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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llow Duck Dec 21. 2018

질문 열다섯: 다문화 아이 키우는 거 어때요?

신 인류의 탄생

다문화 아이로 태어난 이상
미루는 어쩔 수 없이 정체성에 대해 고민할 것이다. 
그때 내가 해 줄 말은 무엇일까? 


# 어떤 글 하나


몇 년 전 인터넷 다문화 가족 게시판에서 내 눈길을 끌었던 글 하나가 생각난다. 글의 요지는 한국에서 는 주변의 시선과 관심이 너무 싫어서 빨리 남편의 나라로 이민 가고 싶다는 얘기였다. 미루보다 몇 개월 어린아이였는데, 글쓴이는 나가면 연예인 보듯 쳐다보는 사람들 때문에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아 자신의 뒤로 는 게 마음 아프다며 다문화 가족으로서 한국에서 사는 게 좋은지 묻고 있었다. 충분히 공감 가는 글이었지만 우려도 되었다. 마치 ‘이민 가면 모든 게 해결된다’란 뉘앙스를 겼기 때문이다. (남편의 나라는 유럽 국가였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생김새가 다르면 나라에 상관없이 주목을 받게 되고 이는 차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민자를 날 선 시선으로 보는 요즘의 정세로 봐선 더더욱 그렇다. 이민은 결코 답이 아닌 것이다.


내 관심을 끌었던 건 아이의 반응이었다. 만 세 살의 아이가 벌써 타인의 시선을 자각했다는 게 흥미로웠다. 당시 미루는 누가 자신을 쳐다본다는 개념조차 없었는데 말이다. 이 아이가 조숙한 걸까, 미루가 느린 걸까? 아이들의 성향을 하나로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반응이 다른 이유가 뭘까? 감히 말하건대 평소 엄마가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썼다면 아이도 그 기운을 그대로 받지 않았을까? 아이의 조숙도를 떠나 엄마가 스트레스를 받았다면 아이도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16개월 즈음, 조리원 동기 아이들과 함께. 사진 허락받고 올림.


# 한국인의 오지랖


다행히 미루는 한국에서 시선을 덜 받았고 외출했을 때 불쾌한 경험을 당한 적이 없다. 모두 미소로 예뻐해 주셨고 막 만진 적도, 허락 없이 사진을 은 적도, 괜히 영어를 시킨 적도 없다. 진상을 만난 적이 없으니 글 쓴 엄마가 한국이 싫을 정도로 겪은 경험이 어떤 건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아마 앞에 쓴 예를 모두 겪었겠지? 만약 그런 진상이 매일 반복된다면 나 역시 어쩔 수 없었을까? 한국이든 외국이든 오지랖에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상황은 같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속에 담아둬도 될 말을 굳이, 기어코, 기필코 밖으로 꺼낸다. 


- 혼혈이죠? 어쩐지… (아~ 진짜 그놈의 '어쩐지'!)

- 엄마 안 닮고 아빠 닮아서 예쁘네. (그러게요, 저 닮았으면 어쩔 뻔했어요! 하늘이 도왔지) 

- 영어 해 봐! (아니거든요. 아빠가 네덜란드 사람이거든요) 


사실 외국에서는 겉으로 표현을 안 한다지만 그게 더 무서울 수도 있다. 미소 뒤에 어떤 말들이 숨어있을지 누가 알 리요. 

글 쓴 엄마의 마음을 이해한다. 외국인과 결혼한 자기 인 것 같아 속상한 마음에 하는 넋두리라는 걸. 다문화란 이유만으로 겪는 비애가 속상해 내뱉는 하소연이라는 걸. 그녀 또한 남편의 나라가 해답이 아니란 걸 잘 알 것이다. 내가 겪지 않았다고 그녀의 경험을 무시할  없다. 강도만 다를 뿐 결국 내 얘기인 것을.


그 누가 뭐라 해도 미루는 100 퍼센트 한국인


# 신 인류의 탄생


미루는 태어남과 동시에 혼돈을 부여받았다. 한국인 엄마와 네덜란드 아빠 사이에 태어났다는 원죄라면 원죄 때문이다. 서양인도 동양인도 아닌 그 무엇. 경계에 있는 또 다른 인종. 서류를 작성할 때 사회가 규정한 여러 ‘민족’의 상자 중 고유의 이름조차 가지지 못해 ‘other’란 상자에 자신을 넣어야 하는, 즉 존재 자체가 혼돈인 인간. 만약 이것이 원죄라면 난 미루에게 의연히 혼돈을 끌어안고 그 원죄를 깨뜨리는 신인류로 태어나라고 말할 것이다. 소속을 거부하고 뛰어넘는 다원적 인간으로 말이다. 다윈의 진화 이론에 한계가 없다면, 어쩌면 미루는 백 퍼센트 한국인임과 동시에 백 퍼센트 네덜란드인인 새로운 인류이다. 그리고 앞으로 미루와 같은 신인류는 계속 태어날 것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을 고민한다. 언젠가 미루는 부모의 보호막에서 벗어나 스스로 어떤 존재로 살아가야 할지 결정할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그때 미루가 자신의 정적인 모습을 찾고 올곧은 내면의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가이드해야 할 책임을 느낀다. 베를린의 한 놀이터에서 미루는 ‘칭챙’ 소리를 들어야 했다. 외국에서 미루는 영락없는 ‘동양 아이’인 것이다. 말의 뜻은 이해 못 했지만 거부당했다는 걸 확실히 느낀 미루는 바로 뒤돌아 다른 놀잇감을 찾아서 갔다. 그걸 본 나는 속으로 말했다. 

- 그래, 미루야. 그 단어는 결코 너를 구속할 수 없어! 과감히 경멸의 눈길을 보내고 네 갈 길을 가렴. 너 자신의 고유한 성질과 오롯한 가치, 그리고 자유의지로 네 인생을 걸어가렴. 엄마가 도와줄게!

난 미루와 함께 했던, 그리고 앞으로 할 모든 여행이 미루에게 다름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최고의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내겐 앞으로 미루가 어느 전공으로 어느 대학에 들어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끊임없이 맞이하는 새로운 환경과 사람 속에서 어떻게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찾고 발전시키는 방법을 터득하게 도와주느냐가 더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라면 난 지구 상 어디든 갈 준비가 되어있다. 

 

얼마 전 최고의 화제작이었던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 주인공 유진 초이가 말했다. 

- 조선은 나를 미국인이라 하고, 미국은 나를 조선인이라 합니다.

앞으로 미루가 할 소리다. 언젠가 미루가 ‘나는 누구예요?’라고 묻는다면 난 이렇게 대답할 거다. 


You are who you are and no one else is like you.


신인류의 탄생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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