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해놓고 나중에 보면 잘한 거드라

살아온 시간이 살아갈 시간에게 건네는 말

by 윤슬작가

오랜만에 어머님 얼굴을 뵙고 왔다. 코로나19 상황이 벌어지고 처음이었다.

대구에서 하루에 몇백 명씩 코로나 확진 환자가 나오기 시작했을 때 어머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느거 대구 있지 말고 경주에 오는 게 낫지 않겠나?"

"어머님, 우리 내려가면 동네에 계시는 분들 걱정이 많으실 거예요. 우리가 안 움직이고 여기서 조심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그 후 어머님께서 걱정하실 것 같아 2,3일에 한 번씩 전화드리며 소식만 전하다가 어제 어머님을 뵙고 왔다.


시집와서 지금까지 '농사'에 의지하며 살아오셨다. 시골에 계시는 어른들의 일상이 그러하듯 아침을 조금 일찍 열고, 저녁을 조금 일찍 닫는다. 어제도 조금 일찍 내려가서 도와드릴 요량이었는데,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대부분의 일이 어머님 손에서 끝나 있었다. 남편은 무엇이라도 해드리고 싶어 했지만, 오랜만에 내려온 아들을 위해 어머님은 일거리를 애써 만들지 않으셨다. 그러다가 어머님의 시선이 올해로 지은지 3년째 되는 비닐하우스로 옮겨졌고, 덮어놓은 비닐이 날아가지 않도록 끈을 연결하면 어떻겠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흔쾌히 따라나서는 나에게 어머님은 말씀하셨다.

"너는 안 나와도 된다. 둘이 하면 된다"


농사일은 서툴지만, 끈을 연결하는 정도는 충분히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운동화를 신고 따라나섰다.

일이 마무리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부엌으로 돌아와 점심을 준비했다. 매번 그렇지만 어머님 집에 오면 밥을 너무 잘 먹었다. 어제도 두 그릇을 먹었다. "여기오면 매번 밥을 두 그릇씩 먹어요"라는 소리에 어머님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셨다.

"맛있는 게 뭐가 있노. 맨날 김치하고 채소밖에 없는데..."

"어머님, 이게 좋은 거죠..."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마지막 숟가락을 입에 넣을 때였다. 비닐하우스를 보고 계시던 어머님께서 말씀하셨다.

"뭐든 해놓고 나중에 보면 잘한 거드라"


이른 아침부터 작업을 했던 터라 몸이 고단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 고추를 말리는 중요한 일을 해야 하는 비닐하우스가 신경쓰였고, 혼자서는 비닐하우스를 가로질러 양쪽으로 끈을 연결하는 일이 버거우셨을 것이다. 그래서 아들과 함께 시작을 했는데, 한결 마음이 놓이시는 분위기였다. 거창하거나 대단한 결과가 아니더라도 의도를 가지고 무엇을 한다는 것, 그것이 결과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 자기 계발서에 나올만한 이야기가 무심하게 던져지고 있었다.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고, 시도는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을 어머님은 농사에서, 일상에서 터득하신 것 같다.


삶에 대한 태도가 모든 것을 말한다고 했던가. 너무 뜨겁지 않은 온도에서 뭉근하게 건네는 어머님의 말씀이 책 한 권을 읽은 후의 느낌과 비슷했다. 우리는 어디에서든 배울 수 있다. 말에서든, 행동에서든, 어디에서든 새로운 기운을 얻을 수 있다. 귀로 전달되는 것이 나를 도와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일상은 보다 풍요로워진다. 덤으로 고여있던 것이 흘러 떠내려가면서 새살이 돋아나는 기분까지 얻을 수 있다. 밥상을 치워놓고 어머님과 둘러앉아 과일을 먹을 때의 마음도 그러했다. 좋은 것이 슬쩍 몸속으로 들어와 내 안의 어떤 것과 맞닿은 느낌이었다.


어머님은 모르실 것이다.

어머님이 던진 파도에 잠시 내 몸을 맡기고 마음껏 즐겼다는 사실을.


by 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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