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시간이 살아갈 시간에게 건네는 말
어제는 어버이날이었다. 말 그대로 어버이날. 주말에 친정과 시댁을 모두 들러 얼굴을 뵙고 왔지만 전화라도 드려야지, 그 생각만 하고 있었다. 자칫하면 잊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아 미리 전화드리는 것을 다이어리에 적어놓았다. 어머님이 저녁 드라마를 보시는 8시쯤, 양쪽에 모두 전화를 드려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낮에 가까이에 계시는 형님과 동서가 올라와 함께 고기를 구워 먹었다는 얘기를 전해주셨다. 그러면서 어머님이 물으셨다. "느거도 어버이날인데, 어떻게 보냈노?"
작년까지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어버이날 행사를 진행해서 인지 매번 무언가를 받았던 것 같다. 그때도 그랬지만, 여전히 어버이날은 내가 부모님에게 마음을 전하고, 무언가를 해 드리는 날로 기억될 뿐, 내가 어버이날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고 있다.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어버이날이라는 이름표를 달기엔 좀 덜 익은, 과하다는 느낌이 든다. 인생의 일부를 함께 보내는 존재라는 의미로 다가올 뿐, '내가 어버이다'라고 내세우기엔 아직은 부족한 느낌이다.
결혼기념일, 생일도 깜빡하는 마당에 어버이날을 기대하고 있지는 않았다.
어제 오후 5시쯤 큰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하지만 다른 일을 한다고 전화를 받지 못했다. 일을 끝내고 집에 오니 큰 아이가 물었다.
"엄마, 엄마는 아까 전화 왜 안 받았어?"
"응?... 일한다고 못 받았지"
"아니... 여기 앉아봐. 엄마는 필요한 거 없어?"
"엄마? 음.... 딱히 없는데..."
"아니... 하나만 이야기해봐. 실은 아까 내가 친구하고 밖에 나가서..."
실타래가 풀린 것처럼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친구와 함께 어버이날 선물을 무엇을 하면 좋을지 의논했다는 이야기, 꽃집을 갔다는 이야기, 꽃집 주인이 자신들에게 화분을 사면 더 좋을 거라면서 영업했다는 이야기, 그러다가 전화를 했는데 통화가 안 되어 결국 집으로 왔다는 것까지. 한참 이야기를 하던 큰 아이가 다시 물었다.
"엄마... 그러니까 꼭 필요한 거 없어?"
"음, 엄마, 볼펜?"
"아니, 지난번에 볼펜은 내가 엄마 하나 사줬잖아...."
"음... 그럼 필통? 지금 필통이 좀 커서 이거 절반쯤 되는 필통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알겠어. 필통. 그리고, 아빠. 아빠는 뭐가 좋을까?"
"아빠? 맥주?"
"그럴 것 같은데, 그건 내가 못 사 오잖아..."
"아빠? 고민하지 말고 아빠한테 직접 전화해서 물어봐"
"그럴까?..."
막 회사에서 나온 남편이 전화를 받은 모양이었다.
"아빠, 언제 와?"
"아빠. 이제 출발해"
"아빠... 아빠는 필요한 거 없어?"
"어?"
"아니, 내가 뭘 사주고 싶은데, 아빠는 필요한 거 없어?"
"음... 아빠는 관심?"
"아니, 그건 내가 많이 주고 있잖아. 그거 말고. 내가 나이가 어려서 맥주는 못 사줄 것 같고, 그거 선물하려면 엄마랑 같이 나가야 해. 엄마 나랑 같이 나갈래?"
"아니... 엄마는 지금 좀 바쁘거든... 차라리 아빠랑 밖에서 만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럴까? 아빠 밖에서 만날까?"
"것보다 아빠는 볼펜 있으면 잘 쓸 것 같은데?..."
"볼펜?..."
그렇게 양쪽의 의견을 확인한 후. 아이가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는 밖에 나갔다가 돌아왔다.
울산과 경주에 전화를 드리고 쉬고 있는데 두 아이가 우리를 불렀다.
"엄마, 아빠... 소파에 여기 와서 좀 앉아봐"
"응?... 어..."
두 아이가 작은 꽃다발을 들고 선물을 하나씩 내밀었다.
"그러니까 어버이날이어서 준비를 했는데..."
그때 작은 아이가 곁에 와서 속삭였다.
"엄마... 나는 학원에 갔다 온다고 누나랑 같이 준비 못 했어. 내가 조금 덜 바빴으면..."
"그랬구나. 오늘은 좀 바빴다. 그치?"
"응. 그리고 엄마... 나 용돈 통장에서 5천 원만 인출해 줘. 누나랑 같이 하기로 했거든..."
"그래, 알겠어..."
어버이날, 부모님에게 무언가를 해드리는 날이라고만 생각했지, 아이들에게서 무언가를 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학교에서 적어온 편지가 고마웠고, 편지 속에 있는 '사랑해요'라는 다정하고 따뜻한 글에 마냥 힘이 났을 뿐이다. 거기까지였는데 아이들이 어버이날을 기억해 주고, 마음을 전하려고 무언가를 준비했다는 사실이 예쁘고 고마웠다. 특히 큰 아이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동생에게 어버이날이라고 알려주었을 아이. 어떤 것을 준비하면 좋을지 고민했을 아이,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아이, 언제 이만큼 컸는지 모르겠다.
잘 몰랐던 엄마.
조금씩 알아가는 엄마.
잘 몰랐던 아이.
조금씩 알아가는 아이.
아이와 나의 성장은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다.
by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