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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쓸쓸 Oct 21. 2021

낭만적 사랑 대신 합류적 사랑이라구요?

<현대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 읽기 

"낭만적 사랑이란 여성의 정신을 무가치하고 불가능한 꿈으로 가득 채우기 위해 남성이 여성에게 가한 음모에 불과하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그런 시각은 낭만적 문학이 가진 호소력이라든가, 그것의 확산에서 여성들이 담당했던 크나큰 역할을 설명해내지 못한다. " 81쪽


블로그에 연재된 이웃의 연애담을 군침 흘리며 정독했다. 낭만적 사랑을 해부하는 책을 읽으면서, 낭만적 사랑 이야기에 열광하는 나의 아이러니. 나는 왜 연애담이 재미있을까? 남편과 다시 연애 시기로 돌아가고 싶은 것도, 다른 누군가와 연애를 하고 싶은 것도 아닌데. 


<현대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 3장은 낭만적 사랑의 전복적 특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든스는 낭만적 사랑을 열정적 사랑과 구분한다. 열정적 사랑이 ‘일상생활과 구별, 갈등하는 어떤 급박함’으로 특징지워진다면, 낭만적 사랑은 숭고한 사랑(‘신을 알기 위해 신에게 헌신하고 이 과정을 통해 자신에 대한 앎이 성취되는’)의 이상에 뿌리를 두고, 여기에 열정적 사랑의 요소를 합친 것이다.


낭만적 사랑의 특성을 (명료하게 서술되지 않았으나) 거칠게 해석해보면 다음과 같다.


친밀성. 낭만적 사랑은 그 기원에서부터 노골적인 섹슈얼리티가 아니라, 친밀성을 전제로 한다. ‘낭만적 사랑 자체가 어떤 정신적 커뮤니케이션, 즉 부족한 부분을 메꿔주는 성격을 띠는 영혼의 만남을 가정’(85쪽)한다. 


성찰성. 낭만적 사랑은 개인의 삶을 어떤 서사로 바라볼 것인가 관심을 기울이게 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낭만적 사랑은 개인의 삶에 어떤 서사의 관념을 도입하는데, 이것은 숭고한 사랑이 가진 성찰성을 근본적으로 확장한 형식이다’. (78쪽) 낭만적 사랑은 자꾸 질문을 던지게 한다. “나는 타자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가? 타자는 나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가? 우리의 느낌들은 장기적 관여를 지탱해줄 만큼 충분히 깊은가?”(85쪽)


초월성. 낭만적 사랑에는 어떤 사람에게 매달려 그 사람을 이상화하는 측면도 있지만, 둘의 미래, 혹은 두 사람이 지향하는 사회로서의 미래를 펼쳐보이는 면이 있다. 


능동성. 낭만적 사랑에도 타자에게 빨려들어가는 특성이 있지만, 이 특성은 ‘추구(quest)’라는 지향 안에서 통합된다. 추구는 능동적 특징을 지닌다.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남자의 닫힌 마음을 열고 그것을 누그러뜨리듯이. 


낭만적 사랑의 이런 속성은 사회적 통념에의 거부로 표현되기도 하고, 그래서 전복적 측면을 가진다. 그러나 낭만적 사랑이 가진 전복성은, 두 가지 측면에 의해 억눌려 왔다. 먼저 ‘사랑과 결혼과 모성의 결합’. 가족 안에서의 모성적 애정이 강조되면서 친밀성의 영역, 사랑의 영역이 여성들의 과업이 되어버렸다. 두 번째 ‘진실한 사랑이란 일단 발견되기만 하면 영원하다는 관념’. 결혼생활은 무조건 유지되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실제로는 빈약한 것이었고, 실제로 결혼을 지탱하는 건 성별분업 구조였다.



'낭만적 사랑'의 전복성이 억눌리 자리, 앤서니 기든스는 '합류적 사랑'이라는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낸다. 


‘합류적 사랑’이란 ‘각기 따로 흘러오던 두 개의 지류가 합쳐져 하나의 강물이 되어 흐르듯 두 사람의 정체성이 과거에는 각기 달랐음을 인정한 위에서 다가오는 미래의 시간을 향해 사랑의 유대를 공유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협상해 가는(108쪽) 사랑. 이 사랑에는 ‘사랑과 결혼과 모성의 결합’이 일어나지 않는다. 합류적 사랑과 비슷한 개념으로 사용한 ‘순수한 관계’, 즉 관계 내적인 속성에 따라 형성되고 유지되는 관계이지, 관계 외적인 가족제도 안에 종속되지 않는다


또한 ‘진실한 사랑이란 일단 발견되기만 하면 영원’한 것이 아니다. 사랑은 영원하지도 유일하지도 않으며, 사랑의 대상을 발견하는 것보다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그런 의미에서 인격적 자율성을 기초로 한 상호협상이 중요한 문제가 된다. 누군가의 일방적 헌신이 아니라, '상대에게 자기 관심과 욕구를 드러내고 서로에게 민감해질 준비가 되어있는 정도만큼 그만큼씩만 발전(109쪽)하는 관계다. 


한쪽은 주고 한쪽은 받기만 하는 관계, 서로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음에도 '아이 때문에',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헤어지지 못하는 관계, 그런 관계를 사랑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앤서니 기든스가 말하는 '합류적 사랑'은 차갑고 딱딱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결혼이라는 계약이 서로를 더 용인하고 이해하도록 안전망이 되어주기도 하지 않는가?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철저히 두 사람의 몫일 때, 두 사람이 감당해야 할 피로도는 어찌하란 말인가? 


그럼에도 대부분의 결혼 생활-특히 여성이 부부관계 안에서 대부분의 감정, 돌봄 노동을 전담하며 겪는 감정적 소진의 문제-에서 필요한 것은 '네가 내게 민감하지 않다면, 나도 이 관계를 끝낼 수 있어' 라는 긴장감일지도 모른다.  결국 기든스가 낭만적 사랑을 대체할 새로운 개념을 만든 것은, 결혼, 가족제도 안에 종속된 낭만적 사랑에서 사랑만 건져올리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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