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제품이 아닐 수도 있다

살아온 시간이 살아갈 시간에게 건네는 말

by 윤슬작가

"정말 세탁기는 우리를 돕고 있을까?"

"가전제품은 주부에게 시간을 만들어주고 있을까?"

"가전제품이 가사노동 시간을 줄여주고 있을까?"

"새로운 제품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삶을 돕는 도구일까?"

며칠 전 신문기사를 읽으면서 떠오른 질문들이다. 분명 예전처럼 힘들게 청소하지 않게 된 것은 확실하다. 빨래 방망이를 두드리며 청소하던 시절은 동화책에서나 만날 수 있는 이야기가 되었고, 허리 숙여 빗질하는 일은 시골 할머니집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어릴 때 바쁜 엄마를 대신해 집안 청소를 한다고 무릎 꿇고 물걸레 청소를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무릎에 물집이 생기는 날도 있었는데, 당연한 것이라고 이해하고 받아들였던 것 같다. 엄마에게 투정 한번 부리지 않았으니.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확실히 가사노동 강도는 약해졌다. 순간적으로 발휘해야 하는 힘은 줄어들었다. 거기에 시간도 줄어들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빨래를 하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가전제품을 만드는 회사에서 광고한 것처럼 빨래방망이 대신 커피 한 잔을 마시거나 대화를 나누거나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그런데 정말 가사노동 시간이 줄어들었을까?"

"도구의 도움을 받아 흔히 얘기하는 여유 있는 시간, 자기계발의 시간, 힐링의 시간이 만들어지고 있을까?"


「세탁기의 배신」이라는 책에는 "세탁기가 탄생해서 등이 휠 정도로 빨래할 이유는 사라졌는데, 왜 집안일은 끝도 없다는 이야기가 쏟아져 나올까?"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담겨있다. 세탁기가 탄생하면서 오히려 세탁물은 늘어났고, 늘어난 세탁물은 높아진 청결 수준에 맞춰 관리해야 했으며, 관리는 결국 가사노동의 담당자가 진행하는 방식은 변함이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즉 세탁기가 '배신'을 했다는 것이다.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선언했지만 결코 자유롭게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세탁기가 생겼으니 세탁이 쉬워졌고, 깨끗하고 청결한 옷은 당연한 현상이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자연스럽게 가사노동 담당자는 그 당연한 수준을 유지하는 새로운 임무가 추가된 것이다. 이쯤 되면 의구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세탁기 뿐만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내는 제품은 정말 우리를 돕고 있을까?"




가전제품의 도움을 받고도 더 많은 일을 해야만 했기 때문에 주부의 노동시간이 안 줄어들었을지도 모른다.

즉 위생이나 청결 등의 문명 기준을 충족해야 하는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주부들은 중산층으로서의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만 했을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빨던 빨래도 매일의 세탁물로 바뀌었을 것이다.

비록 노동 강도는 줄어들었지만, 세탁의 빈도는 오히려 더 늘어났던 것이다.

- 「세탁기의 배신 」중에서


「사피엔스」에도 비슷한 글이 있다. 과거에는 편지를 쓰고 주소를 적고 봉투에 우표를 붙여 우편함에 가져가 몇 날 며칠을 기다렸지만, 지금은 단 몇 분 이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에게서 답장을 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면서 과거의 모든 수고와 시간을 절약하게 되었는데, 과연 우리는 좀 더 느긋한 삶을 살고 있느냐고 묻고 있다. 유발 하라리는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는 시간을 절약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인생이 돌아가는 속도를 과거보다 열 배 빠르게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의 일상에는 불안과 걱정이 넘쳐난다"


세탁기만이 아니어도, 우리를 돕는다고 나서는 것들의 공통점과 그것이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필요한 경우 적극적으로 활용하겠지만 자신이 원하는 삶을 만들어가는데 제대로 도움이 되고 있는지 수시로 질문을 던져 대답을 얻어야 할 것 같다. 「세탁기의 배신」에서 저자의 얘기처럼 가전제품 그 자체보다는 시대의 변화, 역할의 변화, 인식의 변화가 가사노동 시간을 줄여준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도구가 아닐 수도 있다. 새로운 도구가 아닌 새로운 생각, 새로운 역할, 새로운 인식이 먼저 일 수 있다.


by 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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