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파구리는 사랑이다

살아온 시간이 살아갈 시간에게 건네는 말

by 윤슬작가

둘째가 다니는 태권도에서 "짜파구리 레시피"와 함께 너구리와 짜파게티를 보내주었다. 아이들 간식으로 보내준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아이들이 직접 만들어 부모님께 짜파구리를 대접할 수 있도록 준비한 깜짝 이벤트 선물이었다. 짜파구리 황금 레시피를 들고 둘째가 짜파구리 요리를 시작했다. 요즘 집에서 라면을 먹을 때도 양파를 깨끗하게 씻고 가지런하게 썰어 넣는 둘째라서 큰 걱정 없이 뒤로 물러났다.

"엄마가 도와줄까?"

"엄마, 이거 물 빼는 것만 좀 도와줘, 너무 뜨거워"

"그래, 그건 엄마가 해줄게"

"또 다른 건?"

"없어. 내가 다 할 수 있으니까, 엄마는 안 해도 돼"

도움이 필요 없다는 소리가 반갑기도 하면서, 속으로 '언제 이렇게 많이 컸지'라며 책상에 앉아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하루라도 빨리 '내 이름'으로 살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 두 명의 아이들이 기쁨을 안겨주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누구의 엄마로만 살아가기엔 낮은 너무 밝았고, 밤은 너무 길었다. 아름다운 시절이 모두 지나고 있다는 느낌, 세상의 속도에 맞추지 못하고 혼자 필름을 되감기 하고 있다는 생각은 근원을 알 수 없는 우울감과 두려움으로 수시로 나를 괴롭혔다. 그때마다 남편이 구원투수가 되어 바람맞이 역할을 해주었지만 모든 갈증이 해소되지는 못했다. 마음껏 잠을 잘 수 있으면 좋겠어, 나만의 시간이 조금만 있었으면 좋겠어, 혼자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 마셔봤으면 좋겠어, 짧게라도 마음 편하게 운동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 해봤으면 ... 좋겠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잠을 자고 싶으면 마음껏 잠을 잘 수 있게 되었고, 우아한 커피숍에서 혼자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시간도 생겼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운동하러 갈 수 있게 되었고, 언제든 나의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졌다. 어디 그뿐인가, 가만히 앉아 짜파구리를 대접받는 일까지 생겨나고 있다. 생(生)의 어떤 한 단면을 지나온 기분이다. 어떻게 지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시간은 흘렀고, 자연법칙에 의해 아이들의 나이에 숫자가 하나씩 더해지는 과정에서 "... 해봤으면 좋겠어"라던 것들이 하나, 둘 현실화되고 있다. '그러고 보면 그때도 꽤 괜찮았는데, 그만한 추억을 어디에서 만들 수 있을까?'라는 소감이 단편영화 감상문처럼,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을 둘러보게 만든다. 눈에 띄게 달라진 거라고는 하나도 없는데, 마치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까운 시절을 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파에서 앞구르기를 하는 첫째, 황제펭귄 흉내를 내면서 온 가족을 웃음바다로 만드는 둘째.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듯 ' 토머스 와 친구들'을 좋아했던 시절의 흔적이 한 번씩 모습을 드러낸다. 그 모습을 보여주는 행동이 고맙고 감사하다. 내가 누구의 엄마인지를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언젠가 내 품에서의 시간을 떠나 자신의 날개로 하늘을 가르고 바람을 만들어낼 아이들. 나와 함께 보낸 시간이 스스로 '힘'을 만드는 일에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도움닫기를 하는 할 때, 비행을 할 때, 잠시 숨 고르기를 할 때, 날개를 모아 잠자리에 들 때 한 번씩 떠오르는 얼굴이 되었으면 좋겠다. 사랑하면서, 사랑받으면서 살아온 추억으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갔으면 좋겠다.

짜파구리는 추억이다.

추억은 사랑이다.

짜파구리는 사랑이다.

by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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