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ellow Duck Jan 24. 2019

질문 열넷: 외국 시댁이라 좋지 않아요?

동서양 다를 바 없는 시월드


누가 뭐라 해도
시월드는 시월드


시댁의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


# 시댁은 어렵다.


단도 진입적으로 말하면, 시댁은 어렵다. 서양이라고 다를 바 없다. 외국인과 결혼했으니 시댁 신경 쓸 일 없어서 좋겠다고 하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 시월드는 시월드다. 주변 다문화 가족 중 아침 드라마를 능가하는 막장 시댁도 봤고,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매정 시댁도 봤고, 사랑이 넘쳐나 손발이 오그라드는 버터 시댁도 봤다. 즉 어떤 시댁을 만나느냐는 다 자기 운인 거지 외국 시댁이라고 다를 바가 없다는 거다. 


나도 시댁 방문을 몇 번 했지만 결코 쉽지가 않다.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을 이해 못 하시는 엄격한 시아버지와 카밀의 관계가 어색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서적으로 이해 못 할 문화도 많다. 세계 여러 곳을 다닌 덕에 다름을 받아들이는 폭이 꽤 넓다고 자부하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헷갈린다. 


이게 과연 이 집안 분위기인가, 아니면 네덜란드 문화인가?


원래 네덜란드 사람들은 이성적이고 냉정하고 직설적인 걸로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우리 시댁은 유난히 건조하고 딱딱한 것 같다. 몇 년 만에 본 형에게 ‘왔어?’ 하며 내미는 악수 한 번이 끝이고 (반갑게 안으려고 펼친 내 두 팔만 뻘쭘해졌다) 시부모님을 만나려면 최소 2주 전에 예약을 해야 하고 (오늘 갈비찜 해놨으니 와서 먹고 가라, 뭐 이런 건 없는 거다) 방문해도 우리를 철저히 손님으로 대하신다. 또 주고받는 것에 상당히 인색하다. 한국에서 올렸던 우리의 결혼식에도 그냥 축하 이메일 한 통으로 ‘퉁’치셨고 (뭘 바란 건 아니었다. 진심이다) 삼 형제 중 첫째인 카밀도 둘째 동생 결혼 선물을 막냇동생과 같이 (그렇다! 따로가 아닌 같이!) 와인 한 병으로 끝냈다. 역사적으로 세계를 종횡무진 돌며 무역을 했던 ‘네덜란드 상인’의 비즈니스적인 성격이 어디 가겠냐 싶다가도 (‘베니스의 상인’에서 샤일록은 네덜란드 사람이다) 과연 모든 네덜란드 가족이 이럴까 싶기도 하다. 감성적인 카밀이 이런 시댁의 분위기를 싫어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어머, 나 방금 공개적으로 시댁 욕한 거야??)

 

시댁의 크리스마스 식사 테이블 세팅.


# 미루의 첫 시댁 경험. 


생후 7개월이었던 미루를 데리고 처음 시댁에 갔던 그날 밤을 기억한다. 늦게 도착한 바람에 늦은 저녁을 먹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미루의 취침 시간과 겹쳤고 그날따라 잠투정을 심하게 했다. 난 따로 마련해주신 아기 요람에 미루를 재운 후 먹으려 했는데 벽이 높은 네덜란드식 요람이 어색해서인지 미루는 쉽게 잠들지 못했고, 겨우 재우고 나와 시아버지께서 요리하신 스테이크를 자르려는 순간 으앙~하고 소리가 났다. 가서 달래려는데 시아버지께서 툭 내뱉으신 한 마디는 날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 뭐, 그냥 평범한 아기 울음소리네.

주눅 들지 않아도 될 것을, 내겐 그 말이 굳이 가서 달랠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들렸다. 자리에 앉아 칼질을 계속했지만 스테이크가 제대로 넘어갈 리가 없었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점점 커졌고, 전혀 개의치 않고 얘기하던 시아버지, 시어머니, 그리고 카밀 사이에서 나만 혼자 안절부절. 평소 버선발로 달려가 안아주는 스타일이 아닌 이른바 ‘쿨한 엄마’ 소리를 듣는 나인데도 ‘뭐야, 여긴 아기가 이렇게 울어도 눈길 한번 안 주는 문화인 거야?라는 생각이 들 만큼 문화 충격이었다. 

결국 양해를 구하고 방으로 가보니 미루는 양손으로 요람 벽을 붙잡고 새파랗게 질려 엉엉 울고 있었다. 어찌나 미안하던지! 태어나서 최고로 심하게 우는 걸 시댁에서 경험하다니, 커플이었을 때와는 다른, 아이가 생긴 후의 시댁 문화를 처음으로 경험한 순간이었다. 


서로를 알아가고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문화의 차이를 떠나 인간 대 인간으로서 서로를 파악하고 어색한 웃음이 사라지기란 단 몇 번의 방문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시댁에서 지냈던 한 달 반의 시간은 시부모님을 더 깊이 알 수 있는 고마운 시간이었다. 몰랐던 그들의 생활 패턴과 추구하는 삶의 방향, 조용하지만 소소한 행복, 썰렁하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유머 등등. 같이 살며 부딪치니 마냥 드라이하게만 보였던 그들이 달라 보이고 비록 동의하지는 못할지언정 ‘그럴 수도 있겠다’며 이해하게 됐다. (막장 가족이 아닌 게 어딘가!) 

시댁을 떠나던 날, 작별의 포옹을 하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서로를 더 알아갈 무렵 헤어지게 돼서 아쉬움이 컸던 것이다. 친정엄마께선 항상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고 농담처럼 말씀하셨는데, 시댁 역시 그랬을까? 당신들과 전혀 다른 생활 리듬을 가진 우리를 한 달 반 동안 참아주셔서, 나에게 굳이 ‘며느리다움’을 강요하지 않으셔서,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방식으로 미루를 예뻐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뭐든 오래 두고 볼 일이라고, 시댁을 떠나면서 아쉽다는 소리가 나올 줄이야. 

 

눈으로 쌓인 시댁 집.


# 그래도 시댁은 여전히 어렵다.


시아버지와 카밀 사이의 어색함은 여전하다. 가끔 하는 화상 통화도 그냥 겉도는 느낌이다. (결국 그가 듣고 싶은 건 ‘언제 어디서 집을 사고 직장을 얻어 돈을 벌 거다’란 거니까. 그는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 관심이 없다) 네덜란드어를 할 줄 모르는 난 이 통화에서마저도 뒷전으로 밀려나고 만다. 시부모님께서 한국이란 작은 나라에서 온,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동양인 며느리를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하다. 교양 있는 웃음 뒤에 어떤 생각을 하실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그래도 가끔은, 신기하게도 가끔은, 시댁의 평화로운 뒷마당이 그리울 때가 있다. 흐드러지게 핀 화단에 물을 주시고 닭장에서 싱싱한 달걀을 꺼내시는 시부모님의 모습이 아련할 때가 있다. 


얼마 전 시어머니로부터 오랜만에 이메일을 받았다. 집 관리를 하며 벌어지는 일상의 소소함을 쓰신 메일의 전반적인 톤이 너무 따뜻해서 그만 눈물이 났다. 우리 사이에 있는 장벽의 실체는 무엇일까? 다음에 시댁을 방문할 땐 내가 열심히 연습해서 멋들어진 한식 저녁을 차려드리고 싶다. 한식은커녕 스시는 일생에 한두 번, 중국 음식은 아예 제대로 먹어 본 적이 없는 양반들이니 말이다. 그만큼 우리가 좁혀가야 할 간격은 크고도 넓다. 


시댁에서 첫눈을 본 미루.


All photos by Yellow Duck

이전 14화 질문 열셋: 외국인 남편 어때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