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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 경 Jun 21. 2023

오지랖 vs 무심함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 있다. 길을 찾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직접 길을 안내하기도 하고, 하나를 궁금해하면 둘, 셋을 가르쳐 주려고 한다. 굳이 관여하지 않아도 될 일에 정의감과 책임감으로 나서는가 하면, 남의 일에 과하게 참견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이 있어 고맙고 훈훈할 때가 있지만, 반대로 기분 상하거나 골치아프게 엮일 때도 있다. 특히 상대분의 기분이나 분위기에 맞지 않게 두는 훈수나 조언은 도움보다 불쾌함이나 당황함을 낳게 된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오지라퍼로 인해 조용히 넘어가던 일이 커지고, 사생활이나 비밀이 드러나기도 하며, 다툼이나 갈등이 깊어지기도 한다. 오지랖 넓은 사람의 의도와 상관없이, 과한 호기심이나 정도이상의 조언이나 참견은 관계의 걸림돌이 된다. 


오지랖의 반대편에는 무심함이 있다. 주변의 사람이나 일에 관심을 두지 않을 뿐 아니라 간섭이나 참견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문자 그대로 마음이 없어서 일수도, 마음은 있으나 모른 척하거나 거리를 두는 것일 수도 있다. 너무 무심한 나머지, 섭섭함을 표현할 때 무심한 인간, 답답한 인간, 괘씸한 인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무심함이 관심없음, 정없음, 이기심, 생각없음, 배려없음 등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특히 가까운 사람의 무심함은 상처나 아픔을 가중시키기도 한다. 자신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나 문제를 모른 척하는 심보, 알아채지 못하는 한심함, 찐으로 무지한 상태에 대한 서운함과 원망이 생기기 때문이다. 상담을 하다 보면, 가까운 사람의 무심함에 대한 섭섭함과 서러움이 호소될 때가 많다. 힘들수록 가까운 사람의 무심함은 더 깊이 각인되어진다. 몸이 아플 때 가까운 사람의 말 한마디, 힘내라는 문자, 죽 한 그릇이, 약이나 치료 이상의 효과를 가져오는 것처럼, 반대의 경우는 관계를 멀게 하고 때로 지우기 어려운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가장 힘든 순간에 위로가 되었던 시간, 도움을 준 사람이 평생 고마움으로 기억되듯이, 절실하고 외로울 때 무심했던 사람에 대한 기억도 오래 간다.  


조금 다른 의미의 무심함도 있다. 주변의 상황이나 사정에 대해 알 것 같지만 일부러 모른 척해주는 마음이다. 자신이 모른 척해줌으로써 상대방이나 상황 해결에 보탬이 된다는 생각에서이다. 이러한 의미의 무심함으로 치면 나의 아버지는 무심함의 대가이다. 딸이 무슨 일인지 신경이 날카로울 때 물어보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는가 하면, 사춘기 손녀가 내는 짜증에도 못 들은 척하고, 말 안하고 꿍한 아들에게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지 않는다. 무슨 일이나 사정인지 눈치가 보이지만, 자신이 괜스레 물어보거나 아는 척을 해서 도움이 될 것이 없다는 판단에서이다. 상대를 배려하는 차원에서의 무심함은 상대방에게 도움이 된다. 방해받지 않고 혼자서 감정이나 생각을 추스르고 싶을 때 주변 사람의 호기심과 걱정, 질문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칫 오지랖을 넓히면 상대방에게 불필요한 괴로움이나 짜증을 더하게 된다. 이러한 의미의 무심함은 상대방 뿐만 아니라 자신의 마음의 평온함을 지키는 데도 도움이 된다. 자세히 듣고 알게 됨으로써 갖게 되는 걱정과 불안한 마음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도움이 못 될 바에야 알고 싶고 묻고 싶은 마음을 절제하는 것도, 자신과 상대방을 지키는 비결이다.  


양이는 고양이계의 무심함의 대가이다. 내가 훌쩍이거나 아고 소리를 내도 무반응일 뿐 만 아니라 부엌에서 나는 소리들,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음 등에도 꿈쩍하지 않는다. 오롯이 자신과 상관있는 새소리, 벨소리, 문소리 등에만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갖는다. 주인 집사가 울거나 아프면 다가와 가만히 있거나 핥아 주면서 위로를 해주는 강아지와 달리, 고양이는 자기중심적이라 눈치와 위로 능력이 뛰어나지 않다고 한다(안 그런 고양이도 있다). 양이에게 반려동물이 주는 특별한 위로나 함께함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무심 그 자체이다. 그래서일까, 양이는 깊은 잠을 많이 잔다. 세상의 소음에 귀를 닫은 듯, 알고 싶지 않고, 귀찮아 하는 것 같다. 양이가 유지하는 평정심과 평온함의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싶고 듣고 싶어한다. 연예인 소식, 뉴스 거리, 집안의 대소사, 지인들의 근황 등을 듣지 않는 날은 무엇인가 빠진 것 같고 심심하다. 입이 근질거리는 것이 아니라 귀가 근질거린다. 많은 경우 듣고 앎으로써 일상의 활력과 동기가 생기게 된다. 어떤 연예인이 몸무게가 십 킬로 빠졌다는 소식에 다이어트를 결심하기도 하고, 지인의 투병 소식에 연민을 느끼기도 하며, 집안의 크고 작은 일로 즐겁기도 우울하기도 하다. 심지어 잘 모르는 지인의 지인 이야기를 들으며 인간의 약함, 인생의 짧음에 대한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순간이나마 감정이입을 통해 재미와 연민을 느끼는가 하면,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놀라거나 관심을 갖기도 한다. 문제는 너무 많이 들을 때이다. 사실 나와 딱히 상관없는 이야기들, 특히 누가 돈을 많이 벌고 누가 집을 사고 어디를 여행을 하고 와 같은 소식들은 나의 처지를 그들과 비교하게 한다. 비교는 예외없이 즐거운 일이 아니다. 내가 알고 싶지 않은 것,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은 지나칠 수 있는 무심함이 도움이 된다. 들어서 기분이 좋지 않고, 알아서 화가 나는 이야기들을 피하는 것, 멀리하는 것, 거절하는 것에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정신 장애 가운데,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것이 있다. 트라우마나 충격 등으로 인해 자신의 선택이나 의지로 입을 다무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를 흉내내어 선택적 듣기는, 내가 굳이 들을 필요가 없고 들어서 좋지 않은 이야기라면 듣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나이를 먹으니 덜 듣고 덜 알고 지나가는 것 같다. 젊어서처럼 다 알아야 하고 다 생각해보고 다 따져보고 하는 일이 줄어서 인 것 같다. 어느 정도의 무심함은 세상사는 데 편리하고, 무엇보다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무심함의 사촌은 둔감함이다. 둔감이란 민감의 반대로 예민하지 않고 살짝 둔한 것을 의미한다. 누군가 문을 쾅 닫고 나가는 행동에 대해 예민한 사람은 왜 화가 났을까, 나 때문일까,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와같은 걱정, 불안한 생각이 들고 맞대응을 하기 쉽다. 반면 둔감한 사람은 같은 행동에 대해 큰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다. 기분이 안 좋을 수도, 급한 상황일 수도, 바람이 불어서 등 가능한 이유들이 생각나지만 크게 생각하지 않기에반응하지 않고 지나칠 수 있다. 둔감한 사람은 종종 답답하다, 느리다, 무디다 등과 연상되기도 하지만 사실 둔감은 민감보다 살아가는데 훨씬 도움이 되는 능력이다. <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 와타나베 준이치는 너무 잘 보여서 피곤한 눈, 너무 잘 들어서 괴로운 귀, 너무 잘 맡아서 힘든 코 등을 예로 들면서, 예민함이 가져오는 문제점들을 설명한다. 


기질상 예민한 사람도 있고, 아프고 힘든 일을 겪으면서 예민해지는 사람도 있다. 심하게 아팠던 경험을 한 사람은 조금만 아파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거절당해본 사람은 또 거절당할까 봐 다시 시도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자신에게 가능한 위협이나 위험에 대한 자기 보호 반응이다. 문제는 예민함이 반복되어 사소한 일이나 자극에 매우 과민해지는 것이다. 과민하면 사는 게 고달파지는데, 자주 아프고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고 상처받는 일도 늘어나는 것이다. 몇 년 전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 심한 때가 있었다. 배가 자주 아프고 설사를 자주 하다 보니, 일상이 어려웠는데 중요한 발표나 회의가 있으면 화장실부터 확인하고 들어가야 안심이 되곤 할 정도였다. 생각해보면 이런저런 스트레스가 많았던 시기였다. 


예민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둔감해질 수는 없고 조금씩 둔감을 연습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개인적으로 둔감화에 도움이 되는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해보면, 우선, 안 좋은 일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연습해보는 것이다. 예민할수록 과장되고 단정적인 해석을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힘든 일이 생기면 비극적인 결론부터 내리는 습관을 고치는데, 잘 될꺼야, 별 일 아니야 등의 긍정적인 생각이 도움이 된다. 너무 신중하지 않는 연습도 도움이 된다. 완벽하고 철저한 결과나 해결책이 아니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적당히 무시하는 연습도 중요하다. 내가 들은 말, 목격한 일에 크게 관여하지 않고 지나치며 잊어버리는 것이다. 


양이가 무심하기 때문에 덩달아 무심해지는 것 같다. 양이가 일거수일투족 나를 쫓아다니고 참견을 한다면 그 존재감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내가 먹건, 자건, 나가건 양이는 별 관심이 없다. 조용히 지켜보면서 자기 자리를 지킬 뿐이다. 그러다 보니 나도 양이를 귀찮게 하지 않는다. 잠을 자면 자는구나, 먹으면 먹는구나 양이의 일상과 시간을 존중하게 된다. 서로에게 무심한 것도 문제지만, 서로에게 지나치게 예민하고 관여하는 것이 더 문제이다. 어느 관계이건 적당한 무심과 둔감은 서로에게 얽매이지 않는 자유와 편안함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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