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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쓸쓸 Oct 23. 2021

공부한다는 것의 고통과 쾌락에 대하여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 읽기

<페미니즘의 도전>, 정희진 지음, 교양인, 2005


사회학일지, 페미니즘일지, 그 사이를 오고가는 공부를 시작한지도 일년이 넘었다. 공부는 고통스러웠다. 잠을 줄이고 머리를 쥐어짜내어 어려운 책을 읽고 해독하는 과정이 아니라, 기혼 유자녀 여성으로서 현대의 낭만적 사랑을 새롭게/삐딱하게 인식하는 과정이 그랬다. '무지로 인해 보호받아온 자신의 삶에 대한 부끄러움, 사회에 대한 분노, 소통의 절망 때문에 상처받을 수 밖에 없는 일'(23쪽)이 시시때때로 찾아왔다.


더 괴로운 것은 남편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나를 발견하는 일이었다. 책을 읽다가 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은 이런 것이었다. '페미니즘의 '페'만 들어도 괜히 기분 나쁘고 후려치고 싶은 감정적 충동을 느끼는 남성들'(87쪽)의 한명인 그가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내가 읽는 책을 어떻게 평가할까. 공부를 지지해주는 남편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안도'하기도 했다.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 나의 언어를 갖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건 나 자신이라는 걸, 내가 주체가 아니라 남편(남성)의 눈으로 바라보는 타자라는 걸, 이보다 실감한 순간은 없었다.


프란츠 파농이 온 몸을 떨면서 간파했듯이, 흑인은 백인의 타자이며 동시에 흑인의 타자이다. 여성의 타자 역시 여성이 아니라면 이미 가부장제 사회가 아닐 것이다. 정치학자 권혁범의 표현대로, "페미니즘의 '페'만 들어도 괜히 기분 나쁘고 후려치고 싶은 감정적 충동을 느끼는 남성들"이나 나를 포함하여 자기 언어를 갖는 것에 대해 스스로 놀라는(자랑스러워서가 아니라 불안해서) 여성들 모두 가부장제 사회의 산물이다. 87쪽


공부를 계속해온 것은 그 방향이 옳다고 믿어서가 아니다. 언젠가부터 나는 정치적 올바름, 사회적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감, 종교인으로서 가졌던 사명감을 삶의 동력으로 삼기를 그만두었다. 공부를 하는 것은 고통스러웠지만, 고통보다 쾌락이 늘 조금 더 앞섰다.


쾌락이 아니라면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어려운 책을 나의 힘으로 완독했다는 뿌듯함과 성취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공부는 내가 사회와 무관한 주체가 아니라, '성별, 계급, 지역, 나이 등 각 개인이 담지한 복합적인 사회적 위치와 상황으로부터 발생하는 고통'(35쪽)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드러내고, 그 고통을 박멸하거나 극복할 방법은 없다고 몰아세웠다. 동시에 공부는 내가 처한 그 현실을 '주변적 현실'(36쪽)로 인정하도록 도왔다.


모성이 본능이 아니라 정치학이라는 것-모성에 대한 많은 책에서 읽었던 이 말을 정희진은 이렇게 정의한다. '모성은 어머니와 자녀의 관계를 설명하는 말이 아니다, 모성은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의미한다.'(63쪽)-, 현대의 사랑이 어렵고 까다로워지는 것은 개별 존재, 특히 여성의 탓이 아니라는 것, 현대의 치유 문화가 자아의 모순을 바라보기보다는 자아를 강화한다는 것, 자아가 핵가족을 기원으로 한다는 개념이 절대적 진리는 아니라는 것을 알아가며, 나와 나를 둘러싼 환경을 재정의해갔다. 나를 둘러싼 환경은 더이상 절대적, 불변적이지 않았다. 나라는 존재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를 이루어왔던 것들을 새롭게 바라보는 순간, 나의 '사고 역시 편파적이며 더구나 강자의 경험을 보편과 객관으로 믿어왔다는 사실'(43쪽)에 충격을 받으면서, 나를 다른 세계로 이동시키는 그 순간은 행복했다.


나는 깨달음이 주는 상처와 고통에 몸서리치면서도, 매번 대가를 지불하는 쪽을 결정했다. 그러나 안다. 쾌락이 커질수록 상처와 고통 역시 커진다는 걸. 기존의 지배규범과 상식에 도전하는 이 앎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나는 알지 못한다. 확실한 것 하나는 깨달음이라는 오르가즘, 나를 개방하고 재구성해가는 해방감, 다양하고 무수한 참고 문헌이 나 자신을 새롭게 만드는 기쁨을 알아버렸다는 것이다.


나의 존재를 누구/무엇과의 관계로부터 설명할 것인가, 그 범주를 어떻게 변화시켜 나가면서 기존의 억압적인 삶의 양식을 재생산하지 않을 수 있을까가 인생의 가장 근원적인 의제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내 인생의 참고문헌이 다양하고 무수할 때 자신을 확장할 수 있으며, 동일성의 폭력인 이 광포한 '신자유주의' 파도에 덜 휘둘리며 생존할 수 있다. 나는 페미니즘이 우리 자신을 나날이 새롭게 만드는 매력적인 참고 문헌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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