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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Jan 05. 2019

누가 퇴사를 막는가?

Money, Money, Money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


 철 없던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와 대외 활동 그리고 학업까지 세 개를 동시에 해내는 일이 세상 제일 어려웠다. 딱 한 학기만이라도 하나만 선택해서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싶었더랬지. 학교 다니는 내내 졸업해서 직장을 갖고 일하는 순간을 꿈꿨다.


 그런데 이게 웬걸. 무사히 졸업해서 직장을 가졌고 대외활동이나 학업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여전히 사는 게 어려웠다. 그중에서도 최고 미스테리는 돈이었다.

매일 돈 버는 활동을 하는데 돈이 없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대학생 때 보다 더 버는데. 학생 때와 달리 돈 버는 일하고 사는데. 월급이 들어오기가 무섭게 월세, 카드값, 통신비, 보험비가 이체되었다. 줄 사람 모두 주고 나면 내 손에 쥐는 돈은 대학 때 용돈이랑 크게 다르지 않았다. 씀씀이는 그새 얼마나 커졌는지 대학생이었다면 엄두도 못낼 금액도 겁 없이 카드를 긁었다. 다음 달의 나와, 다다음 달의 나와, 그 다음 달의 내가 힘을 합치면 세상에 사지 못할 물건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퇴사를 고민할 때 가장 큰 문제는 돈이었다. 퇴사 3개월전부터 카드빚을 없애려고 쓸데 없는 지출을 모두 없앴다. 생각 없이 가던 편의점은 물론 친구 약속까지 확 줄였다. 월급이 없는데 카드 고지서가 날아오는 일만큼 끔찍한 일도 없으니까. 돈이 가장 무섭고 돈이 가장 두려웠다. 사치와 허영을 부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적어도 체면은 차리고 살고 싶어서. 이 나이에 엄마한테 용돈을 달라고 할 수도 없고. 설사 용돈을 주장할지라도 줄 수 있는 가정 형편도 아니다. 숨만 쉬어도 필요한 돈들이 머리 속에서 채권자처럼 떠나지 않았다. 틈만 나면 엑셀을 켜서 두드렸다. 내가 한달에 얼마를 쓰더라...


 퇴사를 결정한 나에게 많은 사람들이 위로와 응원을 건네왔다. 괜찮을거야, 다 잘될거야, 뭐든 잘할거야. 안타깝게도 이런 말들은 힘이 없다. 그런건 정말 괜찮아진 다음에, 다 잘된 다음에, 뭐든 잘한 다음에야 '봐봐, 내 말이 맞지?'와 병행 가능한 대사다. 퇴사 직전까지 나는 회사를 나가서 홀로 어떻게 먹고 살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내가 가만히 있는다면 괜찮을리도 없고 잘될 일은 더더욱 없으니까. 잘하고 싶은 일은 아직도 신생아 수준이라 당장의 나를 밥 먹여줄리 만무했다.


 퇴사는 이런거다. 보기만해도 토할 거 같던 회사 조형물을 이제 보지 않아도 된다는, 몇 번이나 마음에 스크래치를 남겼던 직장 동료를 더 이상 안 만나도 된다는, 생각만해도 눈물이 나던 출퇴근을 할 필요가 없다는 해방감은 금세 돈 없는 현실에 뭍혀버리고 다시 나는 나를 몰아붙인다. 


대체 왜 나는 이렇게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거야?


  많이 고민했고 더없이 고민했고 끝까지 고민했다. 뒤돌아볼 일도 없고 후회도 없다. 퇴사를 말하던 순간으로 돌아간다하더라도 똑같이 퇴사를 말할거다. 그 정도로 나는 내 결정에 자신있다.


돈이 있다는 것 = 맛있는 걸 고민하지 않고 먹을 수 있다는 것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데. 


 매달 마약처럼 받던 월급이 한없이 그리운 건 내가 퇴사를 했기 때문이다. 이러다 큰일나겠는데라는 생각이 숨쉴때마다 눈 앞에 번지는 이유도 아마 마찬가지겠지. 회사는 다녀도 문제고 안 다녀도 문제라더니 그게 딱 내 이야기다. 다들 퇴사 전에 6개월치 생존비는 만들어두고 퇴사하길. 안 그러면 나처럼 한숨 쉴 때마다 걱정이 찾아올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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