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두달살이를 위한 준비
비치 하면 뭐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가?
나는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beach가 아니라 bitch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나만 그런 게 아니고 대부분 그런 걸까? 아무튼, 오늘은 그 bitch는 아니고 발리의 beach(해변, 바닷가)를 추억해보려 한다.
발리는 제주도나 하와이처럼 섬이기 때문에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수많은 비치가 있는데, 비치클럽 갔을 때 잠깐 경험해 본 비치는 제외하고 수영장이 아닌 바다를 메인으로 시간을 보냈던 곳 위주로 돌이켜보니 9군데의 비치가 떠올랐다.
제일 위에서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스미냑 비치, 더블식스 비치, 꾸따 비치, 짐바란 비치, 발랑안 비치, 빠당빠당 비치, 멜라스티 비치, 판다와 비치, 누사두아 비치이다. 이 중 제일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은 아마도 꾸따와 짐바란, 그리고 누사두아일 것이다.
꾸따는 4년 전 발리에 왔을 때도 들렀었고, 이번에 한 달 머무는 기간 동안 종종 그리고 나중에는 아예 꾸따 비치 쪽에서 머물렀으니까. 특히 꾸따 비치는 해질녘에 오게 될 때가 많아 그곳에서의 노을을 꽤나 자주 보았는데, 당연한 거겠지만 한 번도 똑같은 풍경이었던 적이 없었고, 그 당연함이 오히려 나에게는 생경함으로 느껴져 앞으로 살면서 문득문득 꾸따의 노을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짐바란은 나보다는 딸이 더 많은 시간을 보낸 곳. 캠프 기간 중 딸은 총 4번, 나는 1번의 서핑을 경험했는데 모두 짐바란 비치에서 했다. 원래 물을 좋아하고 수영을 어느 정도 하는 딸은 짐바란 비치의 파도를 꽤나 능숙하게 타게 되었고, 원래 물을 무서워하고 수영을 거의 못하는 나조차도 짐바란 비치의 파도를 아주 잠깐이지만 타 보았기 때문에 당분간 서핑하면 발리의 짐바란 비치가 자동으로 연상될 것 같다.
누사두아는 발리에 처음 왔을 때 머물렀던 곳인데, 그때는 일주일 정도의 짧은 일정이어서 그랬을까 누사두아 비치 자체가 크게 기억에 남아 있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오히려 이번 두 번째 발리에서 누사두아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꽤나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엄마들끼리 오늘 뭐할까 할 때도 종종 등장했었고, 캠프 주최 측에서도 가볼 만한 곳으로 추천해주기도 했었고, 결정적인 건 바로 우영우 때문이었다.
우붓 데이투어를 가던 날 현지 택시 기사로부터 전해 들은 소식에 의하면 포상휴가로 발리에 온 우영우 팀이 누사두아의 한 리조트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었다. 엄마들끼리 장난으로 “보러 가 볼까? 역시 좋은 데 갔네~” 하며 누사두아는 좀 고급진 동네고 우리가 있는 이곳은 좀 저렴한 곳이다 이런 얘기들을 하기도 했었다.
누사두아를 오게 된 계기는 남편이 당시 회사에서 실적이 좋아 마치 우영우팀처럼 포상휴가를 얻어 나와 딸도 따라오게 되었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외국계 회사에 근무하는 남편 덕분에 가끔 예기치 않게 비행기를 탈 때가 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그런 즐거움이 사라졌었다. 조만간 그런 일이 다시 생기기를 바라보며, 그래도 고급진 누사두아 비치의 5성급 호텔(소피텔)에 머물렀던 추억은 우리 가족의 행복한 한 페이지로 남게 될 것 같다.
나머지 비치는 거의 짧으면 30분, 길어봐야 3시간 정도 머물렀던 곳들이다. 말이 나온 김에 머물렀던 시간 순으로 추억 팔이를 해볼까?
가장 짧게 있었던 곳이 스미냑 비치. 그런데 가장 잊지 못할 사건사고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갑자기 들이닥친 파도에 내 가방과 그 안에 있던 물건들이 젖었는데 그중 아이 핸드폰만 고장이 났고 그 덕분에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온 날 예정보다 3시간 정도 늦은 시각에 집에 도착했고, 생일선물로 포장을 하기는 했지만 딸은 z플립을 갖게 되었다.
다음은 아마도 판다와 비치가 아닐까. 사실 이곳은 이 글에 담을지 말지 좀 고민이 되기는 했다. 루스터피쉬 비치클럽을 갔을 때 잠깐 경험했던(점프샷을 찍을 때 뒷 배경으로 활용)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 바다를 좀 알지’라고 말하려면 그 바다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서핑? 수영? 바닷물에 발 담그기? 적어도 모래사장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파도소리 듣기? 그렇다면 나는 판다와 비치를 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내 눈으로 봤고 그 바다를 배경으로 멋지지는 않지만 점프샷을 남겼으니 발리의 판다와 비치는 이제부터 ‘내가 아는 바다’이다.
다음은 멜라스티 비치. 발리의 남부에 위치한 곳. 바다든 하늘이든 파도든 노을이든 사실 생각하기에 따라 다 비슷하다고 하면 비슷할 수 있지만 또 다 다르다고 하면 다르다. 발리에 있으면서 많이 느꼈고 한국에 돌아와 나보다 조금 더 과학에 견해가 높은 친구에게 확인한 바로는 실제로 지구상에서 어느 곳에서 보느냐에 따라 노을의 모양이나 색이 다를 수 있다고 한다. 나는 한국에서의 노을도 충분히 아름다웠을 텐데 내 기분 때문에 괜히 발리에서의 노을이 더 아름답게 느껴졌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하늘처럼 바다도 분명히 그럴 것이다. 물론 물의 깊이와 맑기에 따라 당연히 바다의 색이 다르겠지만 그것 외에 모래의 색에 따라 그리고 그때 당시 하늘의 색에 따라 바다의 색 자체가 또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는 걸. 그래서일까. 멜라스티 비치에서 찍은 사진이 발리에서 찍은 바다 사진 중 가장 예쁘다.
4번째로 오래 머물렀던 곳은 더블식스 비치. 1시간 정도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적게 있었던 것 같다. 혼자 스미냑에 갔던 날. 아시아에서 제일 크다는 스벅에 갔다가 빈땅 오렌지 맛을 찾으러 빈땅 슈퍼마켓을 갔다 허탕을 치고 시간이 잠깐 남아 구글맵을 켜고 혼자서 걸어갔던 더블식스 비치. 한낮의 해변은 정말 뜨거웠다. 그래서 빈땅을 안 마실 수가 없었다. 맥주 하나만 시키기가 좀 그래서 안주를 시켰다가 너무 늦게 나오는 바람에 포장을 해서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돌아왔던 날. 모래사장에 놓여있던 색색의 빈백이 어딘지 쓸쓸했던 내 마음을 조금은 위로해줬던 더블식스 비치.
다음은 그 유명한 빠당빠당 비치. 거의 마지막까지 포포인츠에 남아 있던 멤버가 되었던 3명이 초반에 함께 갔던 날. 그때만 해도 아직 많이 친할 때가 아니라 서로 편하지 않아서였을까 사진을 많이 남기지는 못했다. 아무튼 나는 사실 좀 실망했던 곳이었다. 역시 영상에 나온 것만 보고 기대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또 한 번 느꼈던 곳. 하지만 만약 일정 후반부에 그래서 조금 더 친해진 사람들과 그곳을 갔다면 또는 나 혼자 갔다면 다르게 기억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나 혼자 갔던 또 다른 비치인 발랑안 비치는 제일 오래 머물러서이기도 하고 혼자만의 비교적 여유 있는 시간이어서 이 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주인공이 되었다. 그날 나는 아침에 엄마들이 모이는 곳(아이들이 캠프에 체크인을 하는 5층 식당 앞)에 안 가고 바로 1층으로 내려가 택시를 타고 발랑안 비치로 갔었다. 그래서 오후에 만난 엄마들이 “아침에 딸과 싸웠냐, 무슨 일이 있었냐”를 물어봤었다. 그럴 리가. 나는 그냥 좀 혼자 있고 싶었던 것뿐이에요.
그다지 유명한 비치는 아니었던 것 같다. 주변 환경이 좀 지저분하고 비치 카페도 정돈되어 있지 않았지만 그래서 나는 좋았다. 매우 상반되는 것을 비슷한 시기에 경험할 때 또는 나를 전혀 다른 이미지로 각각의 사람들이 기억할 때 아니면 실제의 나와 반대되는 모습으로 사람들이 나를 평가할 때. 그럴 때 어느 정도의 쾌감을 느낀다고 하면 좀 변태스러운가? 어릴 때는 그런 상황 또는 평가들 때문에 스트레스받은 적도 있고 나는 왜 이럴까 자괴감을 느낀 적도 있지만 어느 순간 그런 나를 받아들이기로 했고 반대되는 또는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진 것이 바로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한 마디로 내 속엔 내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차도녀 이미지인 나는 가끔 좀 지저분한 곳에서 매력을 느낄 때가 있다. 그 대표적인 장소가 바로 뉴욕의 지하철역. 그리고 베트남이나 태국 같은 곳의 길거리 음식점. 이제 그 리스트에 발리의 발랑안 비치를 추가하려고 한다. 고급진 누사두아 비치도 물론 좋지만 때로는 지저분한 발랑안 비치에 있을 때 마음이 편안해지는 나는 어쩔 수 없는 비치인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