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시간이 살아갈 시간에게 해주고 싶은 말
"시집가면 큰돈 들어서 하고 싶어도 못해. 딴말하지 말고 무조건 지금 해..."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친정엄마 손에 이끌려 치과를 찾았다. 치과에서 검진받고 충치는 물론 잇몸치료까지 친정엄마는 다 큰 내 손을 붙잡고 치과를 다녔다. 엄마에게 나중에 아프면, 필요하면 그때 하겠다고 여러 번 이야기를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친정엄마는 단호했다. 내 입안에 금니가 만들어진 것이 그때였다. 치과 선생님은 약간의 걱정을 얹어 치료를 강조했고, 친정엄마는 치과 선생님을 전적으로 의지했다. 그렇게 몇 달 동안 치과를 다녔다. 치료에 따른 고통을 다양한 각도에서 설명하고, 눈앞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돈이 움직이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은 나는 치과를 들어가면서, 또 나오면서 잇몸을 붙잡고 계속 중얼거렸다.
"엄마, 나중에 하면 되잖아. 아플 때 그때 와서 치료받으면 되는데, 뭐 하러 돈 들이고, 고생을 사서 해?"
그럴 때마다 친정엄마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중에 살아봐. 너 치과 가서 치료하고 돈 들이는 거 마음대로 안 돼. 애들 치료는 해도 자기한테 큰돈 들이는 건 못하게 되어 있어. 시집가면 큰돈 들어서 하고 싶어도 못해. 엄마가 해준다고 할 때 그냥 해. 딴말하지 말고 무조건 지금 해..."
살아봐야 안다고 했던가. 딸의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치과를 데리고 다녔던 친정엄마의 노고 덕분에 지금껏 치과 한 번 가지 않고 살았다. 실로 고마운 일이었는데, 그때는 내가 너무 몰랐다. 고맙다는 말보다 징징거리면서 아프다만 연신 쏟아내었던 기억이 미안할 따름이다.
어제 17년 만에 처음으로 치과를 찾았다. 딱히 증상이 있는 것도 없고 아픈 곳도 없지만, 용기를 내어 찾았다. 치석을 제거하는 스케일링과 구강검진을 위해. 아이들을 치과에 데려가면서의 단호함은 사라지고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라는 말만 연신 내뱉는 나를 보면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이들이 보면 웃겠다, 싶었다. 17년 전, 치료를 받으면서 고생했던 기억이 치과에 오는 마음을 막아섰던 것 같다. '괜찮을 거야, 다음에 가도 될 거야, 아니야, 이제는 가봐야 할걸'라고. 그때 마지막으로 치료를 받고 나오면서 나오던 날, 속으로 얼마나 다짐을 했었는지 모른다.
"진짜, 진짜 양치질 열심히 해서, 다시는 치과에 안 올 거야. 진짜, 진짜"라고. 그게 벌써 17년 전의 일이다.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기억을 더듬고 있는데 의사선생님이 말을 건네왔다.
"오랜만에 오셨는데, 치아 상태가 나쁘지 않네요. 충치도 별로 없고, 스케일링하고 양치 잘 하시면 될 것 같아요"
"그래요? 감사합니다"
"이제 누우실게요. 안 아프게 천천히 스케일링할게요"
"네"
간단한 설명을 들은 후, 천천히 몸을 젖히면서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엄마, 고마워. 큰돈 들여서 치과치료해 준 덕분에 여태까지 잘 지냈어. 엄마 고마워'
바람을 가르는 물소리 속에 엄마의 목소리가 함께 들려오는 것 같았다.
"나중에 살아봐. 너 치과 가서 치료하고 돈 들이는 거 마음대로 안 돼. 애들 치료는 해도 자기한테 큰돈 들이는 건 못하게 되어 있어. 시집가면 큰돈 들어서 하고 싶어도 못해. 엄마가 해준다고 할 때 그냥 해. 딴말하지 말고 무조건 지금 해..."
by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