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 일루즈의 <사랑은 왜 아픈가> 읽기
사랑의 사회학을 공부하며 로맨스 드라마를 보는 경험은 새로웠다. 마치 이론으로 중무장해 필드에 뛰어드는 기분이랄까! (매우 거만) <로맨스가 필요해 2012>를 본 후 후기를 남기자, 학인들이 말했다.
"또 오해영, 그 드라마가 진짜 관계기피증 남자 나오는 드라만데.."
그래? 이번엔 <또 오해영>이다! <또 오해영>에는 에바 일루즈의 사랑의 사회학 책을 읽으며 확인했던, 여성의 섹슈얼리티 평가절하, 관계를 기피하는 남성 등의 문제가 현실적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로맨스가 필요해 2012>가 그랬듯, 이 드라마의 관계기피증 남성 역시 답답한 행보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 밖에 없는 사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오해영(서현진)은 요식업계 대기업에서 일하는 32살 여성이다. 오해영은 승진에서 미끄러지고, 외모도 변변찮고, 사랑에도 실패한 '평범녀'로 그려진다. 그러나 오해영에게는 불행한 가족의 서사가 없다. 오해영의 부모는 오해영의 학창 시절, 갓 지은 밥이 맛있다며 점심 시간에 맞춰 도시락을 배달해주는 열혈 부모였고, (과한 간섭과 개입으로 눈쌀을 찌뿌리게도 하지만) 오해영이 사랑에 실패할 때마다 든든한 위로자이자 지원군이 되어준다.
평범하지만 단란한 가정에서 사랑 받으며 자란 오해영의 일상은 왜 팍팍하기만 한 걸까?
오해영의 불행 서사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동명이인 오해영(전혜빈, 이하 예쁜 오해영)의 존재다. 오해영은 고등학교 같은 반이면서, 자신보다 이쁘고 공부도 잘하는 오해영으로 인해 학창시절을 주눅 들어 보냈다. 오해영의 같은 반 남자아이들은 오해영과 예쁜 오해영을 비교하며 끊임없이 오해영을 무시했다. 예쁜 오해영과의 악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예쁜 오해영이 오해영이 일하는 회사에 들어오게 된 것.
고등학교 때와 똑같은 장면이 펼쳐진다. 남자직원들이 예쁜 오해영에게 잘보이고 싶어서 안달이 나고, 오해영을 예쁜 오해영과 비교하며 무시하고 조롱하는... 5화, 오해영 회사의 회식 자리에서 남자 상사는 외친다.
"못생긴 애들 좀 나와봐. (예쁜) 오해영 팀장이랑 비교되잖아!!"
세상에. 이 회사 사람들은 어쩜 이렇게 무례한가? 이런 장면이 코믹하게 그려질 일인가? 하지만 이 드라마는 젊은 여성이 겪는 일상을 극적으로 그려낸 것뿐이다.
감정사회학자 에바 일루즈는 <사랑은 왜 끝나나>에서 여성의 몸이 평가절하되는 현상을 분석한다. 일루즈는 여성의 몸이 소비자본주의에 포획된 시기를, 성해방과 피임약의 발명이 맞물린 1970년대 이후로 본다. 여성의 몸을 대상으로 하는 엄청난 규모의 시장이 생겨나며, '남성의 눈으로 자신의 몸을 바라보고, 자신의 몸을 어떻게 연출하느냐'가 여성에게 점점 중요해졌다. 소비 자본주의는 성적 매력을 자랑하는 몸을 생산해 과시하는 노동을 하도록 여성을 내몬다. 문제는 이 노동의 혹독함만이 아니라, 여성의 몸에 대한 평가가 필연적으로 '평가절하'를 불러온다는 데 있다.
평가는 유일화라는 능력을 소멸시키고 대체 가능성을 확대한다. 섹슈얼리티 평가는 비교, 벤치마킹, 평가절하라는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가치가 소멸될 위험을 만든다. 게다가, 남성의 섹슈얼리티는 경제적, 사회적 지위와 관련이 깊기에 나이의 타격을 크게 받지 않지만,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젊음'이 가장 큰 변수다. 여성의 섹슈얼리티 자체가 가변적이고 불안정한 탓에, 여성은 노화하는 몸과 싸우며 자기 관리를 해도, 자신의 상징적 가치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에 시달린다.
여성의 몸을 두고 빈정대는 굴욕적인 농담, 살짝 뚱뚱한 여성에게 안기는 모멸감, 동년배나 연상의 여성 폄하하기, 노골적으로 젊은 여성 편애하기, 몸매로 여성의 순위 매기기, 데이트 강간, 무차별적 성적 파트너 축적을 통한 지위 탐색, 미모와 날씬함을 기준으로 삼는 가치 위계질서 따위는 여성의 몸과 자아를 평가절하하는 남성의 아주 널리 퍼진 판에 박힌 전략이다. (<사랑은 왜 끝나나>, 206쪽)
좋은 가정에서 사랑 받고 자랐어도, 여성의 섹슈얼리티 평가절하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오해영은 그저 동명이인이 지독하게 예뻤고, 그 동명이인과 지독하게 얽혔다는 점에서 좀더 드라마틱한 상황이 펼쳐졌을 뿐.
<또 오해영> 1화는 오해영의 약혼남 한태진(이재윤)이 결혼식 전날 오해영에게 갑작스레 이별을 통보하며 시작된다. 한태진은 이별의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네가 밥 먹는 모습도 꼴보기 싫어졌어."
자신의 섹슈얼리티는 물론, 함께 한 시간마저 부정하는 듯한 이 말은 오해영에게 심각한 상처를 남긴다. (특가로 사서 환불도 안되는 혼수 냉장고와 예물로 받은 가방과 옷, 부모와 친척들, 회사 사람들, 지인들의 구박과 쑥덕거림도 함께 남았다.) 사실 한태진이 이렇게 모진 말을 하고 떠난 것에는, 무리하게 자금을 끌어다쓰던 사업이 갑작스레 망하면서 교도소에 수감될 수 밖에 없었던 사연이 있다. 왜 그는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오해영에게 거짓말을 했을까?
한태진은 교도소에서 풀려나와 오해영을 찾아간다.
"내가 감옥 간다고 했으면 너는 틀림없이 기다린다고 했을 거고, 나 언제 나올지 기약 없었어. 그렇게 떠나는 게 맞았어."
그러나 오해영은 말한다.
"나도 알아. 그 사람(=한태진) 나보다 자기 자존심이 더 중요한 사람이라는 거."
에바 일루즈는 <사랑은 왜 끝나나>에서 사랑의 본질적 갈등을 '자율성과 결합 간의 긴장'으로 설명한다. 자율성에의 욕구와 결합에의 욕구는 개인 내에서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남성과 여성 사이의 갈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근대 이후 자본주의 노동 영역과 가정 영역이 분리되며, 자율성은 남성성을 표시하는 것으로, 결합은 여성성을 표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왔다. 남성은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서 말하듯 주기적으로 동굴을 필요로 하는 존재여서가 아니라, 자본주의 안에서 '타인의 목표와 관심으로부터 분리된 목표와 관심의 충실한 추구'(<사랑은 왜 끝나나>, 355쪽)가 자율성의 핵심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결합에의 욕구를 자율성의 위협으로 받아들인다. 이유를 말하지 않고 배우자를 그냥 떠나는 이유 역시, 자기 욕구에 대한 의견을 말하는 것조차 취약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남성은 번거로운 감정적 협상을 벌이느니 배우자를 떠나는 편을 택한다. 자기 욕구를 표현하는 ‘의견’은 문화적으로 취약성을 드러내고 자아와 자율성을 위협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사랑은 왜 끝나나>, 357쪽
한태진은 자신의 행동이 오해영을 배려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나, 본질적으로는 결합에의 욕구, 상대방의 감정을 무시하고, 남성으로서 자신의 자율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남성의 자율성'은 오해영에게 큰 상처를 남기고 만다.
한태진이 갑작스럽게 결혼식 전날 수감된 것은, 사실 박도경(에릭)의 복수의 결과다. 예쁜 오해영이 자신과의 결혼식 당일 떠나버리자, 박도경(에릭)은 예쁜 오해영에 대한 배신감과 상처로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러다 오해영이 다시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 상대가 한태진이라는 것을 알자, 자신의 인맥을 이용해 한태진의 사업을 망하게 한 것. 문제는 그 오해영이 예쁜 오해영이 아니었다는 사실.
자신의 복수가 자신의 옆집에 사는 동명이인 오해영에게 잘못 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박도경은 어떻게 했을까.1번,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다. 2번, 모른 체 한다. 박도경은 오해영을 모른 체 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인연을 끊어내려 한다. 더 큰 문제는 이미 오해영이 자신에게 관심과 호감을 표하는 상황이라는 것. 박도경은 오해영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을 뿐 아니라, 그녀를 피하는 것에 모든 에너지를 쓴다.
오해영은 박도경의 이런 모습을 '감정 불구'라고 표현한다. 박도경이 이렇게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투르고 자신에게 호감을 표하는 여성에게 거리 두기를 하는 이유는 그의 성장배경 탓으로 그려진다. 불우한 가정 탓에 속마음을 삭히며 살아왔다 블라블라.... 여주에게 거리두기를 하는 로맨스 드라마의 남주들에게는 사연이 있다. 유전병(<로맨스가 필요해 2012>의 남주 이진욱)이든, 동명이인으로 인해 복수가 꼬였든, 이 사연들을 깊이 파고들면 성장 배경의 아픔이 있다. 그들은 결합에의 욕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서툴 뿐이며, 여주를 만나 성장하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그러나 현실의 많은 남성들에게 거리두기의 사연이란 없다. 혹은 크고 작은 사연을 품고 있을지라도, 온전히 내면의 문제라고만 할 수 없다. 에바 일루즈는 <사랑은 왜 아픈가>에서 박도경의 '감정 불구'를 사회 구조적으로 해석한다. 관계와 섹슈얼리티가 분리되며, 과거에 비해 훨씬 많은 성적 자유를 누리는 오늘날, 남성들은 관계를 맺는 대신 감정을 섞지 않은 섹스를 통해 권위와 자율성을 만끽한다고. 반면 여성에게 결혼은 여전히 경제적, 사회적 안정을 주는 선택지이고, 결혼과 임신을 염두에 두는 한, 여성은 가임기가 끝날 지도 모른다는 무거운 시간의 압박에 시달린다고. 감정적 거리두기에 능하게 된 남성과 시간적 제약에 시달리는 여성의 결과는, 심각한 감정적 불평등이다.
이 감정적 불평등을 오해영은 직진 작전으로 돌파한다. 오해영은 '아낌 없이 줘버리자. 인생에 한번쯤은 그런 사랑 해봐야하지 않겠어'라고 다짐하며, 박도경에게 자신의 마음을 숨김없이 표현한다. 그러나 여성이 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더 앞뒤 재지 않고 다가가면, 남성의 거리두기는 극복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런 여성의 노오오오력 뒤에 남는 것은, 원하는 남성과의 행복한 연애나 결혼이기보다, '저는 쪽팔리지 않습니다'는 말을 반복하며 명상에 몰두해야 하는 오해영의 밤(7화)일 가능성이 크다.
사실 오해영과 박도경을 포함해, <또 오해영>의 거의 모든 인물들은 기묘함 투성이다. 감정을 여과없이 분출하거나, 감정을 참다가 엉뚱한 방향으로 표출하고, 상대에게 상처가 될만한 말들을 서슴지 않으며(오해영은 40대 여자 이사에게 "이사님, 우리 띠동갑이에요. 제가 이사님보다 백배는 예쁘고 백배는 날씬하고 백배는 남자를 더 만났을걸요" 라고 말하며, 자신이 수없이 당했던 외모 평가절하를 다른 여성에게 돌려준다), 폭력적이고 무례하다(박도경은 오해영을 예쁜 오해영으로 착각하고 오해영에게 쌍욕을 날린 자신의 동생을 응징할 뿐, 오해영에게 사과하지 않는다. 예쁜 오해영에 대한 분노로 오해영이 탄 차 유리창을 주먹으로 박살낸다 등등).
그러나 <또 오해영>의 기묘함은 더 근본적으로는, 여성의 외모로 끊임없이 비교, 평가절하하는 사회, 남성이 지키고자 했던 자율성 때문에 결합에의 욕구가 깨져버린 여성, 자신의 잘못을 회피하고자 감정적 거리두기를 시전하는 남성, 그런 남성과의 연애를 자신의 노오오력과 각종 치유 요법으로 돌파하고자 하는 여성의 분투 등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점에서 온다. 이런 점에서 <또 오해영>은 로맨스 드라마와 하이퍼리얼리즘 드라마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