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 읽기
<페미니즘의 도전>, 정희진 지음, 교양인, 2005
엘리자베트 벡 게른스하임의 <모성애의 발명>을 읽으며 느낀 희열을 기억한다. 그 희열은 '모성애가 허위였구나'라는 단순한 깨달음에서가 아니라, 어떤 사회 현상이 명암을 동시에 품고 있다는 것, 게른스하임의 표현에 따르면 ‘둘다 진실의 한 단면을 담고 있다’는 것에서 왔다. 자유, 인권과 같은 근대적 가치들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불러오고, 그러면서도 한줄기 길을 만드는 것을 지켜보며 탄식과 경탄이 동시에 일었다.
감정사회학자 에바 일루즈의 전작에서 발견하게 되는 매력 역시 그런 것이었다. 일루즈는 자유, 평등, 소통, 치료학 등 우리를 둘러싼 가치들이 작동하는 방식을 집요하리만큼 샅샅이 파헤친다. <감정 자본주의>에서 그는 심리학과 자아실현 내러티브가 유행하면서 감정 생활이 지식화되는 것, 페미니즘이 확산되면서 정서적 관계가 합리화되는 것, 위계질서 대신 인정과 소통이 사회관계의 모델로 자리잡는 것들에 모두 '근대적 합리성의 양면, 곧 정치적 권리를 증진하는 면과 시장 합리성에 종속되는 면'(<감정자본주의> 옮긴이 후기, 229쪽)이 동시에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양가성 앞에서, 나는 당연하다 여겼던 것들에서 '이런 모순과 허위가 있었어?' 하고 놀라고, 그러면서도 '그거 다 허위고 허상이야' 라고는 말할 수 없는 공간을 발견했다.
복잡한 것은 복잡하게 이야기하기. 사회학 공부를 하며 얻은 소박한 깨달음이다. 어떤 가치의 양면성을 분리해 바라보면서도, 양 측면을 동시에 바라보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 ‘더 근원적인 원인’을 찾으려 하지 말고, 복잡한 현실의 혼란 속에 머물며, 대립되는 양면을 함께 살피는 것. <페미니즘의 도전>의 정희진식으로 말하면, '여성에게 섹스와 모성은 자원이자 억압'(147쪽)이며, '가부장제 안에서 여성의 역할은 수호자, 피해자, 수혜자, 부역자, 저항자'로 다양하다는 것, '성은 본질적으로 억압적이거나 동일한 방식으로 억압적인 것이 아니'(234쪽)라는 것을 아는 것.
그러나이런 과정은 복잡하고 어렵고 힘겹다. 혼란과 분열을 이기지 못하고 외면하거나, 다른 목소리를 쉽게 타자화하는 일이 생기는 것은 그래서다. '주적을 규탄 타도하기보다는 문제가 전개되는 맥락에 대해 사유할 때, 문제가 구성되는 과정에 개입할 때, 자기 성장을 피하기 위해 타자를 찾는 일을 포기할 때, 다른 상상력을 가질 때'(35쪽)라야 비로소 문제를 찾을 수 있다 믿으며, 공부를 지속하는 수 밖에.
밑줄 치고 요약하며 책을 읽어도 책의 내용은 금방 잊혀질 것이다. 다만 어떤 현상에는 명과 암이 동시에 있음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자세, 나의 시선이 사회와 시장의 자장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인지하면서도 집요한 해석 전략을 계발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자세가 내 삶에 남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