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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Feb 13. 2017

나에게 '긍정'을 강요하지 마세요


'뭐든 좋게 생각해. 아니면 너만 힘들어져'

'니 심정은 알겠는데.. 그래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지..'

'그래, 마음을 좋게 가지면 안 될 일도 된다잖아 !'


스무살 남짓한 시절에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시대 탓에 씁쓸해진 유행어가 되어 버리긴 했지만 '정말 간절히 바라면 전 우주가 나서서 도와주는지', 그런 일이 실제로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지 하늘에 대고서라도 묻고 싶었다.

그 땐 누구나처럼 내게도 파란 두근거림이 있었기에 어쩌면 그 말들을 믿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긍정의 힘' 



두려움과 걱정에 떨고 있는 이에게는 용기가 되어주고, 지친이에겐 어깨를 토닥여줄 수 있는 친구가 되어주고, 절망과 좌절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겐 희망이란 이름으로 다가오는 그것. 우리는 저마다 나름대로의 '긍정'을 정의하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런 '긍정의 힘'은 나이를 한 두 살 더 먹어갈 수록 느슨해졌다. '희망' 뒤에는 '고문'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리겠다 싶었다. 좋게 생각한다고 해서 그다지 나아질 것이 없었던 과거의 경험들이 쌓여가면서 내 나름의 가치관은 조금씩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제 아무리 좋은 마음을 가지고 부단한 노력을 한다고 해도 벌어질 일은 벌어졌다. 그물에 걸린 사냥감처럼 이리저리 몸을 뒤흔들며 출구를 찾아도 결국 누군가의 먹이가 되는 일도 잦았다. 몇 해 전 한 TV 토크쇼에 출연했던 어느 코미디언의 말이 생각났다. 



저는 항상 '최선'이 아닌 '최악'을 생각해요. 

뭔가를 결정해야 할 때, 제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순간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부터 고민해요. 여지껏 한 순간도 편하게 긍정적인 마음을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 동안 TV 토크쇼를 통해 들었던 말 중에 가장 와닿는 말이었다. 

누군가 내게 희망을 던져주고서 그저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만 달렸다고 이야기하는 게 미치도록 싫었다. 그러다 결과가 나쁘면 모든 건 내 노력 부족으로 귀결되는 엔딩도 싫었다. 뭔가를 후련하게 포기하고 내려놓고 싶은 타이밍에도 다시 한 번 해보라며 부추기는 그 '희망'이 싫었다. 

제 아무리 좋은 마음을 가지고 노력해도 벌어질 일은 벌어졌다.



학창시절 꽤 독실한 종교인이었던 친구와 결코 가볍지 않은 언쟁을 벌인 적이 있었다. 



- 왜 사람들은 쉽게 포기할까? 그 문턱만 넘으면 행복이 있을지 모르는데 말야.

- 앞이 안보이니 그렇겠지. 조금 더 간다고 해서 길이 나오는 게 아닐 수 있으니.. 무서우니까.

- 그럴수록 '길이 있다'고 믿어야지. 

- 믿는다고 뭐가 달라지니. 

- 달라지지.

- 뭐가?

- 모든 게. 믿음이 있으면 더 좋은 마음을 가지게 되고 그러면 더 노력하게 되고 그럼 결과도 달라지지.

- 그럼 '이건 도저히 안 되겠다'는 믿음을 가지고 깔끔하게 내려놓으면?

- 말장난 하지마.

- 말장난 아니야. 진심으로 궁금해서 그래.

- 뭐든 부정적으로 생각해서 좋을 게 없어. 그럴 수록 좋은 마음가짐을 가져야지.

- 난 아무 기대 안하고 있다가 차라리 기대 이상의 결과가 나오는 게 더 맘이 편해.

- 넌 니 인생에 그렇게 확신이 없니?

- 뭐?



언쟁의 끝이 어떤 모양새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대신 나에게 '긍정의 힘'을 강조하는 그 친구의 태도는 꽤나 강압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내 태도도 그리 고분고분하지는 않았겠지.)

그 때 처음으로 알았다. 긍정을 강요하는 것도 때론 누군가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물론 긍정적인 태도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다. '할 수 있다'를 되뇌이던 운동 선수가 금메달을 따는 장면이나 '마지막 순간까지도 희망을 놓치 않았어요'라는 흙수저들의 성공담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긍정의 힘'이 모두에게 같은 크기와 밀도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상대방이 어떤 처지에 놓여있는지 어떤 생각으로 살고 있는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툭하고 던지는 한 마디는 오히려 생채기를 더 붉게 만들 수도 있다. 

혼자 방에 틀어 박혀 세상 슬픔을 다 짊어지고 있을 때, 방문 넘어로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라고 말하던 엄마의 목소리가 야속했던 건 괜한 투정은 아니었다. 대신 누군가 나에게 '힘들 땐 실컷 힘들어 해. 굳이 힘을 내지 않아도 돼. 잠깐 그 자리에 앉아서 쉬고 있어.' 라고 말해주길 바래서였던 건 아닐까. 

긍정을 강요하는 것이 때론 누군가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



행복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이야기 한다. 좋은 생각, 긍정적인 태도가 삶을 바꾼다고. 

부정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 전에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데, 그렇게 슬퍼만 하고 있기엔 우리 인생은 너무 짧아'라는 식의 조언은 할 때도 받을 때도 한 번쯤 생각해보면 좋겠다. 

내가 상대에게 들이미는 그 '긍정의 힘'이 누군가에게는 또 하나의 버거운 과제가 될 수 있음을 말이다. 


한 광고인은 새해가 되면 '올해는 좋은 일만 가득하세요'라며 보내오는 후배들의 문자가 그렇게 탐탁지 않다고 한다. 그 때마다 '어떻게 사람 인생에 좋은 일만 가득할 수 있니'라며 굳이 까칠한 답장을 한단다. 

인생 왜 그리 삐딱하게 사냐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어렴풋 하게나마 그 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무뎌진 손톱으로 현실을 바득바득 기어가면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란 말을 되뇌이기 보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감정을 오롯하게 느끼고 그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한 건 아닐까.

그 과정에서 쉼표가 필요하면 당연히 쉬어줘야 하는 거고. 




illustration by Sara Herra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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