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김윤철

"이런 때 아니면 못 본다." "걸을 수 있을 때 자주 봐야지."

"그래도 단톡방 덕에 이렇게라도 만나니 좋다."

오늘은 동기 녀석이 사위를 보는 날이다. 길에서 만나면 그냥 지나칠 사이들 아니 과거였다면 만날 수도 없는 친구들이다. 디지털 세상 덕에 이모작 인생들의 삶이 조금은 풍요로워졌다는 생각이다.


더구나 나는 40년 가까이 살아온 시골을 떠나 자식들 학교 때문에 이사 온 수도권. 이마저 없었다면 많이 외로웠을 거란 생각. 따라서 동기들 길흉사는 비교적 챙기는 편이다. 오늘은 축하하는 날. 축하주 한 잔씩하고 그새 얼굴 익힌 친구들과 다시 2 차행. 당연히 녀석도 함께다. 고교 시절부터 술 좋아하기로 소문난 녀석. 그 엄한 녀석의 아버지도 휴일 전에 술 한 잔 정도는 눈을 감아준 모양이다. 나 역시 술자리라면 빼는 법이 없는 사람이다. 나이들이 있어 모두 몸을 사리는 자리에도 나는 오랜만이라며 녀석과 기분 좀 내 봤다. 알딸딸 한 중에도 계산은 내가 했다.


그리고 며칠 뒤 녀석의 전화를 받았다. "약속 지켜라." “무슨 약속?” 그제야 생각이 난다. 미수역이 교통 중심지가 된다는 말과 함께 같이 가보자는 약속. 그래서 지금 녀석을 만나러 지하철을 타고 가고 있는 것이다. 끊어지는 기억 속에 녀석과 나눈 대화. “서울은 만원이다.” 기억조차 아스레한 영화 제목. 생활 중심권이 이동하고 있다는 말.

“서울서 1시간 거리에 지하철이 다니고 있다. Ktx만 개통되면 잡는 순간 돈이다.”

“야! 환갑 넘은 나이다.”

“나이 들수록 돈이 있어야 된다.”

“촌놈 서울 온 지 얼마나 댄다고 돈이 있나?”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 녀석의 말!

“인마! 너 미필이냐? 주워들으면 첩보다. 네가 걸러내면 정보다.”

“같이 보고 네가 결정하면 된다.”

최전방에서 고생한 나를 기죽게 만드는 녀석의 말. 어디 특수부대 출신 같지만 듣도 보도 못한 한자어로 된 병명으로 육방마저 피한 신의 아들이다. 덩치 큰 녀석들과 화장실에서 담배나 피우며 으스대던 어리숙한 녀석의 서울 물 먹은 만큼 늘어난 말솜씨에 지금 미수역으로 가고 있다. 하긴 맨 정신으로 하기엔 낯 간지러운 소리지만 그런 유치한 말들이 친구들 사이엔 더 와 닿는 면도 있다. 어슴프레한 기억 속에 생각나는 녀석의 말. 네게만 알려준다는 듯 귀에 대고 하던 말.

"근처에 첨단 산업 단지 들어선다는 말도 있다!"

지하철이 무슨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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