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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 May 02. 2023

인도에서 생긴 일(25)

혼자만 아는 이야기

기억이 흐릿한 유년시절을 제외하곤 NN 년 동안 헤어스타일을 바꿔본 적이 없다. 늘 겨드랑이 즈음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를 고수해 왔다. 특별한 이유나 신념이 있어서는 아니다. 그냥 그 정도가 관리하기 젤 쉽고 무난한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지난 사진을 꺼내 봐도 현재의 모습과 별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옷도 마찬가지다. 무채색 계열의 단정하고 편한 옷을 선호하기에 옷장을 열면 겨울엔 검정색이나 회색, 여름엔 흰색이나 회색 옷으로 가득하다. 봄이나 가을엔 기분 좀 내보겠다고 가끔 베이지색이나 네이비로 옷장을 채우곤 한다. 어쩌다 버건디 계열의 옷을 살 때도 있지만 결국 외출을 나설 땐 어느 틈엔가 검정색 점퍼를 걸쳐 입는다. 


이렇듯 변화를 그다지 즐기지 않기에 내 삶은 그리 큰 위기 없이 무탈하고 무난했다. 어찌 보면 단조로운 일상이었지만 그 자체로 충분히 만족스럽게 살아왔다. 평범한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 여기며 다소 심심하지만 파고 없는 삶을 지향해 왔다. 때문에 선택도 늘 과감하지 못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망설이다 결국 늘 해왔던 것, 좋아하는 식당에 신 메뉴가 나왔어도 늘 먹던 것,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도 멀찍이서 바라보다 누군가 먼저 다가와 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나도 같은 마음을 가져보려 노력하는 쪽으로 내 감정을 타협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이제까지 진짜 사랑이라 느낄 만큼 짜릿한 만남을 가져본 적이 없다. 물론 편안하고 잔잔한 사이로 지낸 적은 있었다. 분명 이성적으로 좋아했었고, 손을 잡을 때 설레기도 했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 보고 싶어 죽겠고, 없으면 못살겠고, 헤어지고 울고불고하는 감정의 파도를 느껴본 적은 없었다. 내 연애는 항상 흐지부지 끝났고 대개 시작도 하지 못한 채 막을 내리기가 부지기수였다.


모두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한 결과다. 그래서 후회는 없다. 하지만 멀리 타국에 홀로 외따로 떨어져 지내며 많은 이들을 만나보니 부럽다는 생각을 참 많이도 했더라. 


전역 후 첫 만남을 인도배낭여행으로 택한 쏘영이네 커플의 낭만도, 사춘기 아들과 배낭여행을 감행한 중년 여인의 용기도, 짝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여행길을 택한 희정의 불타는 사랑도 모두 내가 가져보지 못한 것이었다.


나를 부러워하는 이도 있을까. 내 인생 가장 큰 일탈이자 기록할 만한 업적은 홀로 인도배낭여행을 떠나온 것뿐. 여행의 낭만 보다 지금 이 순간 씁쓸한 자괴감으로 속이 쓰린 여정을 보내고 있는 나를 부러워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람볼 상점가 골목의 어느 작은 미용실에서 인도부부가 내 머리를 땋는 동안 스쳐 지나갔던 생각들이다. 고작 헤어스타일 하나 바꾼다고 이런 상념에 젖는 인간이라니. 확실히 나는 소심하고 통이 작다. 하지만 그럼 어떠랴. 그게 나인 것을. 그리고 이제부턴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살 것이다. 


세 시간쯤 흘렀을까. 드디어 머리가 완성됐다. 하얀색 색실을 엮어 땋은 머리칼을 한 데로 모아 올려보니 제법 히피 느낌이 났다. 머리카락을 너무 당겨서 땋는 바람에 이마는 훤히 드러나고 눈도 어째 조금 째진 것처럼 느껴졌지만 그 모습마저 마음에 들었다. 나 같지 않은 나를 거울에 비춰보며 흐뭇한 미소를 흘렸다.


인도부부가 내 머리를 땋는 동안 조용히 그 앞에 앉아 색실을 만지작거리며 홀로 놀던 6살 꼬마 여자아이는 완성된 내 머리를 보자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려줬다. 참을성 있게 엄마아빠를 기다려준 아이가 기특하기도 했고, 조그마한 엄지손가락에 헤벌쭉 기분이 좋아져 코코넛 열매 다섯 개쯤은 사 먹을 수 있는 돈을 팁으로 건네줬다. 


내 머리를 땋아주던 자야라는 이름의 아이 엄마는 머리를 완성하자마자 해먹에 뉘어 놓은 갓난쟁이 아이에게로 가서 젖을 물렸다. 머리를 하는 내내 어찌나 울어대는지 안쓰러울 정도였다. 아이에게 가보라 해도 해먹을 세게 흔들었다 놓았다만 반복할 뿐 먹고사는 일에서 손을 놓지 못했었다. 


아기는 엄마의 젖을 물자마자 울음을 뚝 그치고 가열하게 밥을 먹었다. 그 사이 미용실의 사장님이자 자야의 남편이 내 잔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고 몇 가닥 남은 머리카락이 있었던지 포인트로 빨간 색실을 엮어 마무리를 해주었다. 그리곤 빨간 색실을 엮은 머리카락으로 전체 머리를 한 데 모아 묶어주었다. 


아기는 어느새 맘마를 배불리 먹었는지 해먹 위에서 시원하게 볼일을 봤다. 이런 모습도 인도 길거리에서 흔히 봤던 풍경이다. 기저귀 값을 아끼려는 것인지 밑에는 아무것도 입히지 않고 얇은 천을 덮어준 채로 해먹 밑으로 그냥 볼일을 보게 놔둔다. 해먹 사이로 소변이 줄줄 흐르고 그 밑은 노란 자국이 선명할 정도로 눌어붙어 있지만 누구 하나 문제 삼지 않는다. 


처음엔 가여웠다. 비위생적이고 궁핍한 환경에서 스스로 치열하게 살아남아야 하는 이곳의 아이들을 보며 부모의 무능함에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도 선택해서 사는 삶이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타고난 것. 어려서 가난한 건 죄가 아니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가난한 건 죄라는 말 때문에 누구보다 열심히 일 해왔던 나이지만 죄라는 범주 안에 드는 가난의 범위는 너무나 천차만별이어서 함부로 규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의 가난을 죄라고 생각했기에 분노했지만 내겐 그럴 자격이 없었다. 그들은 누구보다 먹고사는데 진심이었다. 해먹 위에 갓난아이를 뉘어 놓고 우는 아이를 달랠 겨를도 없이 손놀림을 멈추지 않아야 하루, 한 달, 일 년을 밥을 굶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단야밧. 나마스떼!”


나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작별인사를 하고 미용실을 나섰다. 길거리 기념품 상점에 놓인 작은 거울들에 내 모습이 언뜻 비칠 때마다 깜짝 놀랄 만큼 낯선 모습이지만 이제 곧 익숙해질 것이다. 내가 인도에 적응한 것처럼.


태어나서 처음 시도해 보는 과감한 변신에 기분이 한껏 좋아져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아람볼 해변을 거닐었다. 해변가 모래가 신발 안에 들이차도 괜찮았다. 그저 다시 털어서 신으면 그만이었다. 또 들어오면 또 털어내면 되니까. 이런 것쯤은 이제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아람볼 해변은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평화로웠다. 터번으로 두르던 천을 길게 펼치고 그 위에 드러누워 광합성을 하는 사람들과 시원한 차림으로 공놀이를 하는 가족들, 콜라 한 병을 모래에 묻어두고 책을 읽으며 이따금씩 콜라를 홀짝이는 노년 부부의 모습은 행복 그 자체였다.


나도 그들 틈에 파고들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파도가 일렁이는 모양을 멍 때리고 바라보다 어슬렁어슬렁 지나가는 소 꼬리에 집중했다가 초점 없는 눈빛으로 신발 위에 올라온 모래알이 몇 개인지 세어보았다. 그렇게 한참이나 의미 없지만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슬슬 배가 고파졌다. 정오쯤 예약해 둔 레스토랑이 그제야 생각났다. 시계를 가지고 다니지 않았으므로 시간을 알 수 없었기에 멀찍이 앉아있는 브론즈 헤어의 남자에게 몇 시냐고 물었다. 오후 6시 45분. 다행히 늦지 않았다. 랍스터와 파스타를 예약해 둔 T레스토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T레스토랑은 이미 만석이었다. 예약을 해둔 덕에 내 자리는 비워져 있었다. 이름을 말하고 자리에 앉아 음식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생각보다 훨씬 더 배가 고픈 상태였기에 무엇이라도 다 먹어치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잠시 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랍스터 두 마리와 해산물 파스타가 등장했다. 서빙직원이 매너 좋게도 먹기 좋게 랍스터를 해체해 줬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약간의 팁을 주고 본격적인 식사에 돌입했다. 언뜻 보기에 2~3인분은 되어 보일만큼 꽤 많은 양이었지만 그간의 설움을 음식으로 풀기라도 작정한 것처럼 마구 흡입하기 시작했다.


멀리서 누군가 날 지켜보고 있다면 아마 먹방을 업으로 삼는 푸드파이터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그 순간 난 먹는 행위 자체에 몰입하고 있었다. 아람볼 해변에서 먹는 랍스터 맛은 설명으로는 한계가 있을 만큼 맛있었다. 이 순간을 함께 기억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사무치게 아쉬운 순간이었다. 


혼자 밥 먹는 것을 즐기고, 혼자 여행하는 것에 설렘을 느낄 만큼 혼자인 것에 익숙한 삶이었는데, 이토록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공유할 누군가가 없다는 것이 서글퍼졌다. 


훗날 이 순간을 누군가에게 맛깔나게 묘사하며 설명한다 해도 지금 이 순간 온몸을 감싸는 아람볼의 끈적한 습도와 따스한 바람, 더워죽지 않을 만큼의 적당히 더운 온도, 버석거리는 발밑 감촉, 입안에서 짠내와 함께 바다향이 머무는 랍스터의 달달한 끝맛은 결코 완벽하게 전달되지 않을 것이다.


포크로 기다란 파스타 면을 돌돌 말면서 유리잔에 맺힌 이슬이 스르륵 흐르는 것을 바라봤다. 한동안 넋을 놓고 면을 휘감은 바람에 포크에는 한 뭉텅이의 파스타가 말려있었다. 입에 잘 들어가지도 않을 정도로 크게 말은 파스타를 꾸역꾸역 먹어 삼켰다. 


이상하게도 입을 오물오물거릴수록 눈물이 밀려 나왔다. 코에서는 자연스레 콧물이 흘렀다. 코를 훌쩍 들이마시며 눈물을 참으려 애썼다. 큼큼 괜히 목을 한 번 가다듬고는 랍스터 꼬리를 뜯어 입에 넣었다. 그리고 또 열심히 저작운동을 시작했다. 놀라울 정도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여전히 눈물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왜... 나는...’


나는 포크를 접시에 내려놓고 그대로 얼굴을 감싸 쥐며 그 자리에서 엉엉 울어버렸다. 어느덧 석양이 걷히고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이슬이 흘러내린 유리잔으로 레게머리를 땋은 낯선 여자가 처량 맞게 울고 있는 모습이 비쳤다. 내 인생에서 가장 서러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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