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명재천

by 김윤철

종점이 가까워지는데도 지하철은 여전히 만원이다. 차가 멎으니 다리에 깁스를 한 노인 한 분만 하차를 한다. 타는 사람이 없는 걸 보니 아주 작은 도시인 것 같다. 초행길인 나는 도시 이름도 잘 모른다. 아마 서울 병원에 치료차 다녀오는 분이신 듯.


전 번 동기들 모임에서 들은 소식. 나이들이 있어서 그런지 술은 거의 마시지 않고 대화의 주제도 건강에 관한 것이 많다. 이름도 기억이 없는 친구의 건강 소식 한토막.

"글마 진짜 운 좋은 놈이다."

"다리 안 다쳤으면 죽었다."

"살 운이라 그때 넘어졌다."

"요즘은 시골 병원도 암 수술 잘하는 모양이다."


전화위복에 새옹지마? 요즘 유행인 조깅을 하다 다리를 다친 동기의 이야기다. 다친 고관절 검진을 하다 전립선 암을 찾아냈다는 소식이다. 당시에는 의대 정원에 의한 의정 갈등으로 의사들이 환자 손을 놓고 있던 시절. 암은 큰 병이지만 서울의 유명 병원을 잡지 못해 서울 근교에서 유명하다는 곳에서 수술. 지금은 취미 동호회 모임인 산악회 행사에도 참석하고 있다는 말이다. 운? 사람의 생명을 운이란 한 단어로 정리할 수 있을까? 세상 일은 우연이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필연이다. 운이 좋아 다리를 다친 게 아니고 넘어졌기에 살아난 것이다.


"실겅아! 우리 실겅이 못 봤나?" 간절한 실겅이 어머님의 목소리.

실겅이란 이름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이 없는 동네 친구다. 실겅이!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실겅은 선반의 사투리다. 학교 출석부에 기록된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초등학교 같은 학년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단 몹시 귀한 아들!


위의 둘을 여의고 셋째로 태어난 실겅이. 그 어머니께서 들었던 집안 어른들의 말씀.

"무슨 노무 여자가 아도 하나 못 키우나?" 그런 시대였다. 생기는 대로 낳아 살아남는 놈만 키운다.

귀한 자식 험하게 키운다고 갓난아기를 선반 위에 올려놓았단다. 그래서 지어진 험한 이름 실겅이.

물론 실겅이의 의미는 어른들께 들은 것이겠지.


사람의 생명은 운이란 단어로 말할 수 없는 귀한 것이다. 하늘에 달린 사람의 목숨!

나 역시 몇 개의 우연을 거쳐 새롭게 태어나 이렇게 미수역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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