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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하 Aug 07. 2021

10. '금쪽같은 내 새끼'의 대중화를 꿈꾼다.

‘나는 누구인가?’ 지난 6년간 육아를 하며 여러 복잡한 심경을 거친 가운데 궁극에 도달한 질문은 결국 이것이었다. 아이가 예뻐서 어쩔 줄 모르면서도 왜 육아가 힘겹고 지겨운 걸까. 아이의 잠든 모습을 보며 다시는 화내지 않겠노라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가도 며칠 지나지 않아 또다시 버럭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오롯이 나만의 문제인 걸까. 만약 그러하다면 현재 내 심리 상태는 어떠한 걸까. 나도 모르는 내 안의 상처와 불안이 소중한 내 아이에게 해를 입히고 있는 것은 아닐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해답을 얻기 위해 엄마의 심리를 다룬 책들을 펼쳤다.


 그중 한 구절 한 구절이 가슴에 매섭게 내리 꽂히는 책이 있었으니 (엄마들 사이에서 워낙 유명한) 윤우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쓴 <엄마 심리 수업>이다. 엄마의 ‘무의식’에 따라 아이를 대하는 양육 태도가 어떻게 달라지는 지를 상세하게 풀어놓은 무시무시한 책. 수많은 엄마들이 최선을 다해 아이에게 사랑을 주지만 애석하게도 엄마들 본인이 자신의 심리를 모를 때, 그 사랑은 약이 아닌 독이 되어 아이를 병들게 한다는 내용인데 읽는 내내 가슴이 철렁 내려 않았다. 내가 나를 모르는 무지함이 이토록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니!


 내가 품은 의문(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이러한 책들이 도움이 되긴 했지만 사실 그보다는 이전에 심리상담을 받았던 경험이 훨씬 큰 도움이 되었다. 아이 낳기 전, 30대 초반에 심리상담소를 찾은 적이 있다. 한동안 침체되어 있던 회사 선배가 심리 상담을 받고 난 이후 거짓말처럼 생기와 활력이 넘치는 모습을 보고 호기심이 일었다. 사회생활에 꽤나 지쳐 있던 나와 동료들은 선배의 변화에 고무돼 해당 상담소를 방문했는데 모두들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몇 차례 상담을 이어가면서 내가 나를 30년 가까이 모르고 살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그간 살면서 마주한 어려움들이 결국은 내 안의 문제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 역시 알게 되었다. 일종의 자기 객관화가 가능해진 것이다. 이전에 몰랐던 나를 마주할수록 눈앞에 자욱한 안개가 걷히는 듯 선명한 기분이 들었다.       


 예전에 가수 이효리 씨가 한 예능프로에 출연해, 몸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듯 마음을 위한 건강검진도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데 심리상담을 받아본 1인으로서 그 말에 100% 공감한다. 나 역시 나를 객관화하는 경험을 한 번쯤은 치러보았기에 육아라는 새로운 세상에서 겪는 필연적인 혼란 속에서도 아주 조금은 중심은 잡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심리학 책이나 육아책에서 하는 말들이 더욱 생생하게 와닿았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하지만 아이를 낳기 전의 나와 아이를 키우고 있는 현재의 나는 전혀 다른 경험치를 가진 만큼 조금은 다른 사람일 수 있고, 당시에 진행한 몇 차례의 상담만으로는 파악되지 않은 더욱 본질적인 내가 있을 수 있기에 나는 ‘나’라는 사람이 더욱 궁금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는 엄마의 심리를 그대로 빼닮는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에 겁이 났다. 내 안의 상처나 불안정한 심리가 아이에게 대물림될까 싶어 를 보다 정확히 알고 나를 보듬어 가면서 마음이 건강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현재는 책과 자기 성찰을 통해 더 깊은 내면의 나를 찾아가고 있지만 혹여나 심리적 불안감과 우울감느끼는 순간이 오면 언제든 다시 상담을 받아볼 의향이 있다.  

       

 지인 중에도 현재 정신과 상담을 받는 엄마가 있다. 2년 터울로 아이 셋을 내리 낳은 엄마로 6년간 육아휴직을 하고 다음 해 복직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 유쾌하고 아이들에게 지극정성인 엄마였다. 아이들과 야외에서 캐치볼, 배드민턴, 자전거 등 다양한 활동을 많이 하는 활달한 엄마이기도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바깥 놀이를 많이 하는 속사정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집안에 있는데 천장이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했단다. 일종의 공황장애가 온 것이다. 오래전부터 정신과 치료나 심리 상담을 받아 보고 싶었지만 막내의 어린이집 등원을 최대한 미루고 있었기에 짬을 내기도 쉽지 않았다. 복직을 한 달쯤 앞두고 막내가 등원을 시작하면서 드디어 병원을 가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진단 결과가 심각했다. 우울증 약을 1년 정도 먹고 상담도 꽤 오래 받아야 했다. 의사는, 지금 엄마의 몸 안에 어떠한 에너지도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워킹맘은 도저히 무리라며 복직을 더 미룰 것을 권했다. 답답함이 극에 달한 상태로 복직에 들떠 있었던 엄마로서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지만 상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상태에서 의사의 권유를 무시할 수도 없었다. 결국 복직을 미루고 상담을 이어갔는데 자신의 상태를 파악해가며 차츰 ‘나’에 대해 알게 되자 그간 어렴풋했던 첫 아이의 문제도 정확히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신을 위해 시작했지만 이제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결코 상담을 도중에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짐작하건대 적지 않은 엄마들이 스스로 자각하지 못할 뿐, 예상보다 심각한 우울증을 겪었거나 현재 진행형 일 수 있다. 육아를 하는 엄마 중에 (심지어 육아가 내 적성인가 싶을 정도인 엄마라도) 우울감을 단 한 번도 느끼지 않은 엄마가 과연 있을까. 또한 누구나 엄마가 처음이기에, 육아 방식에 문제가 있음에도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도 상당수일 것이다. 혹은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느끼더라도 자기 객관화가 되지 않은 상태로는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기 쉽지 않고 그렇게 방치된 문제는 아이에게 고스란히 스며든다.

  

 그간 육아를 경험해 본 엄마로서 정부나 정책 입안자들에게 하고 싶은 제안이 있다. 육아기 엄마들에게 최소 1~2회 정도만이라도 심리 삼당을 무료로, 의무적으로 게 하제도가 마련되었으면 한다. 심리 상담은 일반적으로 비용이 만만치 않아 육아 때문에 가계 수입이 축소된 가정에는 부담이 된다. 또한 여전히 우리 사회는 심리 상담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코로나19로 병원을 찾는 환자수가 대폭 줄어든 와중에도 정신과 환자는 늘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코로나 블루 때문도 있지만 마스크를 쓰고 있어 얼굴이 가려지니 정신과를 찾는데 대한 부담감이 줄어서라는 분석이 있다. 나라에서 모든 엄마에게 심리 상담을 의무화하면 누구든 당당하게, 부담 없이 갈 수 있게 된다.


 엄마의 심리를 살피는 제도가 필요한 이유는 엄마의 문제가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아이에게 전이된다는 데에 있다. 가정에서 건강하게 자라지 못한 아이가 사회에 나오면 어떻게 될까? 현재의 우리 사회를 둘러보자. 엄청난 혐오와 분노, 불안으로 들끓고 있다. 계층별, 세대별, 성별 등 표적마저 세분화해가며 엄청한 증오를 뿜어내고 있다. 아이를 가정에서 사랑으로 돌보고 건강하게 키워 사회에 내보내는 일은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라 생각한다. 때문에 아이의 심리, 나아가 엄마의 심리를 돌보는 것을 단순히 한 개인과 가정의 몫으로만 방치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 싶다.  


 매회마다 엄마들을 단숨에 울리는 유명 프로그램 ‘금쪽같은 내 새끼’를 나 역시 종종 본다. 방송의 내용은 일단 접어두고 자신의 잘못된 육아방식을 진단받고자, 내 안의 문제를 살피고자 어렵사리 카메라 앞에 선 엄마들의 용기가 사뭇 놀랍다.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비난의 손가락질을 받게 될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위해 흡사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심정으로 방송에 출연한 엄마들. 그간의 고민이 얼마나 깊었을까 싶다. 이렇게 불구덩이에 뛰어들 각오까지 안 하더라도 아이를 위할 수 있는 방법이 지천에 널려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24시간 아이를 위해 숨 쉴 틈 없이 움직이면서도 정작 자신의 마음 한 번 들여다보기 어려운 엄마들. 이들에게 

어떠한 불편 없이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다양하게 주어질 때, 진정으로 금쪽같이 건강한 우리 아이들이 세상에 차고 넘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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