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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 경 Aug 03. 2023

양이는 불평하지 않는다

불평을 잘(!) 하는 사람이 있다. 식당을 가면, 무딘 사람에게는 지나칠 수 있는 음식의 맛과 양, 테이블 상태, 서빙, 주차 서비스까지 잘못된 점을 잘도 찾아낸다. 대중 교통을 이용하면, 계단, 환승, 냉방온도, 승객 등에 걸쳐 불만스러운 점들을 지적한다. 불평을 듣다 보면, 틀린 말도 없고 내가 하지 못하는 말을 해주는 대리 효과, 뒷담화의 재미가 있다. 불평이 도를 지나치면 모처럼의 외식이나 만남에 부정적인 기운이 맴돌고 피곤해지지만, 어느 정도의 말이 되는 불평은 대화에서 깨소금, 깍두기 같은 역할을 한다. 불평을 잘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당연히 불평해도 될 상황인 데 개의치 않거나 별 말을 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덩달아, 불평이 나오려고 하는 입을 자제하거나 참지만 답답할 때도 있다. 불평은 불만 분자, 불평꾼, 말많고 탈많은 사람과 연관되고 바람직하지 않은 미덕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지만, 하소연이나 수다처럼 우리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무엇이다. 


불평을 많이 하는 사람은 불평을 잘 하는 사람과는 다르다. 불평을 잘 한다는 것은 불평의 내용이나 방식이 누가 들어도 말이 되고 타당해서 맞장구가 쳐지는 경우이다. 센스있고 납득이 되는 불평으로부터는 소소한 희열과 만족이 느껴지며 정의감이 불타오르기도 한다. 반면 불평을 많이 하는 것은, 문자 그대로 불평의 빈도와 양이 과도하다는 뜻으로 부정적인 시선이 늘 깔려 있는 경우이다. 불평을 자주 하는 사람을 보면, 불평할 것이 없으면 안 되는 것처럼 불평 거리를 잘 찾아낸다. 춥다/덥다, 사람이 많다/적다, 시끄럽다/삭막하다 등을 비롯해 개인적으로 불만스럽게 느껴지는 일도 많다. 너무 자주 불만스러운 이야기를 듣다 보면, 듣는 것이 피곤하고 맞장구도 치게 되지 않을뿐더러, 왜 그렇게 불만이 많을까, 힘들겠다는 연민이 생기기도 한다. 특히나 불평은 전염성이 있어, 불평을 자주 하는 사람과 함께 하면 부정적인 에너지가 듣는 사람에게 전이되어 기가 빠지고 고갈되기 쉽다. 


불평을 안 하고 사는 것이 가능할까? 나의 오늘만 해도, 흐리고 어정쩡한 날씨에 대한 불평으로 하루를 시작해서, 부실한 점심 식사, 한밤중에 퇴근하는 딸 등 소소한 불만 거리들이 있었다. 나 자신에게 하는 하소연일 때도 있고, 우울한 날씨를 반복하는 거대한 자연에 대한 투덜거림 이기도 하고, 딸에게 매일 야근을 시키는 회사의 부당함에 대한 토로이기도 하다. 혼자서 하는 불평은, 속상하고 억울한 감정들을 겉으로 드러냄으로써 해소하는데 도움이 된다. 하소연이나 넋두리처럼 자신의 정신건강을 위해 필요한 자가 공감이다. 한편 누군가와 함께 하는 불평은, 공통의 관심과 이해를 통해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지지와 유대감을 느끼는가 하면, 서로 간의 신뢰와 호감도를 높이고, 대화의 즐거움을 갖게도 한다. 결혼한 친구와의 대화에서 남편에 대한 불평, 자녀에 대한 불만, 고달픈 현실에 대한 울분이 빠지면 재미가 없다. 함께 불평하면서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고 으쌰으쌰 잘 해보자는 의지를 나누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불평에 관한 연구에서는 불평을 자연스러운 의사 소통과 감정 표현의 도구라고 설명한다. 부당한 것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는 언어이고, 속상한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인 것이다. 


그런데 불평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과도한 불평이다. 불평을 많이 하는 이유는,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평소 많아서이다. 스트레스가 많을 때 화와 짜증이 나듯이, 실망, 걱정, 불안과 같은 부정적인 생각이 많을수록 불평은 비례하는 것 같다. 종종 피해의식, 배반감, 복수심 등에 사로잡히면 나도 모르게 비판과 정죄의 불길이 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또한 열등감이나 반복된 실패, 좌절 경험도 불만의 렌즈를 장착하게 한다. 나의 속이 꼬이고 불편하면 다른 것들도 꼬여서 보이는 건 당연하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불평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은 타고나길 불평분자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아마도 안 좋은 일들을 힘들게 겪어내며 쌓인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 탓이라고 생각해도 맞을 것이다. 스트레스가 많은 일을 하고 있다면 불평과 가까워질 수 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가족, 직장, 대인관계 등에서 오는 부담감, 부당함 등을 해소하지 못하면, 불똥은 다른 사람에게 불만의 형태로 튀기도 한다. 한편 불평은 습관이기도 하다. 투덜대고 징징거리고 폭발하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면, 그것이 굳어버린 대처방식이 될 수 있다. 불평을 할 때 불평을 듣는 누군가가 알았어 하면서 상황을 무마해준다면, 불평이 문제 해결의 도구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불평은 불평의 내용보다 불편감을 표현하는 언어와 방식이 부정적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불평하는 목소리, 톤, 표정, 제스츄어 등에서는 공통적으로 짜증, 비판, 분노, 원망 등이 쉽게 느껴진다. 중요한 점은 불평하는 내용이 타당하더라도 그것을 전달해주는 언어들이 듣기에 좋지 않다면 설득력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불만스러운 내용을 차분하고 기분 상하지 않게 전달하는 것이 상대방의 동의와 이해를 얻어내는 소통의 기술이 아닌가 싶다. 보통 불평은 조목조목 따지거나 비난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나의 생각은 이런데 상대방의 생각은 어떤지? 내가 본 것은 이러한데 상대방도 비슷한 것을 보았는지? 라며 상대방의 의견을 묻고 사실을 토대로 이야기를 한다면, 일방적인 떼쓰는 식의 불평처럼 들리지 않을 수 있다. 


불평은 좀 하고 사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너무 자주, 많이 하는 것은 우리의 웰비잉을 해치는 주범이 된다. 우울하고 열 받는 일이 많으면 불평은 따라오기 쉬운 반면, 웃고, 기분 좋고, 설레고 바쁜 일상에는 불평이 찾아오기 어려운 것 같다. 양이는 아무리 고양이라지만 불평을 모른다. 주어진 일상을 묵묵히 살아내며 크게 바라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자기의 삶에 만족하는 눈치이다. 양이처럼 불평없이 살기는 어렵겠지만, 즐거운 일을 많이 만들면서, 이왕이면 좋게 생각하고 감사하게 생각하는 엔진을 가동하면서 살면 좀더 행복한 시간이 많아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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