, 결혼)을 헉헉대며 쫓아갔었다. 쫓아간 결과 만난 행복도 있고 그렇지 못한 행복도 있다. 나이를 먹으면서 편안해진 것은, 행복을 푯대로 달리기를 하는 대신, 주어진 일상에서 행복을 찾으며 행복을 재정의하는 것이다. 행복은 기대한대로 항상 만나지는 것도 아니고, 슬그머니 다른 모습을 하고서 찾아오는 행복도 꽤 있다. 행복을 좀 넓게 정의해서, 그 안에 많은 요소들을 넣는다면 때로 쫓아가서 만나는 것도 있고, 찾아오는 행복도 있는 것 같다. 그러려면 행복 주머니 안에 작고 소소한 메뉴들을 많이 저장해 두는 것이 현명하다. 


삶의 태도란 어떤 계기나 기회로 인해 결심하는 것도 있겠지만, 살아가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되지 않는 태도들을 분별하면서 도움이 되는 태도들은 취하고 도움이 되지 않는 태도들은 버리는 과정에서 쌓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양이가 다양한 포즈를 취하면서 자기의 안전성을 확보하고 편안함을 즐기듯이, 우리도 인생을 향해 이것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의 고정된 몇 가지 태도 대신, 색다르고 다양한 태도를 취한다면 좀더 자유롭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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