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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oga Feb 28. 2022

체코의 아우슈비츠, 테레진(Terezín)

도시 전체가 과거엔 수용소, 현재는 박물관인 도시


1. 체코 유대인 수용소 마을


체코어 발음은 "떼레진",


경자음을 혐오하는 외국어 표기법에 따라도

"테레"인데,


구글에는 이상하게도

“테레"이라고 음차되어 있다.


체코어 Terezín 자체를

독일어식으로 읽으면

"테레친"이 되지만,


정작 독일식 이름은 Theresienstadt,

즉 "테레""슈타트"다.


18세기 합스부르크 황제 요제프 2세가

자기 어머니인

그 유명한 여제 Maria Theresia 이름에서 따서

이 도시 이름을 지었는데,

Theresia는 독일어식으로 "테레아",

체코어식 Terezie도 발음이 "테레에"다.


따라서 독일어식으로든, 체코어식으로든

"테레"이라고 불릴 이유가 전혀 없는 도시다.


그렇게까지 체코어 지명을

굳이 독일식으로 음차  보면서,


아직도 테레진은

독일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못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사실 체코는 이웃 폴란드에 비해서

2차세계대전의 피해를 덜 입었다.


2차세계대전 참전국인

독일소련 사이에 낀 폴란드

적국인 독일의 공습뿐 아니라

폴란드 주둔 독일군을 노린 우방 소련의 공습으로

정말 아무것도 안 남은 폐허가 되었다.


폴란드 어느 도시나 상황이 비슷했지만,

특히 수도 바르샤바의 경우는

예전 그림과 사진을 바탕으로

모든 것을 거의 원점에서

다시 쌓아 올려야 했다.


Stop blaming Poland for starting the Second World War - World News - Haaretz.com

 

하지만 체코의 전신이었던

당시 체코슬로바키아

 

1939년 2차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부터

독일군에 점령되어 독일의 일부였기 때문에,

적어도 독일군에게 공습을 당하지 않았고,

군사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독일의 변방이라 

적인 소련군에게도 공습을 덜 당해서 그런지,


적어도 도시 외관들만 봐서는

2차세계대전을 대체로 비교적 무사히 넘겼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그마치 "세계대전"이었던 그 생난리를

아무 물질적, 정신적 피해 없이 넘어간 건

당연히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다른 유럽 국가에서와 마찬가지로,

많은 유대인들이 따로 색출되어

나치 강제수용소에 끌려갔다.


가장 악명 높았던 나치 수용소가

폴란드 크라쿠프 근처 오시비엥침에 있는

아우슈비츠와 그 밖의 강제수용소들이었어서,

우리는 나치 수용소 하면

아우슈비츠만 떠올리지만,



당시 나치가 점령했던 유럽의 곳곳에

유대인 및 슬라브인 수용소가 있었고,


체코슬로바키아에는

독일과 가까운 서북부 테레진이라는 도시에

유대인을 모아 가둬두고 따로 살게 한,

유대인 수용소 마을이 있었다.




2. 테레진의 짧고 굵은 역사


앞서 언급한 것처럼,


18세기 후반

당시 체코, 즉 보헤미아가 속해 있었던

합스부르크 제국,  오스트리아 황제

프로이센, 즉 현재의 독일을 견제하여

독일 근처에

"전 근대적" 군사 요새를 만들고,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의 이름을 딴 

인공적인 도시가 바로 테레진이다.


아마도 그래서 최초의 명칭은

'테레지아의 도시'라는 의미의

독일식 "테레진슈타트(Theresienstadt)"

였을 것이고,


나중에 체코어에서는

"테레지아"의 체코식 이름 Terezie의 어간에

장소를 나타내는 접미사 ín을 붙여

테레진(Terezín)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 군사도시 테레진에


처음엔

소 요새(Small Fortress, Kleine Festung, Malá pevnost),


뒤이어

대 요새 (Main Fortress, Große Festung, Hlavní pevnost)

가 세워졌는데,


대 요새는 규모가 커서 요새라기보다는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시골 마을에  가깝다.


그러고 보면,

폴란드 오시비엥침(Oświęcim)의

아우슈비츠 나치 강제수용소도 

그 시작은

폴란드 남부를 지배했던

오스트리아군이 사용하던 막사였다.



이후 테레진은 1866년 여름 7주간 지속된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때

프로이센 군의 공격을 막아내며

요새로 딱 한번 기능한 적이 있지만,


그 이후에는

그 난공불락의 요새를

자기 보호를 위해서가 아니라,

타자의 억압,

즉 들어오지 못하는 공간이 아니라,

나가지 못한 공간으로 사용해서,


오스트리아 제국 말기에는 감옥,

특히 1차세계대전 때는 정치범 수용소였다.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암살해서

1차세계대전을 발발하게 한

세르비아계 보스니아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Gavrilo Princip)

여기에 수용되었다가 결핵으로 사망했다.


(그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사라예보로)


1918년 1차세계대전 패전 이후 사라진

오스트리아 제국을 대신해서

이제 테레진은 나치 독일이 지정한

수데텐 지역 또는 주데텐란트(Sudetenland),

독일인이 많이 거주하는 체코슬로바키아 지방으로

1938년 나치 독일에 합병되었다.


1939년 2차세계대전이 시작된 후,

1940년 테레진의 "소 요새"는

나치에 저항하는 체코 레지스탕스를 수용하는

정치 수용소가 되었다.


1941년 "대 요새"에

유대인들을 모아 가둬두면서

유대인 게토가 형성되었고,


체코뿐 아니라 덴마크, 네덜란드 등

유럽 주변국가의 유대인들을

 벽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유대인 게토 요새에 수용했다고 한다.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등에 가기 전에  

잠시 머무는 성격이 강한

유대인 수용소였지만,

열악한 생활환경 때문에

이곳에서 사망한 유대인도 많았고,


전쟁 후반에는

아우슈비츠까지 이송되지 않고 

여기에서 처형된 사람들도 많았고,


또 그걸 다 견뎌낸 후

2차세계대전 말

죽음의 행군(Death March) 때

사망한 사람들도 많단다.


2차세계대전 이후 1996년까지

테레진은

체코슬로바키아군 체코군 주둔지였고,


체코 군대가 철수한 이후에는

지금처럼

2차세계대전의 역사적 아픔을 보전한

역사 유적 관광지(Heritage tourism)가 되었다.





3. 테레진 가기


예전엔 몸과 맘으로 체험하는 여행보다 

눈과 귀로 즐기는 관광을 주로 해서,


"예쁜" 관광지부터 찾아갔었는데,

이제는 "의미 있는" 관광지가 끌린다.


여행 구력이 쌓이면서 

예쁜 데는 이제 나름 많이 봐서 그런지,

나이 들면서 공허한 아름다움에 물려서 그런지,

원래 시각적 자극은 빨리 감지되는 만큼

빨리 사라져서 그런지,

공부하는 게 직업이라,

여행하면서도

뭔가를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강해서 그런지,


아무튼

그게 역사적 의미든,

문화적 의미든,

지정학적 의미든,

뭔가 "묵직한" 게 담겨 있는 장소에 다녀왔을 때

그 여운도 더 길게 남는 것 같다.


2012년 겨울에 프라하에 5주 갔을 때는

프라하만 둘러보는 것도 겨우겨우 하고,

프라하 밖 체코 도시는 두 곳밖에 못 갔지만


2019-2020년 겨울에 다시 갔을 때는

프라하 바깥 체코와 슬로바키아를 가볼 작정을

단단히 하고 갔기 때문에,

어디 갈 데 없나 열심히 검색을 해서,

10군데 이상의 도시들을 방문했는데,


이름을 많이 들어서 어떤 곳인지 궁금했던

러시아인들이 좋아하는 온천 휴양도시

카를로비바리(Karlovy Vary),


프라하 근교에 위치해서 가까운

카를스테인(Karlstejn) 다음으로,


그 묵직한 역사적 의미를 놓치고 싶지 않아

2020년 1월 중순에 방문했던

세 번째 도시가

바로 테레진이었다.


테레진은 아래 지도처럼

체코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출처: Defiant Requiem' in Chicago a revival of Verdi sung in concentration camp - Chicago Tribune)


프라하에서 테레진까지는

프라하 중심부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갈 수 있다.


편도 비용은 약 9유로.

소요 시간은 1시간 내외.


그런데 테레진 기차역이 테레진 시내까지

걸어서 1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해 있는데,

걸어가긴 너무 멀고,

외부인에게는 대중교통도 익숙하지 않으니,

기차 타면 테레진 시내까지 가기가  번거롭다.


그래서 프라하-테레진은

아무래도 기차보다는 시외버스인 것 같다.


2020년 1월 당시 프라하 북부에 거주했던 나는

집에서 멀지 않은

홀레쇼비체(Holešovice) 버스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가서

테레진 시내에 바로 내렸다.


프라하 지하철 C호선

Nádraží Holešovice(홀레쇼비체 기차역)이라는

지하철 역에서

에스컬레이터 쪽 말고

반대편(엘리베이터 쪽)으로 나가면

작은 터미널이 나온다.


매표소는 따로 없고,

그냥 버스기사한테 티켓을 사야 한다.


프라하 시내 Florenc(플로렌츠) 버스터미널에서

표를 미리  있는데,

그러면 15-20 코루나 정도 더 낸다고 한다.


나는 홀레쇼비체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면서

편도 90 코루나( 5 ) 냈다.

(인터넷엔 9유로라고 쓰여 있었다.)


프라하에서 테레진까지 버스는

 시간에  대 꼴로 다닌다.

이런 자유여행 말고
1000 코루나( 5원) 내외의 

하루짜리 투어 있는데,


집단으로 뭐 하는 걸 좀 싫어하는 나는

아예 그걸 선택지에 넣지 않았지만,

입장료와 왕복 교통비가 포함된 가격일거고,

자세한 역사적 설명도 들을 수 있고,

버스로 움직이기도 편할 테니,

그 투어로 다녀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고,

사실 외국인들은 많이들 그렇게 가는 것 같다.


아무튼 나는 당일치기로 가는 거라,

가능하면 일찍 가서 늦게까지 있다 오려고

아침 7시 출발 버스를 타기로 했고,

6 40 프라하 홀레쇼비체 터미널에 도착했는데,
어둡고 사람도 별로 없었다.


승객은 나 말고 5-6명 정도였다.


테레진 행 시외버스에 올라

운전기사에게서 티켓을 사고 자리에 앉았는데,  

와이파이는 안 되고,

다른 체코 시외버스만큼 좌석이 안락하지도 않았다.


(나중에 리토므녜르지체에서 돌아오는 버스도 

요금은 같았는데,

그 돌아오는 저녁 버스는 좀 더 안락했다.)


내가  버스는 여러 크고 작은 마을들에

계속해서 서는 완행(?) 시외버스였고,


체코 북서부 도시

리토메르지체(Litoměřice) 종점이었다.



그 종점 바로 전 정류소가 테레진이었는데,

많지 않은 승객 중에서 테레진에서 내린 건

나 하나밖에 없었다.


하긴 지금 생각해보면

1월이라 여행 성수기도 아니고,


처음에 군사 요새로 생겨났고,

유대인 수용소 마을이다가

오랫동안 체코군 주둔지였어서,

딱히 농업이나 산업이 발달하지 않았을 거고,

인구도 많지 않을 테레진이라는 도시에


평일 아침 일찍 가는 사람이 많았으면

더 이상했을 것 같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1시간 만인 8시에 드디어 테레진에 도착했는데,

1월이라 아직 해가 조금 덜 떠서 어둡고,

이른 겨울 아침이라 너무 춥고, 

살짝 안개도 끼어 있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없어 정말 고요하다.


기온영하인  

숨 쉴 때마다 입에서 입김이 나오는데,

아직 9시도 안 된 시간에

문을 연 가게도 없어서

그렇게 텅 빈 광장에 서서

오들오들 떨며 주위를 둘러봤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2차세계대전 중 어느 시점에

그곳에 떨어진 시간여행자가  듯한

이상한 서늘함이 등골을 타고 내려왔다.




3. 테레진 중앙 광장


아래 지도가 테레진 지도인데,

위쪽이 동쪽이고 왼쪽이 북쪽이다.


 지도를 오른쪽으로 90 돌리면 

우리에게 익숙한 그 방위가 된다.


아무튼 이 포스트 소제목 번호

3번부터 7번까지는

아래 지도에 내가 적어 넣은 

3, 4, 5, 6, 7번에 대한 이야기다.


(출처:https://www.pamatnik-terezin.cz/map)


지도에서 5번으로 표시한 곳이
소 요새 (Small Fortress, Kleine Festung),

 아래 커다란  모양의 담으로 

여러 겹 둘러싸인 곳이 

대 요새(Main Fortress, Große Festung)다.


프라하가 이 도시의 동남쪽에 있어서  

버스는 동쪽인 5번 쪽에서 테레진에 진입해서

광장인 3번에 선 후

종점인 리토메르지체를 향해 

북쪽(지도 왼쪽)으로 떠난다.


즉, 테레진엔

마땅히 버스터미널이라고 할 만한 곳이 따로 없다.


시외버스가 도착한 버스터미널 겸 광장은

ČSA 광장(Náměstí ČSA)으로 [지도 3번]

우체국,

즉 아래 사진의 왼쪽 건물 앞에 멈춰 섰었다.


광장 북쪽 모습인 아래 사진에서


우체국 오른쪽 건물은 

시청(City hall, Radnice)고,

그 오른쪽의 작은 건물은 게토 박물관이다.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광장 이름 ČSA 

체코슬로바키아 (Československé armády)이라는 의미로,

아마 공산 시대 군 주둔지였기 때문에

광장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 같다.


 광장은  크다.

인적이 없어서 더 크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건 그 광장의 동쪽 풍경이다.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s


광장 동쪽편의 왼쪽 건물은 그냥 레스토랑이란다.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가운데 건물은 예수 부활 성당(Church of the Resurrection of the Lord, Kostel Vzkříšení Páně Terezín)으로 천주교 성당이다.


종교개혁 이후 신교,

즉 루터교도가 많았던 독일과 달리,

오스트리아엔 구교,

천주교도가 많았다고 들었는데,

오스트리아 황제가 만든 도시라서

18세기 건설된 성당도 천주교 성당인 것 같다.


문이 닫혀 있어서 안에는 들어가 보지 못했다.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그 오른쪽 건물은 앞에 쓰인 걸 읽긴 했는데,

무슨 건물이었는지

정확하게는 기억이 안 난다.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이건 90도 오른쪽으로 돌아서

광장 남쪽 풍경.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광장 남쪽 건물들 중 가장 오른쪽 건물 벽엔

이 건물이 나치 본부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나치 깃발이 걸려 있었고,

지하엔 게슈타포 감옥도 있었다는 설명이

체코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영어, 독일어로 

쓰여 있다.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90 다시 우회전하면

광장 서쪽 풍경이 보인다.


광장 동쪽이 세 건축으로 나뉘어 있다면,

서쪽은 크게  건축으로 나뉘어 있다.


이게 광장 서쪽의 왼쪽 건물.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이게 광장 서쪽의 오른쪽 건물이다.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서쪽 오른쪽 건물 중 분홍색 부분은

"독일 하우스"로

독일인들이 문화생활을 하던 곳이라고

영어, 독일어, 체코어로 설명이 쓰여 있다.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동영상 1: 테레진 광장 360도 회전)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4. 테레진 게토 성벽


그렇게 크고 황량한 광장에 한참 서 있다가

동쪽의 소 요새(Malá pevnost, Small Fortress)로 가보기로 했다.


테레진의  요새와  요새는 각각 

두터운 성벽과 해자(moat)로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두 요새가 좀 떨어져 있는데,

그 사이에 국도 같은 좁은 찻길도 있고,

작은 강도 있어서,

걸어서 10-15분 걸렸던 걸로 기억한다.


두 요새가

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바로 옆도 닌 거다.


그래서 테레진 중앙 광장에서

소 요새를 갈려면

우선  요새의 성벽을 지나서

대 요새를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사실 유럽 도시에서

이런 성벽은 매우 흔하다.


그런데 테레진의 도시 성벽,

특히 대 요새성벽

유난히 견고하고 아름다웠다.


유럽의 고전적 성벽치곤

비교적 최근에 건설된 것이라

세월의 공격을 덜 받아 

원형 거의 그대로 보존되어 있을  아니라,


그 특유의 벽돌색과

겨울 풀밭 위를 살포시 덮은

거의 살얼음이 된,  덮개의 연두색이 

만들어내는 보색의 조화가 아름답고,


인적이 드물고,

주변에 인공적인 20세기 건축도 거의 없어서

마치 그 성벽 자체가 자연인 듯

자연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 아픈 현대사를 생각하면

 마음이 슬퍼지고  불편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 성벽의 안쪽과 바깥쪽을 둘러보며

그렇게 서 있는 게 너무 좋아서

한참을 그렇게  있었고,


소 요새 다 보고 다시 돌아와서

테레진 대 요새의 다른 곳을 구경하다가도

몇 번씩 다시 가 보곤 하던

내가 테레진에서 가장 좋아한 장소였다.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동영상 2: 테레진 게토 요새 1)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동영상 3: 테레진 게토 요새 2)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동영상 4: 테레진 게토 요새 3)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5. 수용소 요새


그렇게 대 요새를 나와서 좀 걷다 보면,

소 요새를 알리는 푯말이 보인다.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오른쪽에 커다란 십자가가 눈에 들어온다.


십자가는 "그리스도교"를 상징하니,

아마 비유대인들의 무덤인 것 같다.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곧 멀지 않은 곳에 유대인을 상징하는

6각 다윗의 별이 보이는데,

거기는 유대인들의 무덤이다.


이 날따라 또 안개가 많이 껴서,

 숙연하고,

마치 그 억울한 영혼들이 아직 거기 머물러 있는 듯

왠지 모르게 좀 으스스하기도 했다.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그 특별한 무덤들을 지나면

소 요새의 입구가 보인다.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유대인 수용소 요새인

테레진  요새(Malá pevnost, Small Fortress, Kleine Festung) 

유료 입장이다.


그냥 소 요새만 입장하는 티켓은

2022년 1월 현재

일반 180 코루나 (약 만원),

할인 150 코루나.


대 요새의 두 박물관까지

3군데 입장 가능한

(Small Fortress + Ghetto Museum + Magdeburg Barracks)

통합 티켓은 일반 220, 할인 170 코루나.


입장 시간은

11-3월 8:00-4:30,

4-10월 8:00-6:00.



난 통합 티켓을 샀는데,


티켓 부스에서 표를 파는 20대 남자와

마치  가족처럼 보이는, 그 남자 뒤의

40-50대 여자와 10 후반 여자 얼굴이 

사진으로 본 프란츠 카프카랑 비슷하다.

마른 얼굴에 눈과 머리색이 유난히 검고 또렷하다.


(프란츠 카프카)

https://kafkamuseum.cz/en/photogallery/


러시아에서 만난 유대인은

외모가 특별하지 않아서

스스로 말하지 않는 한

그들이 유대인인 걸 알 수 없었는데,


체코 유대인에겐 특별한 유전자가 있는지,


아님 내가 그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움직인 데다가

대 요새 중앙광장과

유대인 묘지의 그 묘한 분위기와 안개에

좀 주눅이 들고 현실감을 잃어

머리가 약간 멍한 상태여서,

괜히 더 그렇게 보였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 매표소의 유대인들 덕분에,

나는 마치 카프카가 살던 20세기 초반,  

또는 세계대전 중인 20세기 중반으로 

시간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으로 

관람을 시작했다.


이제 겨우 아침 9시 정도 된 시간이라,

소 요새 안에

방문객은 몇 명 없었다.


그 공간에 나 혼자 있거나,

가끔씩 다른 관람객을 만났다.


춥고,

안개 끼고,

인적도 드물어 고요하니,

그 수용소가 좀 더 실감 났다.


나는 천천히 걸으면 꼼꼼히 들여다보는 성격인데,

그런 내가 소 요새를 다 둘러보는 데는

2시간 정도가 소요됐다.


보통은 1시간이면 다 둘러보지 않을까 싶다.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여기에도 아우슈비츠처럼

"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Arbeit Macht Frei)"

라는 독일어 문구가 있다.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아래 사진의 벽에 쓰인 체코어는

"청결이 건강이다"라는 뜻인데,

좀 많이 문어체라 옛날 말 같이 들린다.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폴란드 오시비엥침의 아우슈비츠와 비교하자면,


둘 다 그 강제수용소 자체를

일반인에게 개방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아우슈비츠에는  건물안에 

무언가 전시물과 전시회가 많았던 기억이 있는데,


테레진은 그냥 빈 공간 자체를 전시하고,

가끔씩 중간중간에 전시를 넣는다.


그래서 테레진은

  구경할 거리가 없는  같긴 한데,


그래도 공간 자체는   다채로웠.


어떤 건축이나 자연은

심지어 꽤 멋지기도 했다.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여긴 꽤 긴 터널이었는데,

한 사람이 겨우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의 크기고,

어두운 데다가

터널이 길어서

갇혀 있는 기분 때문에 불안했지만,

이러다 폐쇄공포증 걸리겠다 싶을 때쯤

다행히 출구가 나와줬다.


이런 터널이 두세 개 있었던 것 같다.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처형장 느낌의 설치물도 있다.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테레진을 형상화한 조각상도 있다.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그리고 그런 역사를 몰랐음

그냥 아름답다고만 느꼈을

오래된 건축과 자연도 있다.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소 요새

오스트리아 제국 시절,

1차세계대전,

2차세계대전 모두

인종에 관계없이 주로 정치범을 수용했는데,

나중엔 좀 더 수용자의 범위가 넓어졌다고 한다.


소 요새에는

이 소 요새 자체뿐 아니라,

테레진 게토 자체에 대한 전시도 있었는데,


당시 나치는 외부에 테레진을

정상적인 유대인 자치구역으로 선전했고,

테레진에 대한 영화도 자체 제작했단다.

( 선전물도 전시물 중에 있다.)


그래서 당시에는 테레진이

유대인 수용소라는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대외 선전과 달리

자유가 없는 커다란 감옥이었고,

시설이 열악한 데다가,

1944-1945 막바지에 수용소 인원이 많이 

전염병으로 죽는 사람도 많았단다.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전시회를 다 보고 나올 때쯤

고등학생들로 보이는 단체관광객들이 

왁자지껄 입구로 들어왔다.


그들과 같이 그냥 관광을 하는 게 더 나았을지,

아님

정적 속에서 그렇게 쓸쓸하게 관람한  

 나았던 건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날 나는 

그 억울한 영혼들에 제대로 감정이입해서

하루 종일  우울하고 프고 무기력했다.




6. 게토 박물관


아침 내내 안개가 두텁게 끼더니,

 요새 보고 나서  요새로 돌아온 후

12시쯤부터는 날씨가 화창해졌다.


이제 사람들도 많이 나오고 해서

아침보다 분위기가 훨씬 밝다.


그렇게 대 요새로 돌아온 나는

 요새 통합입장권의 나머지 기회를 

마저 활용했다.


 통합티켓으로 입장할  있는 

대 요새, 즉 유대인 게토 내의

게토 박물관마그데부르그 막사

입장시간이

11-3월 9:00-5:30,

4-10월 9:00-6:00이다.


위 지도의 왼쪽 6번 자리에 있는

게토 박물관(Ghetto Museum, Muzeum ghetta)

원래 그 건물이 초등학교 건물이어서 그런지

1층은 어린이에 관한 내용이 전시되어 있고,

2층은 테레진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였는데,


2차세계대전 이전부터

나치가 유대인들을 어떻게 탄압했는지에 대한

다양한 자료가 새롭고  충격적이었다.


예를 들어,

비 유대인 여성이 유대인 남성과 연애하면,

사람 이 지나다니는 곳에 둘을 세워놓고

공개 비난하고 구경거리를 만들었다는데,

그런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위 지도 오른쪽 6번에 위치한

마그데부르그 막사(Magdeburg Barracks, Magdeburská kasárna)

당시에 수용소 사람들의 생활을 알 수 있게

방을 꾸며 놓고,

그들이 그렸던 그림, 글, 음악,

그리고 연극 같은 걸 전시했다.


1층 안뜰에는 영화도 상영했는데,

당시 나치가 홍보용으로 찍은 영화의 일부였고,

그 전시 제목은 Pravda-Laž(진실-거짓)이었다.


전시실은 모두 두꺼운 겨울 외투를 입고,

배낭 맨 채로 볼 수 있다.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7. 화장터


그 밖의 테레진 지도에 나오는

대 요새의 여러 건물을 훑어봤는데,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유대인 화장터 방향 표시를 보고,

거기도 한번 가보기로 했다.


테레진에 아침 일찍 와서

아직 시간이 많았다.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그렇게 화장터를 향해 걷다 보니,

유대인들을 싣고 이동했던

예전 기찻길 흔적이 나온다.


지금은 기차가 다니지 않는데,

역사적 유물로 일부만 그렇게 남긴 거다.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그렇게 계속 걷다 보니

또 무슨 요새 같은 곳이 나왔다.


통합 티켓을 보여주니

들어가서 볼 수 있게 해 줬는데,

소 요새에서 봤던 그 터널과 비슷한 공간이다.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결국 테레진에 유일하다는 화장터에 도달했는데,

아침부터 너무 감정이입해서

영혼을 탕진했는지,


난 마음이 너무 힘들 것 같아서

의 건물과 주변만 둘러보고
화장터엔 결국 들어가지 않았다.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8. 테레진 시내


그 밖의 테레진 시내,

  요새 내부의 모습은 이렇다.


아래 사진의 지도에 나온 것처럼

테레진의 건물 하나하나가

의미가 있는 곳이지만,


나는 위에서 언급한 박물관 이외의 나머지 공간은 

그냥 밖에서 둘러보기만 했다.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사실 이 도시의 사연을 모르고 보면,

여기는 그냥 흔한 유럽의 시골 마을 같다.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여기는 대 요새 서북쪽의 공원이다.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아래 사진은

대 요새 중앙광장 동쪽에 있던 건물로 기억하는데,

예전에 병원으로 사용되었고,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사라예보에서 암살한 세르비아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여기에서 사망했다는 설명을 읽은 기억이 있다.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아래 사진의 건물은 중앙광장 동남쪽에 있었는데,

승마 홀(Jízdárna, Riding hall)이다.


오스트리아 제국 시절의 낭만주의 건축으로

건축적으로 의미가 있다는데,

아마 내부 건축이 그런  같다.


겉은 그냥 평범하다.


유대인 게토 시절에는

수용자들이 목공 노동을 하는 장소였다고 한다.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아래 초록 건물은 유대인 기도방인데,

나치가 그래도

이 정도의 종교의 자유는 용인했다고 한다.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아래 사진의 장소는

창고 사용되던 건물(Kavalír # II),

1층에 빵을 굽는 오븐이 여러  있어서,

처음에는 병사들에게,

2차세계대전 중에는 게토 수용자들에게 

배급할 빵을 여기에서 구웠다고 한다.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그리고 그 밖에

지금은 정확하게 무슨 용도였는지

 기억도  나고,

자료 검색도 잘 안 되는

대 요새 외곽의 성벽들이 있다.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2020년 1월, Terezin, Czech Republic)


(그 밖의 테레진 관련 정보 링크)




이 날 좀 일찍 테레진에 도착하기도 했고,

테레진 자체가 별로 크지 않아서

여러 번 돌아보고나도

2-3시 정도 되는데,


벌써 프라하로 돌아가기는 좀 아쉬워서,


리토메르지체(Litoměřice)라는

프라하에서 내가 타고 온 그 시외버스의

종점 도시에 가보기로 했다.


테레진 출발하기 전에,

이 근처 뭐 없나 검색했을 때 본 그 도시가

좀 괜찮아 보이기도 했고,


테레진묵직한 공기

가라앉은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했다.


(리토메르지체는 다음 포스트에서)


생각해보니,

나는 폴란드 오시비엥침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갔을 때도

이것과 비슷한 

그 역사적 희생자에 대한 연민에서 비롯된

무겁고 텁텁하고 억눌린 기분을 경험했었다.


영화 보면서도 감정 이입 많이 하는 스타일이라

무서운 영화, 사람 많이 죽는 영화는 못 보는데,

이런 비극적 역사적 공간을 여행할 때도

내 의지로 도저히 통제 불가능한

그 감정이입 유전자가 꿈틀거린다.


그래서 내 마음은 좀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런 비극적인 역사를 잊지 않고,

방문하면서 기억하며,

이러한 역사적 공간을 계속 유지하게 하는  

중요한 일인 것 같다.


더군다나 요즘과 같이,

인종, 민족, 국적, 성별, 빈부, 나이, 종교, 학력, 지역, 정치적 성향 등등 여러 가지 기준에서

자신의 것보다 열등하다고 혼자 평가하는,

자신의 것과 다른 수많은 것들에 대한

죄의식 없는 "증오" 또는 "혐오" 표출이 

전방위적으로 넘쳐나고,

또 그걸 이용해서 대중을 편가르기 하는,

부족하고 불편한 논리로 자기합리화된 

공식적인 혐오를 마구 휘두르는 나쁜 정치가 

국내외적으로 전염병처럼 유행하는 시대에는

더더군다나 말이다.


물론 이런 특별한 역사적 장소의 방문은 

개인의 선택의 문제라서 


그렇게 정작 다른 것틀리다고 주장하며

"증오"나 "혐오"를 표출하는 사람들은

이런 공간을 방문하지도 않을 거라는 게,

그리고 혹시 방문한다 해도

자신이 바로 그 "나치"인 걸 모를 거라는  

또 다른 비극이라면 비극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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