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디이 Nov 01. 2023

마담X, 파리 인플루엔서와 신인 화가의 만남

상류층을 줄 세우기 한 초상화계 슈퍼스타, 존 싱어 사전트 (1)

"I suppose it is the best thing I have ever done." 사전트가 1916년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마담 X>를 판매하며 적었던 편지에 있는 말입니다. 화가 본인도 사랑했으며 그의 상징적인 대표작이 된 그림이지만, 모델이면서 실존 인물인 마담 X에게는 인생 최악의 선택이 되었습니다. 어떤 사연과 비밀이 숨어있을까요?


 

내가 아직까지도 사전트의 그림을 찾아다니게 될 것이라고, 10여 년 전 그 친구는 짐작이나 했을까요?

 


카테이션, 릴리, 릴리, 로즈와 영화감독 지망생

 

    어떻게 사전트라는 화가를 알게 되었냐고? 잠시 시계를 돌려,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대학교 2학년 때쯤이었을 거야. 무려 그때의 트위터에서 서로 알음알음 알게 된 사람들이 있었어. 그 덕에 연극 관람을 같이 하는 동호회스러운 모임에 속하게 되었지. 다들 각양각색의 배경과 나이, 직업을 가진 으른들이었고, 내 또래는 몇 없었어. 모두 예술과 연극 관람에 관심이 있었다는 것 말고는, 구성원들 사이에 별다른 공통점도 없었던 것 같아.

 

그 친구는 나보다 어렸음에도 이미 예술적 소양이 상당했습니다.

 

동년배들 중 영화감독이 꿈이며, 관련 과를 전공하고 있는 친구가 있었어. 그 친구의 안내로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지금은 없어진 낙원상가 위 극장으로 종종 옛날 예술 영화들을 보러 다니곤 했지. 어느 날 그 친구는 나에게 어떤 그림 이미지를 보여주었는데, 여자와 남자가 같이 강을 바라보는 뒷모습을 그린 유화였어.



John Singer Sargent's Carnation, Lily, Lily, Rose  (1885–6) in Tate Britain, England

왠지 기억에 남았던 탓에, 나중에 이 화가의 이름을 검색해 봤어. 그러다 <카네이션, 릴리, 릴리, 로즈>라는 그림을 발견했지. 꿈꾸는 듯한 분위기와 부드러운 색감은 내 취향을 저격했어. 그래서 <카네이션, 릴리, 릴리, 로즈>가 프린트된 휴대폰 케이스를 따로 주문해서 쓸 정도였어. 색이 살짝 바랜 그 케이스는 아직도 가지고 있어. 내 그림 취향은 한결같아서, 당시에도 강렬한 원색보다는 아기자기한 색감을 좋아했거든.


아직까지 <카네이션, 릴리, 릴리, 로즈>를 직접 본 적은 없어. 2016년도 런던의 테이트 브리튼에 이 그림을 보러 방문했을 때 (테이트 모던과는 다른 장소에 위치), 하필이면 이 작품만 전시하고 있지 않았거든. 정말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너무 아쉽지만, 나중에 런던에 다시 방문할 이유를 남겨뒀다고 생각해.

 

하지만, 오늘 내가 조곤조곤 말해주고 싶은 건 이 그림을 그린 화가, 존 싱어 사전트 (John Singer Sargent) 하면 떠오르는 제일 유명한 그림의 주인공, 마담 X에 관한 알려지지 않은 비하인드 스토리야.

 


   

먼저, 사전트에게는 천국을, 한 여성에게는 지옥을 가져다준 <마담 X>에 얽힌 이야기부터 풀어볼까요?

 

John Singer Sargent's Madame X (1884) in Metropolitan Museum, U.S.

    이 그림은 내가 멧에 갈 때마다 꼭 보는 작품이야.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걸려있는 사전트의 대표작, <마담 X>은 최고의 논란작임과 동시에 이제는 상징적인 명작이 되었어. 몇 번을 보아도 언제나 아름답고 모델의 묘한 우아함이 느껴져. 사전트가 <마담 X>에 거창한 테크닉이나 대담한 색을 쓴 건 아니야. 동화 같은 분위기의 <카네이션, 릴리, 릴리, 로즈>와 비교하면 오히려 차분하지. 그럼에도 분위기 자체가 되게 매혹적이라고 할까?

  

하지만, 발표 당시엔 드레스끈이 흘러내린 모습이 외설적이며 너무나도 하얀 모델의 피부색이 시체 같다는 혹평이 쏟아졌습니다.

존 싱어 사전트가 그렸던 오리지널 버전의 <마담 X>

오리지널 <마담 X>를 보면, 아슬아슬하게 팔에 걸쳐진 어깨 끈, 금방이라도 옷이 떨어져 내릴 것 같지. 이 오리지널 버전이 1884년 국가에서 주최한 파리의 살롱전에서 공개되자, 평론가와 대중 모두 엄청난 비난을 쏟아냈어. 예술 평론가인 페어브라더 (Trevor J. Fairbrother)에 따르면, 관객들에게는 '오만한 표정과 하얀 피부가 너무 짙은 입술, 지나치게 붉어진 귀와 대비되는 어딘가 불쾌하고 위태로운 인상을 풍기는 이미지'가 눈에 띄었을 것이라고 해. 우리 눈에는 이상해 보이지 않지만, 당시 초상화 양식의 기준인 부드럽고 아름답게 여성을 표현한 그림에서 벗어나 있었나 봐.


신인 화가였던 사전트는 유명인사의 압력을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게다가, 19세기 중후반 프랑스 아카데믹 초상화계를 이끌었던 거장 무슈 부그로 (M. Bouguereau; William-Adolphe Bouguereau)가 나서서 사전트에게 한마디 했다고 해.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초상화를 그리는 관행"은 가족의 안위에 영향을 미치고 풍기문란과 같은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이야. 무슈 부그로는 프랑스의 유명 미술 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 (the École des Beaux-Arts) 출신이자 너무나도 유명한 초상화가였어. 충격받은 사전트는 전시회가 끝난 후 바로 스트랩을 고쳐 그렸고, 20년 동안이나 본인의 스튜디오에 그림을 감추고 아무도 보여주지 않았다고 해.



사전트는 발표 이전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역풍을 어느 정도 예측한 것으로 보여. 그래서 일부러 모델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마담 X>라는 제목으로 발표했지. 그래도, 사람들은 <마담 X>가 파리의 사교계 대표 미인인 마담 피에르 고트로라는 것을 추측해 냈어. 때문에 화가인 사전트와 마담 X의 염문설까지 나며 둘의 사이는 의심받기 시작했지. 마담 피에르 고트로는 이미 결혼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젊은 신인 화가와 유부녀에 대한 소문은 말 많은 파리 사람들 사이에서 흥미로운 가십거리가 되기에 충분했어.


하지만 사전트는 흘러내린 스트랩은 모델이 입은 옷 그대로를 그린 것이라며, 본인의 잘못이 아님을 강조하고 냉정하게 선을 그었어. 논란의 중심에서 발을 빼고 마담 피에르 고트로에게 화살을 돌렸어. 마담 피에르 고트로의 인기에 빨대를 꽂았다가 단물이 나오지 않으니 내팽개 쳐 버린 거지. 비겁하게.




그렇게 파리를 떠난 사전트는 영국에서 초상화가로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됩니다.


    앞서 소개한 <카네이션, 릴리, 릴리, 로즈>도, 사전트가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그린 그림이야. 19세기말, 사진이 대중화되기 이전이었고, 프랑스에서 예술이 꽃피우던 낭만주의 시대를 지나 영국이 주가 되는 20세기 초 20년 간의 에드워드 시대 (Edwardian period)에 들어서며 모든 타이밍이 사전트에게 유리했어.


사전트의 초상화는 당시 1-2억 원일 정도로 비싼 가격이었는데도, 사람들은 열광했어. 사전트의 초상화는 본인의 자산을 자랑하고 싶은 미국과 유럽의 상류사회가 가장 소유하고 싶은 작품이 되었어. 사전트는 로마 시대의 카메오 (Cameo)와 같이 인물을 고전적이며 아름답게 그렸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전트가 그려준 본인이나 가족의 초상화를 갖고 싶어 했지. 하지만, 나중에 사전트는 초상화 의뢰가 들어와도 본인이 꽂히는 인물 만을 그렸다고 하니 얼마나 콧대가 높았는지 알겠지.


사전트가 그린 상류층 인사들의 초상화, 붉은 색과 푸른색을 자연스럽게 조화시키는 독보적인 색감과 고전적인 분위기는 그만의 화풍을 만들어냈다


이와 같이, <마담 X>를 발표한 후 바로 피난 가듯 도망친 영국에서 오히려 큰 성공을 얻고 성공가도를 달리게 된 사전트와 달리, 모델이었던 마담 피에르 고트로는 구설수로 인해 파리 소셜라이트 (Socialite)로서의 인기가 사그라들게 돼.

 



실존 인물인 마담 X, 프랑스판 사랑과 전쟁의 그녀는 과연 누구일까요?

 

    프랑스 사교계 유명인사였던 마담 피에르 고트로 (Madame Pierre Gauteau)의 본명은 아멜리 버지니야. 결혼 후, 그녀의 남편인 피에르 고트로의 부인임을 뜻하는 마담 피에르 고트로라 불렸어. 아멜리와 사전트는 둘 다 미국인이고 파리에서 성공을 꿈꿨다는 공통점을 제외하면, 그 둘이 만났을 때의 위치는 다소 달랐어. 아멜리는 이미 그녀의 아름다움과 매력으로 주목을 받고 프랑스 살롱의 사교계가 기다리는 유명인사였지만, 사전트는 이제 막 공부를 마치고 파리에서의 작품 활동을 위해 노력하는 신인 작가였어.


 

사교계 명사 아멜리에게 사전트는 19번이나 모델이 되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아멜리의 아름다움에 매혹당한 사전트는 진작부터 그녀가 본인 그림의 모델이 되어주길 원하고 있었어. 사전트는 아주 전략적인 사람이며 야먕이 넘쳤지. 많은 예술가들이 그랬듯, 파리 소셜라이트들 사이에서 명성을 날리고 예술가로 성공하고자 파리로 왔지. 본인이 파리에 완전히 속하지 못한다고 느끼면서도 이너 서클로 들어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어.

 

그런 사전트는 특히 아멜리를 모델로 섭외하고자 인맥을 총동원했어. 지인에게 아멜리와 다리를 놔달라며 보낸 편지를 보면, 그가 얼마나 절실했는지를 알 수 있어. 마치 핫한 연예인과 작업을 하고 싶어 하는 사진작가와도 같은 심정이었을 거야.

I have a great desire to paint her portrait and have reason to think she would allow it and is waiting for someone to propose this homage to her beauty. If you are 'bien avec elle' and will see her in Paris, you might tell her I am a man of prodigious talent.

"나는 마담 피에르 고트로의 초상화를 그리고 싶은 강한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난 그녀가 나의 모델 제의를 허락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누군가가 그녀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나와 같은 짙은 경의를 표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그녀와 친분이 있고 파리에서 그녀를 만나게 되면, 그녀에게 내가 엄청난 재능을 가진 화가라는 것을 말해주길 바랍니다.”


이렇게까지 사전트가 안달복달한 데에는 이유가 있어. 아멜리는 사전트뿐 아니라 다른 예술가들도 그리고 싶어 한 존재감을 지녔거든. 그런데 <마담 X> 이후로, 그녀의 명성은 하락하게 돼. 정말 그림 하나 때문에 인기를 모조리 잃게 된 걸까?


파리의 대표적인 사교계 인사가 되기 위한 아멜리의 전략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녀의 몰락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이었을까요?


매주 수요일, 무조건 당신만 모르는 명작

다음 내용은 “아멜리, 그녀만의 것이 아니었던 인생”으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nerdie109th/46





무조건 당신만 모르는 명작의 덕질 노트


낭만주의 시대, Romantic era (1810-1920)

    본인의 작품을 하는 예술가라는 현대적 개념은 낭만주의 시대에 확립되었습니다. 사실 중세시대부터 지원이 필요한 예술가들에게 후원자 (Patron)라 불리는 귀족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이 역할은 산업혁명이 일어난 1850년대 이후, 어떤 가문이 아닌 유럽의 부르주아인 개인들이 대체하게 됩니다. 사전트가 <마담 X>를 전시한 파리의 살롱전 역시 나폴레옹이 예술가를 귀족으로부터 독립시키고 국가의 예술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정책적 전략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술가들은 개인 사업자처럼 본인의 작품을 선보이고 판매할 수 있는 경제적 자율성을 얻었지만 작품 활동에도 자본이 필요하기 때문에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이런 예술가와 후원자 사이의 관계는 현재까지도 아주 오래도록 이어지게 됩니다. 다만 사전트의 경우와 같이 예술가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참고 문헌

Davis, Deborah. Strapless: John singer Sargent and the fall of Madame X. Penguin, 2004.

조영규. 미국의 인상주의 거장화가, 존 싱어 사전트. 아트월드. 2015.

https://library.brown.edu/cds/paris/finearts.html

https://www.metmuseum.org/blogs/now-at-the-met/2016/how-madame-x-came-to-the-met

https://www.themorgan.org/exhibitions/john-singer-sargent

https://www.nytimes.com/1981/02/01/arts/art-view-the-case-of-madame-s-shoulder-strap.html

https://www.mfa.org/exhibition/fashioned-by-sargent#paragraph--124836



아틀리에에서 <마담 X>와 함께 서있는 사전트, 본인이 아멜리아의 인생에 미치게 될 영향을 알고 있었을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