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 한달살이 정리 - 2) 비치클럽 편

다음 두달살이를 위한 준비

by 나우히어

지난 금요일 오전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로 벌써 사흘이 흘렀다. 사흘 동안 발리에 있을 때 어떤 밉살스러운 여자가 얘기했던 “잉여의 삶”을 살아보았다. 딱히 별다른 일정 없이 그냥 쉬기만 하면 되었던 사흘.

잉여? 정확한 뜻이 궁금해 찾아보니 “다 쓰고 난 나머지”라는 뜻이다. 그럼 잉여인간은? 이상주의와 선을 지향하지만 여러 가지 복잡한 이유 때문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불의와 어리석음을 알면서도 방관하는 인물 유형으로 19세기 러시아 문학에 널리 등장하는 유형이라고 한다. 잉여의 삶은 잉여로운 삶이라고 해야 보다 더 정확한 표현이 되는 것 같은데, 특별한 일 없이 그냥 흘려보내는 삶으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돌이켜보니 나의 발리에서의 4주는 한국에서의 시간에 비하면 꽤나 ‘잉여로운 삶’이었던 것 같다. 딸은 9시부터 4시까지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한국에서 보냈던 방학 기간에 비해 꽤나 타이트한 시간을 지나왔지만, 나는 정반대였다. 나의 일의 특성상 방학 때 오히려 더 바쁘려면 바쁠 수 있고, 실제로 그동안 방학 때 꽤나 바쁘게 지내왔는데, 이번 방학 때는 일정표를 텅 비워 두었다. 텅 빈 일정표를 보고만 있어도 조금 힐링이 되는 기분이 들기도 했었다.



작년 여름방학과 올해 여름방학 일정표


그렇게 4주를 보내고 돌아와 또 3일을 더 잉여인간으로 살다가 드디어 오늘 일을 다시 시작했다. 업무 시간이나 강도를 주도적으로 정할 수 있는 나의 일의 특성상 스스로를 위해 일을 다시 시작하는 첫 주부터 정신없고 싶지는 않아 이번 주는 예열 기간으로 설정해 한창 바쁠 때의 스케줄로 복귀하려면 아직 멀었지만, 그래도 다시 일을 스타트한 것이 내 나름대로는 의미가 있다.


발리에 있을 동안 문득문득 돌아가면 다시 예전처럼 일을 할 수 있을까? 싶었던 순간들이 있음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오늘 시작을 했으니 또 당분간은 다람쥐 쳇바퀴 굴러가듯 일정표를 꽉꽉 채워가며 온에서 오프로 중3에서 초5로 갔다 다시 고2로 왔다 해야겠지.


발리에서 여러 잉여의 날들 중 가장 좋았던 순간을 꼽으라면 바로 비치클럽에서 보냈던 시간들이다. 그래서 앞으로 일하다가 지치고 치일 때 이 글을 꺼내 보려고 비치클럽편으로 정리를 해보려 한다.


Bali beach clubs in the google map


발리섬의 서해에 위치한 곳 2군데, 남해에 위치한 곳 3군데를 가보았고, 시간순으로는 4일 차에 싱글핀, 10일 차에 루스터피쉬, 15일 차에 팔밀라, 19일 차에 선데이즈, 21일 차에 아틀라스를 다녀왔다. 남편이 왔을 때 Finns나 Potato Head 중 한 군데는 가보려 했으나 우리가 묵었던 하드락 호텔의 수영장이 꽤나 만족스러웠기에 딱히 비치클럽을 찾아갈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했다.


Single Fin Bali


제일 먼저 갔던 싱글핀 발리.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숙소에서 가깝고 일찍 오픈한다는 정보만 가지고 갔던 곳. 만난 지 얼마 안 된 엄마들 사이에서 나만 비키니를 입고 가 유독 튀었던 기억. 총 7명이 함께 갔는데, 외모도 제각각, 성향도 제각각. 하지만 그 와중에 다들 40여 년 또는 그 이상을 살아온 애엄마들이어서 큰 트러블 없이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이해하며 돌아오는 길에 마사지로 몸도 마음도 풀고 왔던 날. 뷰는 말할 것도 없고 음식이 맛있어서 딸 데리고 또 와야지 했는데 결국 한 번밖에 못 가고 말아 아쉬움이 남는 곳이다.


Roosterfish Beach Club


두 번째 루스터피쉬 비치 클럽. 아이들 캠프 일정에 끼어서 엄마들도 함께 갔던 곳. 발리스러운 인테리어, 중간중간 포토존. 수영장은 좀 작았지만 바다가 바로 앞이었고, 맨날 먹던 조식보다 훨씬 맛있었던 음식들 덕분에 즐거웠던 기억.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놀고 엄마들은 그런 아이들을 눈으로 보면서 우리들끼리 여유를 부릴 수 있어서 편했지만, 그날 딸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다른 엄마들에게 티는 안 냈지만 속으로는 꽤나 마음을 졸였던 하루.


Palmilla Bali Beach Club



세 번째 선데이즈를 가려다 만석이라 급조한 팔밀라 발리 비치 클럽. 딸과 단둘이 간 첫 비치클럽. 진정한 인피니티 풀이란 이런 것이구나를 느꼈던 곳. 해가 지고 난 비치클럽의 분위기를 느껴본 곳. 딸이 아니라 친구와 함께 한 것처럼 어느새 훌쩍 커버린 딸이 아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던 날. 음식은 가격대가 조금 있는 만큼 맛있었던 기억. 그네도 있고 해먹도 있고 데이베드 쪽은 바닥에 모래가 깔려 있어 아이들을 데려가도 좋을 곳.

Sundays Beach Club


네 번째는 드디어 선데이즈 비치 클럽. 어른 5, 아이 5. 총 10명이 함께 간 곳. 밑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발리의 남해 바다. 그곳에서 스노클링을 하며 하나 된 아이들. 마시멜로를 구워 먹으며 또 하나가 된 아이들. 수영장과 바다를 연결하는 케이블카조차도 신기한 아이들. 그런 아이들끼리 잘 노니 엄마들도 더없이 평화로웠던 그날. 빈백의 색깔만큼이나 청량하고 기분 좋은 기억으로 남을 곳.


Atlas Beach Fest


마지막은 가장 최근에 오픈한 아틀라스 비치 페스트. 핀스 바로 옆인데 웅장한 규모로 핀스를 압도했던 곳. 캠프 일정이 끝난 후 남은 엄마들 셋, 아이들 넷. 약간 어색 어색할 뻔했지만, 아이들이 둘둘 짝지어 잘 놀아줘서 잊지 못할 베스트 샷을 수십 장 찍었던 기억. 토요일 밤의 열기에 비치클럽 전체가 막 달아오르려 할 무렵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던 애엄마들의 처지. 마지막까지 정말 알차게 잘 놀았다는 생각이 들었던 하루.

만약 다음에 또 발리를 갈 기회가 있다면 5군데 중에 어디를 가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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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이왕이면 안 가본 데를 가보는 게 낫지 않을까?


아직도 안 가본 비치클럽이 발리에는 훨씬 더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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