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멎고 어르신 한 분이 내 옆자리에 앉으신다. 미수역까지 몇 정거장이나 남았는지 내리는 사람도 타는 사람도 몇 명 되지 않는다. 이 분 특이하게 폰 대신 종이 신문을 펼치신다. 머리에 얹은 베레모는 예술가의 멋보다 세월을 감추려는 용도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옛 생각하며 신문을 기웃거리니 수영복 입은 여배우가 있는 스포츠 면을 찾던 우리 때와 달리 정치면을 열심히 읽으신다. 유튜브보다는 종이 신문 보는 분들이 그나마 지성인에 더 가깝다는 내 생각.
미수역 3번 출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그녀석도 디지털을 유난히 싫어했다. 폰 대신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무가지를 들고 다니며 하는 말.
“우리는 20세기를 훨씬 오래 산 세대댜. 수시로 지울 수 있는 디지털은 믿을 게 못 된다.”
그리고는 신문에 났다는 말을 수시로 해댄다. 내가 보기엔 분명 능력 부족인데 묘하게도 설득력이 있다. 무능력이 주장과 기 막히게 어울어지는 녀석의 삶이다.
"그기 신문이가?" 무가지와 다른 논조의 신문 얘기를 하면 돌아오는 녀석의 대답이다. 녀석의 말마따나 쓸데 없는 것은 버리고 정보만 모으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 기준점이 특이하다. 모든게 자기 위주다. 사람은 자기 본위 로 생각하는 동물이다. 그래도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야한다고 주장하면 친구가 없어진다. 녀석도 친구들 사이에서 겉돈다는 느낌이다. 부동산 보러 다닌다지만 딱히 친구들 손해 끼쳤다는 이야기는 없다. 그런대도 좋은 평보다는 나쁜 말이 더 많다. 부동산은 투기라는 생각 탓일까? 그래서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나를 챙기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 지하철도 더덤거리는 나의 도시 생활은 누군가의 챙김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사 후 다른 친구들 보다 많이 만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전대 대신 메고 있는 폰과 지갑 메모장 등이 들어 있는 작은 가방에 신경이 쓰인다.
아내는 이제는 집에서도 계좌 이체 등 은행 일을 곧잘 한다.
"은행 가면 노인네들 밖에 없다." 아내는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도 많이 고쳤다.
인터넷도 직장에서 컴퓨터 교육 몇 번 다녀온 나 보다 생활 속의 사용은 아내가 훨씬 더 잘 한다.
"돈 넣어 놨다. 저녁 당신이 계산해라." "녀석이 산다 캤다."
"쓸대 없는 소리 마라. 더 이상 신경 쓰게 만들면 못 산다. 이사도 내 혼자 다 했다."
부부 동반 가능한 연말 모임에서 아내도 녀석의 부동산 소식을 들은 모양이다.
"능력은 안 되는대 욕심만 많은 남자가 여자 제일 고생 시킨다."
시골서 서울 근교까지 월급 몇 푼 던져 주고 내 몰라라 하는 남편 덕에 고생만한 아내다. 그래 걱정 없다.
아내의 고생이 녀석의 말솜씨보다 몇 배는 더 크게 생각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