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두달살이를 위한 준비
드디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발리 한달살이가 끝났다. ‘드디어’라는 단어로 문장을 시작하니 마치 끝나기를 기다렸던 것 같이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전혀 아니다. 어제 오후 2시쯤 이면 집에 도착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화요일에 스미냑 비치의 파도에 젖었던 딸의 휴대폰 관련 여기저기 다니는 일정이 추가되는 바람에 집에 오후 5시에야 들어올 수 있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공항버스 안에서 꾸벅꾸벅 졸기는 했지만 쪽잠이어서 그랬는지 오후 2시가 넘어가자(누워서 자고 일어난 지 약 30시간 경과) 눈은 뜨고 몸은 서 있지만 뭔가 영혼이 빠져나간 것 같은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삼성서비스센터에서 수리기사가 딸의 휴대폰의 상태를 설명할 때나 SKT 매장에서 요금제를 설명할 때 도통 내용이 입력이 안 되고 그저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내 뇌를 지배하는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곧 생일이어서 겸사겸사 남편이 갤럭시의 z플립을 사줘 신도 났고 비행기 안에서 꽤나 숙면을 취해 컨디션도 괜찮은 딸은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한 달은 너무 짧았어, 다음엔 2달!” 하며 철없는 소리를 해댔다. 뭐 나도 마음으로야 2달 아니 3달, 1년, 2년, 평생도 외국에서 살라면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목요일 낮에 코로나 음성이 나온 후 나는 재빠르게 일 모드로 전환을 시작했다. 발리에 한달 있기 위해 기존에 하던 일은 잠시 ‘얼음’해 놓은 상태인데 그것을 다시 ‘땡’하고 푸는 작업을 시작했다. 내가 속한 팀의 팀장님, 그리고 내 일을 대신 해준 팀원, 감사하게도 한달 동안 나를 기다려준 학부모님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다시 시작할 수업 일정을 하나둘씩 캘린더에 채워 넣고, 업무 관련 시스템 상에 처리를 하면서 다시 예전처럼 일을 할 몸과 마음의 준비를 시작했다.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현실적인 대답은 돈을 벌기 위해서일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그럼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대답에서 나는 어쩌면 남들과는 조금은 다를 수 있는데, 나는 이번처럼 이렇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이다.
어제 일어난 지 거의 36시간이 경과되어 갈 시간에 발리로 가기 전 미리 신청해놓은 온라인 강좌(금요일 저녁 7:30-9:30, ⌜나 홀로 출판, 시작 그리고 지속가능을 향하여⌟, 말과 활 아카데미)가 있어 오랜만에 줌에 접속해서 강의를 들었는데, 그 강의에서 핵심 키워드가 바로 <자기 주도권, 자기 결정권의 완전한 획득>이었다.
내가 일을 하는 이유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내가 결정하고 실행하기 위해서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 중의 한 가지는 바로 가끔씩 또는 주기적으로 떠나는 삶이다. 물론 마음 한 구석에는 그냥 떠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떠남 속에서 무언가 성과를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는 있는데 아직까지는 나 혼자만의 성과로 그치고 있기는 하다.
아무튼 다시 제목으로 돌아와 “다음에 2달”을 기대하고 있는 딸과 나를 위해 이번 발리 한달살이에서 대략 얼마를 썼는지 정리해보았다. 단지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위해서는 아니고 평소에는 가계부를 쓰는 편이 아니지만 이번에는 순수히 좀 궁금하기도 했다. 과연 한 달을 해외에서 살려면 얼마가 드는지가. 그래서 발리에 있을 동안 매일매일 루피아(현지돈)를 쓸 때 메모장에 모두 기록을 해 두었다. 그리고 마침 발리에서 하루 오전에 시간이 빌 때가 있어서 그날 엑셀 파일에 밑 작업을 해 두었더니 정리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정리 결과 예상했던 대로 한 장 정도가 들어갔다. 내가 발리에 간 것을 부러워한 어떤 친구가 돈 얼마 정도 들었냐고 물어보길래 정확한 건 돌아가서 정리해봐야겠지만 대략 1장 아닐까? 했더니 1억?이라고 해서 어이가 없었던 적이 있었다. 실정을 모르는 건지 아니면 나를 1달에 1억 정도 쓰면서 사는 부류라고 착각을 한 건지 아니면 그저 농담이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약 1079만 원을 썼다. 그런데 약간 애매하다. 여기에 남편의 항공권을 추가하면 금액이 더 올라가는데, 남편은 한달살이를 한 게 아니다 보니 그 금액을 추가해야 되는 건지 아닌지가 좀 헷갈린다. 아무튼 성인 1인, 아동 1인의 한 달 살이 비용으로 하자면 마지막 5일 동안 남편과 함께 했던 식사와 마사지 비용을 빼고 역시 약 1000만 원이라는 결론이 내려진다.
그 천만 원 돈 중에서 발리 현지에서 쓴 비용은 약 217만 원인데, 그중 식비가 약 125만 원으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그다음은 택시비, 비치클럽, 마사지가 비슷한 순이다. 어디에 돈을 많이 썼는지가 그 사람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라면 발리에서 우리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는 대신 많이 먹고 자주 이동하고 잘 놀고 푹 쉬었구나.
그래 그랬으면 되었다. 이번 발리행에서 내가 예상했던 범위 내에서 놀고 먹고 쉬면서 그래도 나는 브런치에 매일 글을 올렸고, 책을 3권 읽었고, 딸은 그림을 아빠 오기 전까지는 매일 그렸고, 캠프에서 베스트 서퍼로 뽑혔으니까 비교적 성공적인 첫 한달살이로 기억될 것 같다.
그럼 이제 다음번 두달살이는 대략 2장을 예산으로 잡으면 되는 걸까? 장소에 따라 이번처럼 캠프 일정과 함께할지 아닐지 숙소는 어떤 곳으로 할지 등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대략 2장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다시 월요일부터 돈을 벌어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남은 이틀을 또 잘 쉬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