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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쓸쓸 Oct 21. 2021

남성이 친밀성 영역에서 지각생인 이유

<현대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 읽기

최근 엠넷에서 두 개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다. <로드 투 킹덤>, 그리고 <굿걸>. 왕년의 오디션프로 덕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드문드문 두 프로그램을 본방 혹은 유튜브 클립으로 챙겨보았다.


<로드 투 킹덤>은 지난해 방영되었던 <퀸덤>의 남자 아이돌 버전으로, 남자 아이돌 7팀이 나와 경쟁하는 프로그램이다. 우승한 팀에게 <킹덤> 출전권을 부여하고 경연 꼴등은 탈락한다. 출연자들이 서로 친해지고 서로의 팀을 응원하는 과정이 호평을 받았던 <퀸덤>과 달리, <로드 투 킹덤>은 무대 연출 수준이 높았음에도, 출연자들 간의 ‘케미’가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출연자들의 인터뷰내용은 거의 비슷했다.


“꼭 1등 하고 싶습니다!!”


“떨어지고 싶지 않아요.”


출연자들의 케미가 1등 하고 싶다는 승부욕 싸움으로 대체된 것은, 이 프로의 경연 방식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프로그램 중반, 두 개의 그룹이 팀을 이루거나 각 팀별 메인보컬들이 무대를 꾸며 출연자간 친목을 부각하려는 시도는 있었으나, ‘1등 하고 싶어요’를 넘어서는 드라마는 나오지 못했다.


<굿걸>은 여자 힙합 뮤지션들이 출연해, 출연자들끼리 팀을 이뤄 외부인과 경쟁하는 시스템이다. 출연자들은 케미를 마음껏 뽐냈다. 소녀시대 효연은 자신과 한 팀이 된 페미니스트 랩퍼 슬릭에게, 슬릭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며 사과한다. 외설적인 퍼포먼스를 하는 랩퍼 퀸 와사비와 페미니스트 랩퍼 슬릭이 한 팀을 이룬 것에 사람들은 경악했지만, 둘은 보란 듯이 흥겨운 무대를 꾸민다. 무대 후 슬릭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정말 사람들이 말하듯 어떤 스펙트럼의 양 극단에 있는 사람일까. 물론 우리 둘은 엄청 다르기도 해. 나에게는 없는 너의 무한 긍정 에너지, 그리고 스스로를 귀여워하는 귀여움.”


두 프로그램에서 보여지는 출연자간 교감의 차이는, 프로그램 경연 방식에 기인하는 바가 크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로드 투 킹덤>의 시스템이 <굿걸>과 같았다고 할 때, 남자 출연자 중 누군가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서 미안해’, ‘우리는 누구보다 다르지만 같기도 해’라고 세심하게 말할 수 있을까.


<로드 투 킹덤>과 <굿걸>. 두 오디션 프로의 온도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남성과 여성의 관계 맺기 방식의 차이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유는 뭘까?

출처: 일간스포츠 https://news.joins.com/article/23785549


기든스는 <현대 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 7장에서 낸시 초도로우의 논지에 집중해 남녀 간 친밀성의 차이의 근원을 탐색한다. 프로이트의 ‘남근 선망’ 개념을 보완해 페미니즘과 정신분석의 만남을 시도한 노선들이 있는데, 기든스는 이중 이중 ‘대상-관계 학파’의 낸시 초도로우의 논지에 집중한다. 


지금과 같은 어머니 역할, 유아, 육아 등의 개념이 생긴 것은 근대 이후의 일이다. 근대에 이르러 아버지는 집 밖의 일터에서 일을 하고, 어머니는 집 안에서 육아와 가사를 담당하는 성별분업이 정착되며, 어머니의 역할도 중요해졌다. 동시에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어머니가 자녀에게 전능한 존재가 되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아들은 별개의 분리된 존재로 다루는 반면, 딸은 보다 나르시스적으로, 즉 자기 자신의 확장으로 대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양육방식의 차이에서 남아는 어머니로부터의 분리로 독립성을 쟁취하지만, 이로 인한 정서적 댓가를 치룬다. 여성에 대한 의존을 감추고 거부한 결과 감정적 자율성을 억압하고, 섹슈얼리티를 자아의 성찰적 서사와 결합하기 어려워져, 친밀성에 실패하는 것이다. 



남성의 친밀성 실패에 대해 남성의 입장에서 변호할 수 있다. 허브 골드버그는 말한다. 수많은 연구들에서 나타난 여성의 불만 - ‘남성들은 정서적으로 위축되어 있고 자신들의 감정에 둔감하다’ - 은 남성이 어깨에 짊어져야 하는 불행한 짐이라고. 남성은 생계책임자의 역할에 매여있어 감정이 둔감해지고 건강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설득력 있는 주장이지만, 기든스에 따르면 이는 여성이 생계책임자로 나서지 못하고, 자녀양육자나 가사전담자로 머무를 수 밖에 없도록 하는 사회적 경제적 제약 역시 강력하다는 점을 과소평가한 것. 


반면 여성의 입장에서 바바라 에렌라이히는 말한다. 남성이 가진 경제적 이점을 포기하지 않은 채 생계책임자에서 벗어나는 것이 문제라고. 그 결과는 경제적 독립이 요원한 여성이 남성이 내던진 책임까지 떠맡는 현실이라고. 기든스는 이 주장 역시 ‘남성=경제적 도구성’의 고리 해소가 헌신으로부터의 탈피가 아니라 새로운 헌신의 출발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1992년에 나온 이 책의 논의들에 2020년의 한국 상황이 현실감있게 오버랩된다. ‘남녀 간에 새로운 감정적 적대’가 심각해지는 가운데, 양성의 화합은 요원한 길인가. 친밀성 영역에서 ‘지각생’인 남성과 공적 영역에서 밀려난 대신 사적 영역에서 ‘친밀성의 전문가’가 된 여성은 함께 할 수 있을 것인가.



다시 <로드 투 킹덤>과 <굿걸>로 돌아와. <로드 투 킹덤>은 <퀸덤>의 후속편으로 후광효과를 노렸지만 시청률과 화제성 모두 낮았다. 반면 <굿걸>은 마찬가지로 시청률은 부진했으나 화제성과 호평을 얻었다. 친밀성에 대한 대중의 욕구를 <로드 투 킹덤>과 <굿걸>의 상반된 성적표에서 확인한다.


기든스는 사적 영역, 친밀성의 영역 속에서 순수한 관계, 합류적 사랑, 조형적 섹슈얼리티의 등장이 진정한 민주주의의 발현이 될 수 있다고 보았고, 이러한 친밀성의 혁명에서 (그동안 사적 영역에 유폐되어 친밀성을 계발해온) 여성들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굿걸’의 시대는 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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