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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하 Aug 03. 2021

9. 삶의 의지를 북돋는 ‘멍 때리기’

 

 “조금만 운이 나빴으면 실명할 뻔했어요.” 담담한 의사의 말에 가슴이 서늘했다. 실명이라니! 운이 좋아 실명은 피했을지 모르나 눈을 뜨고 있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웠다. 그런 눈으로 모니터를 보며 몇 시간씩 기사를 써야 할 때는 어깨까지 뻣뻣하게 굳으며 통증이 더해졌다. 운동으로 조금씩이나마 몸이 좋아지고 있었는데 취재현장에서 발을 삐끗하는 바람에 한동안 운동을 쉬게 되었고 그 와중에 탈이 났다. 결국 부산에 있는 엄마를 호출했다. 엄마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흙빛의 얼굴로 서울역에 마중 나온 딸을 보고는 밤새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한다.  


 엄마의 등장 이후 식탁에 윤기가 흘렀다. 육아에 대한 부담이 줄었고 일을 마치고 오면 거짓말처럼 휴식을 누릴 수 있었다. 구세주처럼 나타난 엄마로 인해 금세 몸이 회복될 것 같았지만 이미 오래전 바닥난 체력에 악화된 건강상태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독한 약을 오랜 쓴 부작용으로 눈의 상처가 더 깊어졌기에 더 이상을 약을 쓸 수도 없게 되었다. 옷 한 벌 달랑 챙겨 부리나케 올라왔던 엄마는 3개월이 지나서야 다시 부산에 내려가게 되었는데 내 몸이 나아서가 아니라 내가 일을 그만 두면서였다.     


 일을 그만두고도 몸 상태는 쉽사리 호전되지 않았다. 더 일찍 일을 그만두거나, 더 미리 돌보미 시터를 써야 했는데…. 몸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그렇게 미련하게 일과 아이, 어느 것 하나 포기하지 못했던 까닭은 무엇일까? 사실 내 나름으로는 다 이유가 있었다.  


 우선, 일을 놓지 못한 건 여기서 일을 멈추면 다시는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가장 컸다. 20대에 직업을 여러 차례 바꾸는 과정에서 백수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지만 엄마가 되고 나서 느끼는 위기감은 체감 수위가 확연히 달랐다. ‘경단녀’라는 사회적 용어가 생겨났다는 건 현실에 어마어마한 실체와 장벽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엄마가 되고 나서 들어선 면접장에서 나는 그 실체를 보았다.   


 그렇다면 시터는 왜 못 썼나. 이건 말하기가 아주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친할머니, 외할머니이겠지 싶을 만큼 살뜰하고 지극정성인 돌보미분들이 꽤 많기에 혹여나 그분들에게 해가 될까 싶어 이 글을 쓰기가 주저된다. 하지만 돌보미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사람들 역시 꽤 있음은 분명하다. 오죽하면 워킹맘에게 가장 큰 복은 시터복이라고 하겠는가. 아이를 낳은 이후로 놀이터나 문화센터 등 동네 곳곳에서 ‘저런 분이면 절대 아이 못 맡긴다.’ 싶은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되었다. (일종의 직업병인지도 모르겠지만 임신 직후부터 나는 아주 유심히 이들을 관찰해 왔기에 내 눈에 그러한 사람들이 더 많이 보였을 수도 있다.)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걸리는 풍경은 돌보미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앉아 아이들 부모의 얘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여기서 부모의 신상, 집안 환경은 물론 그 집의 냉장고 사정까지 다 털린다. 한 번은 놀이터 벤치에 앉아 있는데 돌보미 두 분이 내 옆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말씀을 나누셨다. “내가 아무리 잘 먹여봤자 00은 키가 안 클 거야. 애 아빠가 키가 요만해.” 하며 껄껄 웃으신다. 그러자 다른 분이 “이 집 엄마는 게으른 건지 애한테 관심이 없는 건지 집에 먹을 게 하나 없어. 애가 너무 불쌍해” 라며 혀를 끌끌 차신다. (대기업 다니는 워킹맘은 졸지에 게으른 엄마, 무심한 엄마가 되어버렸다.)


 없는 자리에서는 대통령 욕도 하는데 그게 뭐 대수냐 싶겠지만 문제는 따로 있다. 이런 얘기들을 아이 앞에서 서슴없이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아이 앞에서 부모 험담을 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걸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심심해서 수다를 떨며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반복되는 부모의 험담... 이에 수시로 노출되는 아이. 과연 그 아이의 정서와 심리상태는 어떠할까. 심지어 내 부모를 험담하는 주체가 자신을 돌봐주는 양육자일 때 아이가 감내해야 할 혼란스러운 마음은 또 어떠할지…. 이런 상황을 접하게 될 때마다 정말 난감하고 가슴이 답답했다. ‘아, 이걸 도대체 어디에 신고해야 하는 거야!’


 사실 아이를 낳기 전엔 돌봄이라는 것이 내 삶에 어떠한 파장을 일으킬지에 대한 현실감이 없었다. 마냥 어떻게든 되겠지 싶은 낙관적인 마음만 있었다. (정말 무지했다.) 국공립어린이집을 1년 넘게 기다린 뒤 입소하고 나서야 현타가 왔고 유치원 입학에 더 큰 전쟁을 치르며 어안이 벙벙해졌다. 명백한 학대와 방임은 아니기에 처벌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만 있을 수도 없는, 아슬아슬한 경계에 서있는 돌보미들을 마주하며 타인에게 아이를 맡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나는 아이와 일을 모두 끌어안고 살면서 내 몸은 등한시했고 결국 내 몸은 내 뜻대로 기능하지 않게 되었다.






 일을 손에서 내려놓은 뒤 한동안 멍-한 상태로 살았다. 머릿속 생각이 비워졌다는 뜻만이 아니다. 내 몸에 동력을 가할 어떠한 에너지도 쓰지 않으려 했다. 정말이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남편은 그림이나 악기 등의 취미생활을 시작해 보라고 권했지만 그마저도 격렬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몸이 아픈 것에만 집중하다 보니 내 마음이 어떠한 상태인지를 모르고 살았는데 당시에 나에게는 ‘번아웃’이 왔던 것 같다.  


 남편은 제주 한달살이를 제안했고 우리는 어떤 계획도 없이 그곳으로 갔다. 아침마다 새소리를 들으며 눈을 떴고 푸른 숲과 더 푸른 바다에 둘러싸인 제주에서 땅과 물이 내뿜는 자연의 기운을 얻었다. 가끔은 즉흥적으로 여행지를 신나게 돌아다니기도 했지만 더 자주는 숙소에서, 혹은 자연 속에서 그저 고요히 머무르며 시간을 보냈다. 에너지 소모가 일체 정지된 멍한 상태. 그 상태로 아이가 깔깔거리며 뛰어노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이 웃음소리가 그렇게 마음을 평온하게 해 주는지를 그전엔 미처 몰랐다. 워킹맘으로 일상에 치여 사느라, 일과 가정의 양립을 반드시 이루고 말겠다는 각오를 지키고 사느라 정작 진짜 예쁘고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놓치고 살았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어 가슴 한편이 아렸다. 그간 눈코 뜰 새 없는 엄마로서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지자 내 안에 여유가 깃들어 진짜 예쁘고 좋은 것이 보이고 들리기 시작했다.        


 한달살이가 끝나고도 멍한 삶의 패턴은 계속되었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난 뒤면 집 근처 산에 올라 몇 시간이고 자연 속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당시 내 일상에는 등산과 멍 때리기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끼어들 틈이 없었다. 하지만 때때로 그간 살아온 관성의 법칙을 거스르지 못하고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흘려보내도 되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는데 그때 내게 현답을 준 책은 전지영 작가의 <나를 상하게 하는 일은 그만하기로 했다>이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저자가 바닷가 마을로 내려가 요가를 하며 서서히 건강을 회복을 하고 현재를 온전히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책이었다. 그래, 나를 상하게 하는 일은 이제 그만하자. 더 이상 내 몸에 무심해지지 말자. 복잡해지는 마음들을 최대한 멀리하고 계속해서 멍 때리기로 다짐했다. 그때의 멍 때리기는 내 몸이 내게, 다시 살아나고 싶다고, 조금만 시간을 달라고 간절히 보내신호임을 본능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몇 달을 그렇게 보내다 불현듯 어느 날,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방송을 위해 시간에 쫓기며 의무적으로 쓰는 글이 아니라 그간 내가 쓰고 싶었던 글, 생각이 담긴 나의 글을 엄격한 검열 없이 찬찬히 풀어내고 싶었다. 무기력증으로 모든 의욕을 상실한 내가 다시 무언가를 하고 싶다 의지를 갖게 된 건 결국 무념무상의 상태, 멍 때리기 덕분이었다.     


 현재는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주 1회 일을 하고 있다. 나에게 아주 많은 시간이 주어졌다는 뜻이다. 자유롭게 읽고 쓰고 생각할 수 있는 귀한 이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다. 물론 글을 써 나가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힐지도 모른다. 어디 글 쓰는 과정에만 해당되겠는가. 하지만 괜찮다. 앞으로 내 인생에 또 어떠한 변주곡이 울릴지 모르겠으나 혹여나 내 몸과 마음이 지치는 순간이 온다면 어떻게 다시 일어서야 하는, 이제 그 방법을 터득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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