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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지엥 Sep 14. 2021

코로나 이후 다시 프랑스 -역사

갈리아(옛 프랑스) 정복자 카이사르가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였다고?

   로마의 위대한 정치가이자 장군이었던 카이사르가 작가였다고? 그것도 베스트셀러 작가였다고 하면 십중팔구는 의아해 할 것이다. 베스트셀러 작가라 하면 소설이나 수필 등등의 책을 쓰고, 그 책이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어서 엄청난 판매를 기록한 작가들에게 붙이는 호칭이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그 카이사르가 베스트셀러 작가였다고? 그러나 역사적 사실은 카이사르는 분명히 책, 그것도 갈리아 정복에 관한 생생한 책을 썼고 그 책이 분명히 많은 로마 사람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는 사실이다. 

   고대 프랑스 영토인 갈리아 정복의 사명을 받고 로마에서 출정했던 장군 카이사르는 최종적으로 알레시아 전투에서 대승리를 거두면서 갈리아 정복을 완수했다.  기원전 58년부터 시작된 7년 전쟁을 이끌던 카이사르는 정복 전쟁 틈틈이 당시의 생생한 기록을 글로 써서 남겼고 나중에는 이것을 책으로 만들어 로마 시민들에게도 보냈다. 즉 갈리아 정복을 위해서 선봉에 섰던 카이사르는 갈리아와의 전쟁에 관한 보고서이자 기록을 일 년에 한 권씩 써서 본국으로 보냈고 나중에는 총 7권의 기록을 모아서 <갈리아 전쟁기>라는 이름으로 책을 내게 됐던 것이다. 카이사르가 직접 쓴 <갈리아 전쟁기>는 1권부터 6권까지 모두 중요하고 결정적인 전투와 승리에 대한 이야기를 썼고, 가장 유명하고 핵심적인 전투로 갈리아를 완전 정복했던 '알레시아 전투'는 제7권에 기록했다. 

   로마의 카이사르가 갈리아 정복전쟁을 겪으면서 전쟁 상황에 대한 기록이자 보고서이자 책을 썼다면, 우리나라 역사에도 이와 비슷한 최고의 장군이 있었고 그가 전쟁 상황을 기록한 책도 있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기>와 비슷한 성격의 책으로는 우리 역사에서는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었던 영웅 이순신 장군이 쓴 <난중일기>를 꼽을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이 직접 쓴  <난중일기>와 카이사르가 직접 작성했던 <갈리아 전쟁기>는 두 책 모두 전쟁의 최선봉에 있었던 리더들이 작성했다는 공통점과 갈리아 정복과 임진왜란 모두 7년이라는 시간 동안 벌어졌다는 공통점도 있다. 

   <갈리아 전쟁기>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본다면, 카이사르는 기원전 58년에서 52년 까지 7년 동안 자신이 직접 갈리아에서 벌였던 갈리아와의 전투에 관한 생생한 기록을 남겼다. 그곳에서 벌어진 치열했던 전투와 정복 상황 그리고 자신이 펼쳤던 군사적 전략과 전투기술에 관한 이야기들을 실감나게 적었던 것이다. 카이사르가 당시 치열했던 전쟁에 관한 모든 것들을 실감나게 적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이 전투의 한복판에서 치열하게 싸웠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전쟁에 관한 실감나는 기록이었던 갈리아 전쟁기는 전쟁을 직접 수행한 최고 사령관이 실제 작전 상황과 전쟁 수행 과정을 자세히 기록했다는 점에서 매우 희귀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또한 이 전쟁기는 최고의 전쟁 회고록이자 보고문학의 정수이며 라틴 문학의 걸작이라는 후대의 평가를 받기도 한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기>는 로마에서 책으로 나오자마자 당연히 모든 로마인들의 찬사를 받으면서 지금으로 치면 단숨에 로마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게 됐다. 모든 전쟁상황을 직접 기획했고, 모든 작전을 수행했으며 모든 전투에 목숨을 걸고 직접 싸웠던 사람이 쓴 실전 전쟁기였기에 일반적인 전쟁 소설과는 질적으로 다른 책이었던 것이다. 

   <갈리아 전쟁기>를 통해서 로마인들은 평소 궁금했던 갈리아 정복전쟁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물론이고 평소 막연히 생각했던 브리타니아(영국)에 대한 정보까지 얻었으며 특히 세계를 지배하는 위대한 로마인이라는 엄청난 자부심을 고취할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인해서 당시 <갈리아 전쟁기>는 특히 로마의 젊은 계층에서 가장 좋아하는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카이사르는 왜 <프랑스 전쟁기>가 아닌 <갈리아 전쟁기>라는 이름을 자신의 책에 붙였을까? 간단한 이유는 지금의 프랑스 지역이 고대 시대에는 '갈리아(프랑스어로는 골)'라고 불렸는데 당시 로마인들이 특히 이런 이름으로 불렀기 때문이었다.  즉 고대부터 지금의 프랑스 영토에 살던 토착 원주민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몰아낸 부족이 바로 지금 프랑스인들의 조상인 켈트족이었고, 이들이 살던 지역을 갈리아라고 불렀다고 것이다. 이 지역은 기원전 58년부터 카이사르에 의해 로마의 속주가 되면서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됐고 갈리아 지역에는 자연스럽게 로마의 다양한 문화가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생긴 문화가 갈리아와 로마를 합친 용어인 ‘갈로 로망Gallo-Romaine’문화였다. 또한 켈트족들에게 보급되어 사용되던 라틴어는 후에 프랑스어의 모태가 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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