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시간이 살아갈 시간에게 해주고 싶은 말
외손녀와 함께 길을 나선 엄마에게서 오래전에 들었던 말을 다시 듣게 되었다.
"할머니도 지금 태어나고 싶어... 공부하고 싶은 거 하고, 마음대로 다니고..."
엄마는 비슷한 말을 오래전에, 다른 형식으로 내게 얘기했었다.
"배울 만큼 배웠겠다, 왜 집에 있어? 하고 싶은 거 하고, 배우고 싶은 거 배우고, 가고 싶은 곳 가고 그렇게 살아. 엄마는 다시 태어나면 결혼도 안 하고, 공부 많이 하고, 가고 싶은 곳도 마음대로 가고, 그렇게 살아보고 싶어..."
얼마 전, 함소원과 그녀의 친정엄마가 함께 나온 방송, 아이콘택트를 보았다.
함소원은 자신이 어렸을 때 친정엄마의 마음도 모르고 철없이 말하고 행동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다면서 사죄의 말과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아이콘택트를 신청했다고 한다. 방송 후반부에서 함소원이 친정엄마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했던 말이 생각난다.
"다음 생에는 내 딸로 태어나, 내가 잘해줄게"
혜정이를 낳고 나니, 엄마가 되고 나니, 엄마의 마음을 이제 조금 알겠다는 함소원의 고백.
그녀만의 마음이 아니었다. 나의 이야기였고,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이었다.
눈물을 머금은 함소원의 고백에 친정엄마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비로 날아다니다가 이름도 없이 죽고 싶어. 안 태어나고 싶어. 너희 낳은 것만으로도 너무 보람 있었어"
천천히, 조금씩 말을 이어가는 친정엄마의 독백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살아온 세월, 견뎌올 시간이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로 한꺼번에 사라지지는 못할 것이다.
외할아버지는 맏이인 엄마에게 늘 말씀하셨다고 한다.
"맏이가 모범이 되어야 한다"
"맏이가 참고 더 잘하려고 해야 한다"
"여자는 시집가서 남편, 시댁을 위해 살아야 한다"
가끔 생각해본다. 만약 나에게 그런 것을 요구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공부를 잘해도 소용없었던 시절, 친정이 가난하면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던 시절, 어른 공경하는 것이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이 여장부 스타일이었던 엄마에겐 힘겨운 시절이었을 것이다.
손녀에게 낮은 목소리로 무심한 듯 쏟아낸 엄마의 말이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마음이 애틋해지고, 안타까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정말 함소원이 친정엄마를 향해 던진 고백이 내 입에서도 나왔다.
"엄마, 다음 생에는 내 딸로 태어나. 내가 잘해줄게. 내가 공부도 하게 해주고, 가고 싶은 곳도 마음껏 다니면서 살 수 있도록 도와줄게"라고.
그러면 엄마는 내게 뭐라고 이야기할까?
"너무 좋지. 나도 그러고 싶어" 이렇게 이야기할까.
아니면 함소원의 친정엄마처럼 "다시 안 태어나고 싶어. 너를 낳은 것만으로도 보람이었어"라고 이야기할까.
모를 일이다.
by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