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말도 잘 못하는 아이 앞에서 남편과 큰 다툼이 있었던 그날, 가장 힘들던 건 그 순간 마음 둘 곳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남편과 다투게 될 때면 어김없이 내 집이 내 집 같지 않다. 그와 나의 다정함으로 만들어낸 공간에 다정함이 사라지면 그 곳은 그냥 차가운 콘트리트 안이었다. 만년동에서 관평동에서 비실하게 혼자 자취하던 시절 그 좁아터지고 눅눅한 집도 내 집이기에 어느때라도 내게 안온했건만.
친정은 멀고 아기는 어리고 전화너머 엄마의 위로는 부족했다.
친절한 지인들은 많았지만 눈물을 보일 정도의 사이는 아니었다.
간절히 생각나는 몇 안되는 친구들은 모두 먼 곳에 있었다.
그날 내게 위로가 된 건, 우습지만, 의외지만, 지역 맘카페의 댓글들이었다. 핸드폰을 손에 쥐고 외로워서 어쩔 줄 모르는 내 손이 황망히 두드린 ‘맘을 좀 쉬려면 어딜 가야 할까요’ 라는 상황 설명도 없는 짧은 글에 달린 얼굴도 모르는 이들의 댓글. 무조건 커피죠. 맛있고 비싼걸로 드세요. 추모공원 가서 한바퀴 걸으세요. 움직여야 오히려 숨 쉬어져요. 생면부지의 타인의 짧은 글에 띠링띠링 실시간으로 달리는 댓글들에 따라 맛 좋은 커피를 일단 한 잔 테이크아웃해 공원을 한바퀴 걸었다. 그날 처음 가 본 운전 15분 거리 그 추모공원은 왜 이런곳을 여태 몰랐나 싶게 너무 좋았다. 산을 빙 두른 공원의 둘레길을 내려와 초입 벤치에 앉아 좋아하는, 이미 한번 읽은 단편소설집을 탄식하며 읽었다. (어쩜 이렇게 글을 잘쓰는지.) 인터넷 사주를 보는 것도 기분전환이라는 말에 주차장을 서성이며 경상도 말투의 역술가 아저씨와 20분 통화를 하고 만원을 지불 했다. 그러고도 그 남의 집 같은 내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 평소 남편이 싫어해 먹을 기회가 없던 잔치국수도 한 그릇 먹었다. 쇼핑이요. 생필품 이런거 사지 말구요 님 좋아하는거, 사고 싶던거, 단 천원짜리라도 그런걸로 사세요. 화장품 편집샵에 들어가 생전 잘 안하는 색조 테스터도 해보고, 립스틱 하나를 사 가방에 넣었다. 혼술 한잔 하세요. 일터(집)에서 먹지 마시구 맛있는 안주 여러개 시켜서 혼자 드시다가 배부르면 다 남기고 오세요. 이제 막 장사를 하려고 문을 걷어올린 투다리에 들어가 김치우동과 꼬치를 종류별로 시켜놓고 인생 첫 집밖 혼술도 했다. 맥주 500cc가 종일 밖을 서성이며 건조하게 갈라져 있던 식도를 시원하게 적셨다. 뭐 미드라도, 아니 먹방 유튜브라도 틀고 술친구 할까 했는데 결국 내 어린 아가의 아장아장 하는 동영상을 틀어놓고 혼자 헤실헤실 거린다. 그날 그 세줄도 안되는 짧은글에서 한 아기엄마의 벼락같은 심정을 읽고 소중한 한 줄을 달아준 그대들, 복있으라.
그렇게 들어온 그곳 내 집에는, 너무나 기다렸다는 듯 침을 졸졸 흘리며 엄마를 반기는 내 아가가 더 이쁠 수 없게 웃어주었다. 그리고 저 뒤에 샐쭉하니 아기 빨래 개고 있는 남편도.
그래.. 엄마 힘 내고 왔어. 힘 조금 났어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